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웨스트 아일랜드(4)


*


기회는 단 한 번.


기사의 시선에서 잠깐 떨어진 그 시간.


그 찰나에 모든 작전이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게 말이지. 그러니깐......"


기사가 말하는 그 찰나에.


하늘에서 '오라'가 떨어졌다.


"그래서 이렇게 된...... 저건 뭐지?"


기사 앞에 떨어진 오라 덩어리.


그 덩어리에선 거대한 창 하나가 기사의 눈을 향해 뻗어왔다.


"이게!"


하지만 기사는 기사.


그의 반사신경 또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괴물이다.


기습을 가볍게 피하자 오라 덩어리는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한 명의 병사가 되었다.


마치 로마의 기사.


그는 긴 창과 방패, 갑주를 둘렀다.


그리고 투구 사이에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기사'를 쳐다보았다.


'...엄청난 살기!'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괴물이다.'


그리고 아이니는 눈치를 보며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때마침.


"일단 몸부터 피하셈! 이 괴물을 먼저 무찔러야겠음."


걸렸다.


"알겠음!! 일단 멀리 도망갈게!"


아이니는 기사를 보고 외치며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뛰어!"


"ㅇㅇ."


"어쩔 수 없지. 기사의 실력을 좀 더 보고 싶긴 했지만. 지금은 급한 게 아니니깐."


*


ㅡ강... 하...... 다.......


기사가 검을 떨궜다.


"헉... 헉... 이거... 예전 같지 않구만. 아닌가. 이 녀석이 괴물인 건가."


전쟁의 오라로 된 병사 또한 만신창의가 되어 있었지만, 이 싸움은 그의 승리였다.


ㅡ하... 지... 만... 뭔... 가.... 이.상..하...군.


기사는 떨어진 검을 다시 쥐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이 세계를 위해서!"


그리고 검을 들고 달렸다.


ㅡ아...아... 알..겠..다..


"흐아앗!!"


기사가 검을 휘두르자 오라 병사는 방패로 그 검을 막는다.


다시 검을 휘두르면.


병사는 오히려 자신의 창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격이 보이는 싸움의 수준.


숙련도 면에서 떨어지는 그의 검술.


경험 면에서 떨어지는 그의 판단력.


이 기사는 완벽히 패배했다.


"허억... 허억..."


ㅡ끝..인..가.. 그래... 이제.. 편..해..져..라..


오라의 창이 날아와 기사의 목을 노렸다.


"끝..인가."


하지만 그때, 또 다른 기사가 순식간에 날아와 그의 창을 막았다.


"...당신은...?"


검은 머리카락의 기사.


"..."


"가... ㄳ. 하지만 조심하셈. 저자는 매우 강력함."


"...불필요하다."


검은 머리의 기사가 칼을 다시 집어넣었다.


ㅡ뭐...냐...


그리고 자세를 낮추고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뱉었다.


"[발도술]."


그가 검을 빼들며 순식간의 속력으로 날아가 오라 병사의 목을 단 번에 베어버렸다.


ㅡ무...슨...일..이.......


"단 한 번의 일격이다."


오라 병사는 그 공격을 받고 이내 형태를 유지하지 못해 흩어졌다.


"ㄳㄳ."


"..."


검은 머리의 기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저... 아이니가 달아난 방향쪽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아이니가 허겁지겁 달리며 기사로부터 멀찍히 떨어졌다.


물론 기사의 능력이나 신체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따라 잡힐 수 있을 만한 거리였지만, 다행히 기사는 따라오는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제부터는 좀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겠군."


"ㅇㅇ."


"어서 움직이지."


그들은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저 멀리에서 거대란 기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사방이 물인 이곳.


마치 '보트'의 형태를 이루는 듯한 기계 장치는 점차 그 존재감을 내뿜으며 아이니 일행에게 다가왔다.


"저건... 뭐지?"


아이니가 그 보트를 자세히 보자 그 수는 한 두개가 아니었다.


"뭐야..! 하나.. 둘... 셋... 대체 몇 개야!"


"대략 일곱이 넘어 보이는 군."


"일곱? 그렇게나 많이? 저들은 뭐지?"


일곱 대의 보트들이 이내 거대한 파도를 만들며 아이니 일행 앞에서 멈췄다.


아이니는 어쩔 수 없이 물을 맞을 수밖이 없었다.


