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서는 어귀에 새로운 식당이 들어섰다. 돼지부속 음식을 주로 하는 곳인데 흔히 보는 고깃집은 아니었다. 꼭 한번 가봐야겠다 벼르다가 주말을 맞아 친구와 함께 들러보았다. 여러 돼지 부속을 고명처럼 얹은 비빔밥을 시켰다. 곱창이나 껍데기 같은게 밥 위에 올라와 있었다. 맛은 제법 괜찮았지만 곱창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퍽이나 힘든 메뉴였다.


그러나 나를 더 곤혹스럽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시정을 살피시던 모습처럼, 엄시장님은 음식 하나 낭비하지 않았다. 그 덕에 나도 뜻이나마 따른다고 우리 집 밥상에는 여러 부속음식들이 떠나질 않았었는데, 왈칵 엄시장님 생각이 났던 것이다. 간신히 식사를 마치고 허둥대며 식당을 나서는데, 친구가 근심스럽게 내 기색을 살폈다. 내가 곱창을 싫어해 먹기에 힘들었나 싶어서 였을 것이다. "어때? 괜찮았어?" 그런데 대답 대신 나도 모를 말이 튀어나왔다, "엄시장님을 모시고 이걸 먹을수만 있다면 천만 원이라도 내겠어"


가끔 서가에 꽂힌 책들을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기모찌대 다닐 때, 전공서적 한 질씩을 월부로 들여놓고는 그걸 갚느라고 허덕이고 채 샘이 끝나기 전에 또 다른 책들을 사들이곤 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수년이 지났지만 그 중 몇몇은 눈빛 한번 제대로 못 만난 채 서가에 묵혀있기도 하고, 또 몇몇은 이제는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되어 있어서 인터넷만 연결하면 어디서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는 자료이다. 그때 만약 책 욕심을 덜 내고 그 돈으로 엄시장님 모시고 식사나 한 끼 제대로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싶다.


옛 로마 시절 책을 읽다보니 재미난 라틴어 단어가 하나 나온다. convivium(콘비비움). 글자 그대로 푼다면 "함께 살아가기" 정도의 뜻으로, "회식, 잔치, 향연" 등으로 번역된다. 로마인들에게 있어 함께 먹는 행위가 곧 함께 살아가기 였던 것이다. 엄시장님이 추구하셨던 시정도, 바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콘비비움'이 아니였을까. 공부한답시고 그 '함께 살아가기'의 고귀함을 잊고 지낸 세월이 부끄럽고 야속하다. 투자의 귀재인 워렌 버핏은 자신과 한끼 식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경매에 부치는 자선행사로 유명하다. 낙찰가가 수십억원을 넘어서는 것도 놀랍지만, 거기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가치가 그 이상이라고 하니 더욱 놀랍다.


우리네 보통사람이야 워렌 버핏처럼 남에게 줄 것도 없고, 그 비싼 돈을 치르며 그런 자리에 나설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마음만 먹는다면 당장 오늘 저녁 한 끼쯤은 누군가를 초대하여 '함께 살아가기'를 실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거기에 큰 돈이나 대단한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고 까다로운 제사음식 같은 걸 준비하느라 애쓸 필요도 없다. 값은 싸지만 가치는 높은 일을 할 때, 우리의 삶도 한 층 더 고양되는 것 같다. 다시금 우리네 식탁에 엄시장님이 함께 하시길 바라며, 이제는 함께 식탁에 앉을 수 없게 된 엄시장님 앞에 반성문처럼 끄적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