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웨스트 아일랜드(2)
*
보라색 촉수가 열차를 덥치며 유리를 뚫으려 했다.
그러자 전쟁의 오라가 나타나더니 보라색 촉수들을 전부 반으로 갈라버렸다.
딱히 형태가 있지 않은 평범한 오라였지만, 그 위력은 역시나 대단했다.
[아... 느껴진다. 나의 또 다른 영혼의 울음이.]
"...이거 아무래도 다른 바포메트의 영혼인 것 같군."
"다르다고?"
"내가 싸운 바포메트는 자신이 '억울함'이라 하였음."
"그럼 저건..."
"...'분노'가 아닐까?"
갑자기 열차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때문에 아이니와 전쟁의 신은 제대로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렸다.
"이거 아무래도. 내가 해결 해 보지."
전쟁의 신의 몸이 이내 희미해 지더니 열차를 관통해 밖으로 나갔다.
"위험해!"
열차를 나간 전쟁의 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차 아래엔 보라색 촉수들이 열차를 있는 힘껏 흔들고 있었다.
"방해하지 마라."
전쟁의 신은 손에 오라를 발휘하더니 이내 열차를 흔들던 촉수를 뜯어버렸다.
[드디어 나왔군.]
그리고 그런 전쟁의 신 뒤로 보라색 기체들이 나타났다.
"...너는 누구냐."
[나는... 바포메트! ...하지만 내게 주어진 '감정'은 없다.]
"감정이 없다?"
[하지만! 느낄 수 있다. '억울함' 님이 너한테 당했다는 사실을!]
"그런가. 너는 '분노'가 아니군."
[나에게 하사된 감정 하나 없어도, 너 따위는 내가 죽여버릴 수 있다!]
바포메트 뒤로 두 개의 보라색 촉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의 촉수는 전쟁의 신에게, 다른 하나는 열차를 향해 날아갔다.
"쓸데없는 짓이다."
전쟁의 신이 손짓하자 주변에 전쟁의 오라들이 나타나며 열차와 자기 자신을 보호했다.
보라색 촉수들은 전쟁의 오라에 닿자 촉수의 닿은 부위는 마치 불에 타는 듯 사라졌다.
이윽고 전쟁의 오라는 칼로 그 모습이 변형되었다.
약 1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검.
그 검 끝에선 옅은 오라들이 휘날렸다.
"네놈도 죽여주마."
전쟁의 신이 바포메트의 영혼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히익!]
바포메트의 영혼은 놀라는 듯이 그 검을 피했다.
"아는 건가. 이 검이 또 다른 ㅇㅇ 녀석을 죽인 사실을."
[저... 검... 이상하다. 기체를 베는 힘... 규칙에 위배되는 힘이다!]
바포메트는 감정적으로 촉수를 다시 날렸다.
'저 보라색 기체로 된 촉수. 정체가 뭐지? 내 오라들도 겨우 공격할 수 있는 정도. 아직은 내가 유리하다. 하지만 두렵군. 그 녀석이 말한 '분노'나 '악몽'이란 자는 내 공격이 통하지 않을 수도... 그리고 가장 두려운 힘은 바로 저자가 말하는 「규칙」. <신들의 땅>에 있는 날 강제적으로 <대륙계>로 끌고 내려왔다. 그런 힘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이 녀석을 통해서 알아볼 필요는 있겠어.'
전쟁의 신은 검을 휘두르며 날아오는 촉수들을 하나씩 베어냈다.
"너는 누구지?"
[내가 누구냐고? 말했잖아.]
"그걸 묻는 것이 아니다. 네가 '다른 세계선의 최강자'인지를 말하는 거다."
[다른 세계선? 그게 뭐지? 이 세계 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었다는 말인가?]
'...다른 세계선에 대해서 모르는 눈치. 그저 일개 영혼이기에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것인가.'
[아하. 그렇군. 너는 다른 세계선에서 넘어온 존재로구나?]
"ㅇㅇ 녀석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큭큭. 아마 너는 '시간 노숙자'를 통해서 이곳으로 넘어온 것이로군? 아~ 정말로.]
"시간 노숙자에 대해서 아나?"
[알다마다. 그는 이 세계를 지켜주는 가장 위대한 게이들 중 하나거든.]
"..."
전쟁의 신이 마치 무언갈 알아낸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니를 보았다.