일행의 선두에 있던 배에서 빨간 머리의 한 소년이 발을 내밀며 말하였다.


"오잉? 자네들은 누구지?"


빨간 머리의 초록색 눈.


작고 귀여운 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모자를 쓴 한 소년이 쓰고 있던 고글을 들며 아이니 일행을 바라보았다.


"..."


아이니는 일부로 그의 말에 답해주지 않았다.


"이런,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인가?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빨간 머리의 소년 뒤로 회색 머리와 회색 눈섭을 가진 할아버지가 나와 아이니를 바라보았다.


"음? 못 보돈 얼골들이건?"


혀가 짧은 건지, 일부로 혀를 굴리는 건지, 듣기 힘든 언어가 아이니 귀에 꽂혔다.


아마도 저 할아버지의 언어는 이곳의 방언인 듯 했다.


"그래! 이 내가, 사랑하는 <서부>의 이들의 얼굴 하나 못 알아 보겠나? 필시 자네들은 본래 이 섬의 주민들이 아닌 거. 맞겠지?"


의도를 알 수 없는 그들의 행보.


아이니는 반문했다.


"우리는 그저 갈 길 가는 것 뿐임. 신경 쓰지 마시오. 그리고 오히려 당신들이 더 수상하다만?"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다면, 내 미안하지. 나도 사정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이 근방에서 엄청난 실력을 가진 기사가 나타났다고 해서, <서부>의 '보안관'인 내가 나타났을 뿐이라고! 근데, 나를 모르는 건가?"


'그런가. 보안관. 실수했군.'


과거 셀리아 시절.


가장 강력하고 가장 위대한 왕, [셀]은 '보안관' 이라는 제도를 실행했다고 전해진다.


'보안관'의 역할은 '기사'와 같지만 이행하는 명령이 달랐다.


일반적으로 기사들은 괴수나, 대륙을 위협하는 '악'에 대해 싸우는 이들이다.


그 반면에 보안관은 대륙의 치안을 유지하는 이들로, 기사와 힘을 비교하면 당연히 딸린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섬의 보안관인 내가. 너희들의 얼굴 한 번을 못 보았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들의 역할은 또 하나 존재한다.


불법적으로 넘어오는 이들을 잡고 체포하는 역할.


<서부>는 한 때, 독립적인 나라로써 침입하는 모든 이들을 전부 찾아 처리하려 노력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항상 다른 지역의 이들이나 심지어는 다른 대륙의 사람들까지 이곳으로 넘어와 행패를 부렸기 때문이었다.


보안관의 역할 또한, '정상'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들을 찾아내는 것


때문에 보안관인 그가 서부의 시민들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니의 앞에 선 이들은 보안관.


아이니는 현재 '공식적'인 절차를 밟은 상태가 아니다.


그저 일개 기사의 권한으로 잠시 머물 수 있을 정도.


현재는 '보안관'도, <서부>의 최고 통치자도.


아이니에 대해서 그 무엇 하나도 모르는 상태이다.


"이 섬을 무단으로 들어온 너희들에게 있어서. 나는 용서할 수 없다! 고로 너희를 체포한다!"


빨간 머리의 소년이 보트에서 내려와 아이니 쪽으로 걸어왔다.


"도망갈까?"


"..."


아이니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아니. 오히려 잡힐 거임."


"ㅇㅇ?"


"잡담은 거기까지!"


빨간 머리의 소년이 아이니의 머리를 잡고 땅으로 박아 넣었다.


"이... 이....!"


《이... 놈.......!!》


"잠깐!"


전쟁의 신이 불같은 화를 내며 온 몸에 오라를 두르자 아이니가 오히려 그를 말렸다.


"으... 어째서.."


"보안관 님."


"음?"


"우리에게 해명할 시간을 주시오."


"해명? 참... 나. 이 땅에 몰래 들어온 주제에. 해명할 시간을 달라고? 당장 너희들을 잡아 족쳐도 부족할 시간에."


그러자 뒤에 서있던 노인이 한 말 붙였다.


"이봐. 머무 망 말 하진는 말아게. 혹여는 모르는 일이 아닌온가? 고돌이 실로 헤락을 빗고 들어온 아들일지."


"...그럴 확률이 낮음 어르신."


"일단. '성'쬭으로 가쟈구나."


"...ㅇㅇ."


노인의 말은 마치 암호와 같았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문장의 연결.


