죽음의 행진은 바탄에서 오도널 수용소까지 약 100킬로미터, 자동차로 가면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서 이뤄졌다. 일본군은 바탄 섬 포로에게 강제로 도보 행군을 시켰는데 총 100킬로미터를 하루 20킬로미터씩 5일 동안 걷게 했다. 그들은 무장해제 상태였기 때문에 어떠한 짐도 없었다. 뒤에서 언급할 ‘쓰지 마사노부辻政信·사물 명령私物命令 사건’을 예외로 하면 말이다. 이런 길을 자동차로 휙 통과한 사람은 간단히 판단해버릴 것이다. ‘모든 게 승자의 트집이고, 부당한 복수 재판이었다’고 말이다. 물론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이 행진으로 인해 전원의 약 10퍼센트에 해당되는 미군 병사 2000명이 쓰러졌다는 말은 일부 사실이다. 3개월에 걸친 정글전이 끝난 뒤 5일간 계속된 열대지방에서의 도보 행진은, 설령 그들이 굶주린 상태가 아니었더라도 그 정도 피해는 나올 법하다. 하물며 오키나와 철수 상황을 떠올리면, 분명히 자동차로 통과해서는 결코 전쟁터를 가봤다고 말할 수 없겠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바탄’ ‘바탄’을 외치는 미군 병사와 마주한 우리의 심경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왜냐하면 혼마 중장 입장에서는 포로를 차별해서 고의적으로 잔혹하게 다룬 게 아니라 평소 일본군을 다루듯, 아니 오히려 일본군 기준에서는 온정을 베푼 처사였기 때문이다. 일본군의 행군은 이보다 훨씬 더 힘들었으며 ‘6킬로미터 행군’(잠깐의 휴식을 포함해 시간당 6킬로미터)을 하면 도중에 10~20퍼센트가 쓰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행군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도 엿볼 수 있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도요하시의 교관들은 “졸업할 때까지 너희 중 10~20퍼센트가 도태되리라는 건 처음부터 염두에 둔 일이다”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따라서 일본군은 혼마 중장의 처형에 대해 그들 입장에 서서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저게 ‘죽음의 행진’이면 우리 행군은 대체 뭐지?” “분명히 ‘지옥의 행진’이겠지.” “저걸 가지고 ‘미국 병사에게 지은 죄’라고 사형을 받는다면, 일본군 사령관은 ‘일본 병사에게 지은 죄’로 전부 사형감이야.”
무거운 짐 없이 걷는 100킬로미터가 ‘죽음의 행진’이고 30킬로그램의 짐을 등에 지고 걷는 300킬로미터가 ‘지옥의 행진’이라면, ‘배 끄는 인부’처럼 3톤짜리 포차와 전차를 끌면서 걷는 300킬로미터는 도대체 어떤 행진이라고 해야 할까. 그야말로 현장에 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다.
-알라딘 eBook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최용우 옮김) 중에서
참전군인 평 "확실히 심했지만, 우리는 이보다 더 심했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볼 수 없을뿐더러 고의적인 학대도 아니었다."
군마가 없어서 4식 150mm 유탄포 등을 마소 대신 사람이 300Km를 끌어가게 하던 일본군 입장에선, 바탄 죽음의 행진은 온건한 편이었다는 게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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