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당신이 바로 전 글에서 공무원이 더 많은 권한을 가졌기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 것은 딱히 지적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렇게 말해놓고 이제 와서 권한과 공적 책임을 분리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됩니다.


세금으로 급여를 주었으니 그에 맞게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공적 책임에 개별 직종의 특수성에 대한 일말의 고려 없이 접속시간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들어갑니까?


천편일률적 규제를 비판하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에 속합니다. 접속시간 의무화 정책이 법관보다 검사에게 2.7배 가량 불리하다고 일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상황 맥락 고려 없이 모든 공무원에게 10시간을 적용하면 그 가운데 유난히 가혹한 피해를 받는 곳이 반드시 생깁니다.


그런 취지에서 접속시간 의무화의 천편일률성은 현실의 계약이나 법령상 의무와 그 범주가 다릅니다. 계약은 강행규정 내에서 체결한 당사자의 자유이니 말할 것도 없고, 현실의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각종 의무는 그것이 공공기관 및 공직자의 업무 내지 위신 유지에 필요하다는 점에서 옹호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마저도 법령은 공무원이라는 추상적 집단의 의무를 서술할 때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 등 모든 공무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수긍할 만한 추상적이고 규범적 의무만을 부과합니다. 게다가 그 의무를 위반했다는 기준 또한 그로 인해 업무나 기관 위신에 지장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정해집니다. 접속시간 10시간을 모두에게 부과하고 위반 시 처리하는 것과는 아예 다른 범주의 문제입니다.


20만 원의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였다면 이를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겁니다. 제가 굳이 20만 원 배급을 예시로 든 것은 지극히 공적인 영역인 ‘직무에 관한 사회적 책임‘과 대비하여 ‘사적인 무언가‘를 부각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공무원에게 책임이 요구된다는 이유만으로 직무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 사적인 급부를 행할 의무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접속시간 채우기는 너무나도 ‘사적인 행위‘ 아닙니까? ‘들어와서 광질을 해도 낚시를 해도 잠수를 타도 다 좋으니 제발 들어와만 다오‘…이걸 공적인 일이라고 말한다면 인지능력부터가 다른 사람들끼리 더 이상 대화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법과 정책이 과학적 검증을 거치고 철저한 인과관계 위에서 제정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이 과학적 검증에 기초한 최소한의 합리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무원이든 시민이든 누군가에게 의무를 부과함에 있어 심오한 철학적 기반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 정책이 전체 인민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가져오라고 했을 뿐입니다. 저는 사실 제가 한 말이 왜 심오한 철학 이야기로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정책 비판을 하고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저는 오히려 논리성이 결여되었다 하더라도 다수 시민이 원하면 법이 될 수 있다는 당신의 의견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위공무원의 사회적 책임을 근거로 기관관리위원장에게 20만 원 배급을 요구할 수는 없지만 20만 원 배급을 시행하는 법 통과를 요구할 수는 있다고요? 아니요, 둘 다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후자가 두 배는 더 위험합니다. 공무원이 사회적 책임을 진다는 핑계로 지극히 사적이어야 할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수 시민의 동의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법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20만 원의 예시는 말의 핵심을 깨우치는 데 너무 약했나 봅니다. 그렇다면 기관관리위원장의 사회적 책임을 근거로 그에게 군대 가 있는 _Gyul_2의 외설 테이프 비디오를 촬영해서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것을 요구하는 것이 정말 가능합니까?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외설 테이프 비디오를 촬영해서 배포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어도 그러한 내용의 비디오를 촬영해서 배포할 것을 규정한 법을 만들도록 요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기관관리위원장이 _Gyul_2와 둘이서 외설 테이프를 찍든 말든 그것은 공직과 관계없는 사적 영역이므로 우리로서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접속시간에 관해서도 동일하다는 게 저의 핵심 논지입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지금 접속시간 의무화를 찬성하는 쪽은 ‘광질을 해도 낚시를 해도, 심지어 잠수를 타도’ 모두 괜찮은 접속시간 10시간을 어떻게든 채우기만 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미 접속시간 10시간이 사실 공직과 아무런 관련이 없더라도 상관 없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겁니다.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면서 그 의무 자체는 공직의 수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그 의무는 이미 명목상의 정책 의도를 저버린 모순 정책입니다.