"혹시 열차의 도착이 얼마 정도 남았는지 알려줄 수 있음?"
그의 말에 아이니는 전광판에 있는 숫자를 불러주었다.
"70!"
"ㄳ."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나 보군.]
"그런가... 그럼 딱 한 가지만 더 질문하도록 하지."
전쟁의 신이 바포메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너의 본체는 어딨지?"
[. . . . . .]
"됐다. 내가 직접 찾으마."
전쟁의 신이 칼을 들고 휘두르자 거대한 검격이 주변의 땅들을 갉아먹으며 바포메트에게로 향했다.
[나 역시... 궁금하군. ㅇㅇ 본ㅡ......]
바포메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검격은 바포메트의 몸을 갈라버렸다.
갈라진 기체들은 서서히 균형을 잃고 흩어졌다.
"..."
전쟁의 신은 다시 열차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니는 아무 말 없이 앞만 쳐다보았다.
전쟁의 신 또한 그의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광판의 숫자가 이제 끝나간다.
30... 29... 28...
그와 동시에 뒤에서 크게 들리던 엔진음도 점차 줄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엔진의 출력이 낮아짐에 따라 열차도 이제 땅에 착지하며 바퀴의 마찰 소리와 전기가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퍼졌다.
아이니와 전쟁의 신도 아무말 없이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다.
19... 18... 17.. 16.. 15..
일렁이던 아우라가 점차 사라지며 전기장도 함께 수그러들었다.
열차가 굴러가던 바퀴 소리 또한 점차 작아졌다.
그리고 전광판의 숫자가 0을 가르키자 열차는 멈췄다.
그때 또 다른 버튼이 깜빡거렸다.
그곳엔 '해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아이니가 그 버튼을 누르자 위에 있던 유리판이 떨어져 나가며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열차에서 내린 뒤 이어 밖으로 통하는 사다리를 올랐다.
「환영함.」
또 다른 표지판.
이젠, 지긋지긋하다.
"도착했음."
아이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전쟁의 신도 그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렇군. 그럼 이제 여기가... '서부'인 거임?"
그러자 아이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빽빽한 나무들과 흙들이 가득했다.
'섬'인 서부에서는 이런 광경보다는 바다의 짠 내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이니를 맞이한 바람은 무언가 빽빽히 가득찬 바람이었다.
그들은 아직 서부로 간 것이 아니었다.
"아직... 아닌 것 같군."
"..."
"하지만 이제 다 왔을 거임."
아이니는 지도를 펼쳤다.
물론 지도에는 '하이 웨이'라는 단어 자체가 적혀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그저 지도와 선을 그어보고 추론하는 것이 전부.
아이니는 지도에 손을 대고 왼쪽으로 쭉 그었다.
그가 위치한 곳은 아직도 산이 많은 곳.
즉, 서부의 근처도 못 간 것이다.
"이 울창한 숲이 끝나는 이 지점."
아이니가 지도에 손을 대며 말했다.
그가 손을 댄 곳은 숲의 끝자락이었다.
"아마도 여기인 것 같음. 조금만 더 서쪽으로 가면 서부가 나올 거 같음."
"... 나에게 나침반이 있음."
전쟁의 신이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그럼 그 나침반을 보고 서쪽으로 조금만 더 걸어가 보지."
"알겠음."
*
그들은 또 다시 묵묵히 서쪽으로 걸어나갔다.
"당신은 신이라 했지."
또 다시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아이니었다.
"그럼."
"다른 세계에서 왔고."
"그렇지."
"...그 세계는 어떤 세계였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쟁의 신》이라 하면, 그 세계에서 당신은 '전쟁'을 치뤘을 거 아님?"
"...나의 세계관에 관심이 있음?"
전쟁의 신이 밝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치 기다리기도 한 것 처럼.
"ㅇㅇ. 당신의 그 오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필요할 것 같음."
"정말 좋은 질문임. 나의 세계에는 항상 전쟁이 가득한 곳이었음. 한치의 긴장도 놓을 수 없는 그런 곳이지."
"..."
"나는 그곳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장군'이었지."
"수많은 전쟁의 기간을 보냈......겠군여."
그때 아이니의 표정이 좋지 못 했다.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전쟁의 신은 그런 아이니의 표정을 보고 바로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님. 나도 그저... ......ㅇㅇ. 계속 말해주셈."