아이니는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빨간 머리의 소년은 아이니의 손에 수갑을 채우며 아이니를 끌고 보트에 태웠다.


잠잔코 보고 있던 전쟁의 신도 얌전히 잡혀주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어디론가 향했다.


*


<서부, 왕의 성체>


한참을 달리던 보트가 이내 거대한 성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자 성문이 열리며 보트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니가 잡혀 이곳으로 오는 동안, 보트 내부에서는 그 어떠한 잡담도 이뤄지지 않았다.


보트 내에는 총 다섯 명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안쪽에서 보트를 조종하는 이는 안경을 쓰고 백발의 미남이었다.


아이니 일행을 잡아 온 빨간 머리의 소년은 보트 내에 있지 않았고, 갑판 위를 돌며 여러 잡다한 일을 했다.


그리고 내부에는 이전에 보았던 백발의 노인이 있었으며, 나머지 두 명은 섬총을 들고 경계를 스고 있었다.


마치 쌍둥이 처럼 보이는 둘은 얼굴도, 머리카락이나 눈의 크기 하나까지도 전부 똑같은 이들이었다.


또한 그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나 총을 든 자세마나도 똑같았기에 그들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빨간 머리의 소년이 내부로 들어와 아이니에게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니들이 어떤 인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선택하고 판단하는 일은 우리의 왕이 하는 일이지. 만약에 너희의 정체가 별 것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내 손에 너희들을 전부 죽여줄 테니깐 각오해야 할 거다."


웃기는 말이다.


아이니가.


심지어 옆에는 전쟁의 신이 있는데, 어떤 힘으로 그들을 죽이란 말인가.


아이니는 소년의 말을 듣고 웃을 뻔 했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내리게."


백발의 노인이 아이니에게 말하며 보트 밖으로 나갔다.


내부에 있는 두 명의 쌍둥이들은 아무런 말 없이 아이니 일행을 처다보기만 했다.


아이니가 보트 갑판에 발을 올리자 순간 어두웠던 눈이 밝아졌다.


처음엔 태양인가 싶어서 손을 가리며 하늘을 쳐다보았지만, 하늘에는 수많은 전구들이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전구?'


태양의 밝기를 내는 전구는 없었다.


단지 그 수가 많아 마치 태양처럼 보이는 것일 뿐.


마치 이전의 <지하 세계>에서의 [달]을 보는 것 같았다.


전쟁의 신도 갑판 위에 오르자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모습들 드러냈다.


"재판에 온 것을 환영한다."


"..."


보트를 둘러싼 이들이 동시에 수근대며 아이니 일행을 광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들개마냥.


그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아이니를 바라본 것이다.


"여거ㅡ... 엘만엥 재판잉감?"


"슈붕방거 젼나 오래이지라?"


역시나 그들의 방언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탕. 탕. 탕.


"정숙. 정숙."


그러자 중간에 있던 재판관이 망치를 내려치며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제 272번째 재판을 시작하도록 하겠음."


재판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니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때의 아이니는 주변을 보며 경계를 서는 이들의 수를 세었다.


'섬총을 든 경비가 총 다섯. 일반적인 경비가 셋. 그리고 몸집이 큰 경비가 둘. 기사로 보이는 인물은.... 없다.'


전쟁의 오라를 사용하면,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이고 이 상황을 모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니는 굳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현재 아무런 절차 없이 우리들의 땅으로 넘어왔음. 맞음?"


"...맞음."


"그렇다면, 왜! 감히! 무단으로 우리들의 땅으로 온 것임?"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은 실제로도 정식적인 절차를 밟은 것이 아니니.


"이 통화 내역을 봐주길 바람."


재판관이 통화 내역을 큰 화면 스크린에다가 띄웠다.


그곳에는 빨간 선이 그어진 통화 내역이 하나 존재했다.


「078. '모나' 다리 경비병 2통.」


"이것은 가장 최근에 서부로 넘어오는 다리의 경비병과 있었던 통화 내역임!"


그들의 방식은 너무나도 깔끔했다.


정확한 증거와 신빙성 있는 재판관의 목소리.


아이니는 그 상황 속에서, 그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 재판관이 말하는 내용을 토대로 아이니는 '사형' 혹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위기에 놓였다.


"이의 없음?"


재판관의 질문에 사람들은 수근댔고, 아이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할 말이 있음."


그때, 수많은 인파 속에서 거친 목소리의 한 남성이 손을 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