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 논의가 이어진 끝에 드디어 유의미한 진척이 생겼습니다.
접속시간 의무화 정책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설명보다는 접속시간 의무화 정책이 국민의 자격에 관계된다는 설명이 더 반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저는 이 새로운 주장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접속시간이 10시간 이상 되는 사람만을 기모찌온라인 유저로 인정할 수 있다는 말은 헌법에 반하고 상식에도 맞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서버 접속을 곧 기모찌온라인 유저로서의 자격을 얻는 발생으로 정의해 왔고 이 원칙은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습니다. 불멸하고 불변하는 이 조리(條理)를 지키는 것이 어느 면에서 보나 합리적입니다.
접속시간의 잣대를 내밀어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하는 것은 단순히 상식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이미 한번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사람에게 새로운 잣대를 들이밀며 '너는 국민' '너는 비국민' 하고 갈라치는 것이 어떻게 국민의 안전한 생활을 장려하고 복리를 증진하는 수단이 되겠습니까? 그런 식의 갈라치기가 어떻게든 정당화를 거친다면 다음에 다른 방식으로 갈라칠 때 항변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이미 첫 번째 글에서 강조했습니다. '필요가 없으면 누구든 제거당해도 좋다', '너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비국민으로서 제거당해도 좋다'는 주장이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정말 단 하나도 없는지 고민해 보셔야 합니다. 지금 타인에게 닥쳐온 칼날을 대신 막아주지 않는다면, 훗날 나에게 닥쳐올 칼날을 누구도 막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이 논쟁에 반대파로 참여하는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제거되는 '비국민'이 무시할 정도의 소수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닙니다. 정말 혹자의 주장대로 기모찌온라인 유저의 주간 평균 접속시간이 10시간이라면, 평균이 중앙값에 근접한다고 할 때 우리는 기모찌온라인 유저 중 무려 절반 가까이를 '비국민'으로 매도하고 공직에서 영구히 추방하는 것이 됩니다.
국민의 절반을 새롭게 비국민으로 정의하고 타자화하여 내쫓는 정책이 정상적인 국가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정책으로 올바른 정책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이 정책은 접속시간이 낮았던 공직자 일부의 파이를 떼어내어 나머지 모두에게 분배하는 포퓰리즘 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습니다. 정책의 동기는 증오, 목적은 일부를 희생시켜 파이 분배하기, 수단은 그 일부에게서 (거의) 모든 것을 빼앗기, 이러한 방식으로 굴러가는 정책에 좋은 기대를 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설령 극심한 진통을 거쳐 공직을 접속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분배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산더미 같습니다. 기모찌온라인은 게임이고 공직은 사람이 추구하는 여러 보상 가운데 하나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게임을 더 많이 즐기고 더 많이 노력하는 사람을 위주로 공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은 공직이 가진 고유의 특성을 무시한 채 공직의 보상적 성격만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의 직책과 권력은 지금까지 그의 노력에 보답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에게 사회를 위한 공공 서비스 제공을 맡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게임을 많이 즐기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겠다는 이유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공직의 책무를 망각하고 국가기관의 역량 저하를 초래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시민들에게 돌아갑니다. 시민들은 역량 없는 국가기관에 의존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결성한 민간 영역에 더 의지할 것이고, 이때 사회 여러 집단의 입지는 완전히 역전되고 말 것입니다.
그 참혹한 결과를 직면하고 나서는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이번에는 민간 영역까지 접속시간 의무화를 넓혀 접속시간 10시간이 안 되면 기업에 취직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까? 아예 접속시간을 채우지 못하면 잠재적 비국민 취급하고 사실상의 신분제를 운영할 것입니까? 한번 시작하자면 도저히 끝이 없는 이 정책을 저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고위 공직을 목표나 보상으로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이 문제야말로 제도를 탓해야 할 사안 아닙니까? 기모찌온라인의 기관장들은 여러 차례 기관관리위원회에 모여 기관장의 연임 투표제를 삭제하고 연임 제한을 철폐하며 사실상 자신들의 임기를 무제한으로 늘린 바 있습니다. 연임 투표제와 연임 제한이 폐지되고 난 후 기관장이 연임을 포기하여 자발적으로 물러난 사례는 열 손가락 안에 다 넣을 수 있는 반면, 임기가 끝났음에도 퇴임하지 않고 계속해서 직무를 유지한 사례는 너무 많아 도저히 셀 수가 없습니다.
이 사실을 보면 공직사회의 극단적인 인사 적체와 보상 부재는 기관장들의 도덕적 해이와 이 모순적인 제도에서 기인한 것인데 어떻게 이 문제의 책임을 접속시간 문제로 돌릴 수 있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고 싶어서 접속시간 의무화를 요구한다면 그전에 개혁해야 할 것은 기관장을 포함한 고위공무원의 연임 문제입니다. 자기들은 방을 빼지도 않으면서 기관장 자리를 목표하는 사람들에게 접속시간 의무화 정책을 설파하는 것은 그 자체로 기만이고 언어도단입니다.
접속시간이 업무능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기관들은 이미 공직 인사를 할 때 접속시간 충족을 요하는 인사 정책을 마련하여 시행한 바 있고, 저는 그런 정책에 반대한 바 없습니다. 그것은 국가기관이나 공무원이 유저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반대하는 것은 여러 국가기관의 서로 다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모두에게 일률적인 제한을 부과하고 그 제한을 통과하지 못하면 가혹한 징벌을 가하는 극단적인 정책입니다. 이 정책이 얼마나 불평등한 정책인지는 두 번째 글에서 설명했습니다.
기모찌온라인이 게임이라거나 즐기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 부정의하고 불공정한 정책을 정당화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유저의 즐거움과 행복을 보호하기 위해 부정의와 불공정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은 결국 정의를 가까이하고 불의를 멀리하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사소한 차이라면 모르되, 유저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국가기관의 근원을 파괴하는 심각한 부정의 앞에서 눈을 가리고 참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접속시간 의무화 정책 같은 어찌보면 기괴한 정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이미 기모찌온라인의 제도에 누적된 여러 가지 모순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고위 공직을 순환시켜 인사 적체를 해소하고, 공무원의 인사 평가에 접속률도 반영하며, 고위공무원의 직무 수행을 평가할 때 접속시간도 함께 고려하는 등 점진적이고 충분히 합리적인 방법이 이미 가능했음에도 10시간이 안 되면 모두 쳐낸다는 비정상적인 정책이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이미 기모찌온라인의 시민 사회가 권력 독점과 사회적 모순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병든 근본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임기응변을 위주로 하려다 보니 극심한 반발이 생기고 문제가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근본 원인을 직시하게 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잠깐 쉰다고 TNO 노래 들으면서 글 읽었는데 진짜 선언문같네ㄷㄷ
엥 친척 오타이신듯…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