"...나는 당신을 그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음."
"나를?"
"...나의 세계는 사실 당신이 살아온 '인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
"...당신. 나의 인생에 대해 논하다니...... 나를 지켜본 건가."
"..."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본 거란 말이지. 아무런 도움 없이."
"그것도... ......ㅡ아님. 나는 당신의 《세계관》을 넘어 보는 것일 뿐. 당신이 어떤 세상을 살고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모름."
"당신는 전쟁의 신. 당신이 쓰는 오라는 전쟁의 오라. 맞지?"
"그럼."
"나에게 제대로 된 힘을 알려주쇼."
"...그럴 수 없음."
"왜지!?"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지. 당신은 이미... 내가 드린 힘의 한계를 넘어서 사용하고 있음."
"한계?"
"나는 당신에게 '치유'의 힘만 드렸음. 하지만 당신은 나의 오라를 사용해서 '공격'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에 사용하고 있지 않음? 당신과 나의 세계관이 점점 동일화 됨에 따라, 당신의 힘이 곧 나의 힘이 된 것 뿐임."
"하지만 제약이 있었음. 나는 그때... 분명 '공격'할 의도로 썼을 때는... 분명."
"확실히 그땐 제약이 있었음. 그것은 세계의 법칙이자 '신들의 법'이지.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후계자와 신들의 관계나 낮았을 때나 이야기. 내가 당신을 알고, 당신이 나를 알아 갈수록 서로의 힘은 점점 확장되지. 내가 당신을 아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힘은 이미 그 한계를 넘었음."
"...서부는 힘든 여정이 될 거임. 그렇기에 당신의 힘이 더 필요로 하는 것이고."
"......"
"그곳엔 디가 있고. 디의 스승도 있을 거임. 페올이란 노인도 있을 거며, 어둠의 신의 부하들도 있겠지. 게다가..."
그때 전쟁의 신이 아이니를 뒤에서 껴안아 주었다.
"걱정하지 마셈. 내가 있는 한, 당신은 절대로 죽지 않음."
"..."
아이니의 뺨에서 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소매로 빠르게 닦아내었다.
"가지."
*
<서부 어딘가.>
"룰루. 랄라.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을까~"
어느 한 사내가 코를 흥얼거리며 해변을 지나고 있었다.
"챤. 오바하지 마라"
그리고 그 사내 옆으로 또 다른 사내가 그를 꾸짖었다.
"의니. 참견하지 말라고. 나는 지금 매우 신나는 상태이니깐."
"너는..."
그리고 그들 앞에 한 노인이 나타나 그들에게 말했다.
"악마들이여. 때가 되었도다. 에오스가 움직였어. 그보다 먼저 나아가야 해."
챤과 의니는 비장한 눈빛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챤은 자신의 '권총'을, 의니는 자신의 '창'을 꺼내들었다.
"이 무기들을 쓰는 건 반칙인가? 큭큭."
"아이러니하군. 이전의 나는 총을 쓰고, 너는 창을 썼는데. 지금은 정반대잖아?"
"어쩌면 그것도 저 할배가 노린 것일지도 모르지."
"흐음... 이봐, '무르무르'. 정말로 저 자를 믿을 건가?"
"으윽! 머리아파!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라. 소름이 끼친다고. 나의 이름은 '챤'이다. '무르무르'가 아니야."
"너무 과몰입 했군."
"그럼 너는 어디 다른가? '오로바스'?"
"미안하군. 확실히. 지금 이 육체는 무언가 이상해. 본래의 나와, 이 육체의 주인이 동시에 공존하는 느낌이야. 마치 내가 의니고, 동시에 오로바스 인 것 같아. 두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넘어와."
"...지옥의 질서를 지키던 내가. 어째서 이 대륙에 남아 이런 짓을 하는 건지..."
"싫은가?"
"당연하지. 거기서 나는 무려 '제 10단장'이었다고. 그에 비해 지금은 그냥 하찮은 꼬맹이 잖아."
"자만하는 군."
"둘 다 잡담은 거기까지만 하지.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일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너희의 영혼은 영원히 그 몸에 갇힐 것이다. 너희는 다시는 지옥으로 못 돌아가는 거라고. 허튼 소리 말고 따라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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