첨언하건대 이미 공무원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인해 공무담임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령과 판례가 지속적으로 배척하는 태도입니다. 이미 그 공직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이유로 공무담임권이 침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상식적인 결론이며, 공직 수임을 위해 능력에 기초해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널리 인정됩니다. 직무유기자로 인해 공무담임권이 침해되었으니 보상하라는 취지의 주장이 인용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만약 접속시간이 적은 사람을 직무유기자로 할 수 있다면, 직무유기자의 처우에 걸맞게 징계처분을 내리고 결원이 생긴 그 자리에 새롭게 공직 선발을 진행하면 됩니다. 이미 직무유기죄로 공소제기되거나 징계의결받은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처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직무를 유기하여 공소제기된 사람은 바로 당연퇴직시키라는 말도 하지 않으면서, 왜 접속시간이 낮은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즉각 퇴진시키라는 주장을 합니까? 똑같은 직무유기자인데 둘을 완전히 다르게 대우할 이유가 있습니까? 어떨 때는 직무유기로 징계의결되어 파면 처분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넓은 아량을 보이다가, 또 저럴 때는 징계의결을 어떻게 기다리냐면서 즉각 퇴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는 접속시간이 적은 사람에게 유난히 증오심을 품는 그 감정적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목적의 정당성에 관해서만 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수단의 적합성에 대해서는 아래 몇 문단으로 마치겠습니다.


당연퇴직으로 인해 억울하게 퇴직당하는 사람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직무유기를 한 사람도 제거하는 효과가 있으니 괜찮다는 주장은 맹세컨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국가가 그 공권력을 통해 강제적으로 침익행위를 하고자 할 때는 최대한 잘못 없이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드느니 99명의 진범을 풀어주겠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1명의 억울한 사람을 위해 99명의 진범을 포기하는 이유는 그 1명의 억울함이 나머지 99명을 징벌하는 이익을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미 억울하게 퇴직당한 사람이 있다는 전제 하에 나머지 진짜 직무유기자들을 전혀 고려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미 정당한 이유도 없이 당연퇴직을 당한 사람이 있는 순간부터 이건 ‘다소간에 괜찮게 작동하는 정책’이 아니라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정책’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정책이 직무유기자들을 퇴직시키는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이 정책의 정당성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빨갱이 때려잡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빨갱이가 지나간 모든 땅을 불태운 뒤 1명의 빨갱이와 99명의 민간인이 죽은 것을 성공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시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겨우 직무유기자 몇 명을 날리기 위해 그런 극단적 수단을 동원해야 할 근거도 없고 무엇보다 그것은 명백한 위법입니다.


저는 오히려 몇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 정책을 묵인 내지 옹호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어떠한 이유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국가의 권력과 정책이 얼마나 신중하게 다뤄져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까? 지금 당장 내게 향하지 않으니 조리할 때 유용한 식칼처럼 느껴집니까? 이제 세 번째 강조하지만 저 칼날이 오늘 당장 나를 향하지 않는다고 안심한다면 다음에 나를 위해 칼을 막아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10시간 제한이 서로 다른 직종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사실, 그래서 심각한 불평등이 유발된다는 사실을 이것으로 세 번째 말합니다. 제발 이 점도 고려해서 판단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0시간 제한에 미달 시 일괄 퇴직시킨다는 것 또한 이 정책이 포함한 여러 수단 중 하나입니다. 여러 가지 다른 수단이 있었음에도 굳이 이 수단을 택한 그 순간부터 정책은 책임을 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정책 효과의 부작용과 수단의 잘못을 분리하면서 책임을 덜어주려 시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인정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