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검사로 하겠습니다.”


잠깐의 정적.


안내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그의 형체가 흐릿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사라졌다.


“…끝인가.”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 변화도 없다.


정말—

이게 끝인가 싶던 순간.


지직.


머릿속 어딘가가 긁히는 느낌이 들었다.


“…뭐야.”


지직, 지직—


귀가 아니라.

머리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보였다.


[죄인]


“…뭐야, 저건.”


길을 지나가던 평범한 남자.

그 머리 위에—

붉은 글자가 떠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남자를 바라봤다.


그 순간.


정보가 쏟아졌다.


이름.

나이.

그리고—


‘기록’.

“…하.”

숨이 짧게 끊겼다.


강제적으로 머릿속에 밀려 들어오는 장면들.


누군가를 협박하던 모습.

억지로 침묵시키던 순간.

피해자의 눈.


“…이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속이 뒤집힌다.


그저 ‘안다’는 수준이 아니다.


겪은 것처럼 느껴진다.


“…미친.”


그 남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대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저게.”


저게—


죄인이다.


그때.


“보이시는군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정장을 입은 여자.

흐트러짐 없는 자세.

그리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


“안녕하십니까, 김규태씨.”

“…누구십니까.”

“선임 검사, 이희영입니다.”

“…선임?”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희영이 아주 미세하게 웃었다.


“너무 빠른 전개라고 느끼셨습니까?”

“…뭐?”

“당연합니다.”

그녀는 한 발 다가왔다.

“보통은 이 단계까지 오는 데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녀의 시선이

아까 그 남자를 향했다.


“하지만—”

“김규태씨는 다르네요.”

“…무슨 뜻이죠.”

“이미 ‘죄인’을 구별하고 계십니다.”


짧은 침묵.


나는 다시 남자를 바라봤다.


붉은 글자.


그리고—

머릿속을 짓누르는 기록.


“…이게.”

나는 낮게 말했다.

“검사의 능력입니까.”

“정확히는—”

이희영이 답했다.

“자격입니다.”

“…자격.”

“죄를 인식하고,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존재.”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게 검사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시선을 다시 남자에게 돌렸다.


“…그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인간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희영이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직접 보시겠습니까?”

“…뭐?”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빠르니까요.”


그녀는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잠깐.”

나는 반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저 사람—”

“죽는 겁니까?”


이희영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닙니다.”


짧고 단호한 대답.


“죽이지 않습니다.”

“…그럼.”

“분리합니다.”

“…분리?”

“육체와 영혼을.”


나는 말을 잃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심판은 영혼이 받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손이 내려왔다.


툭.


남자의 가슴 위에 닿는 순간—


빛이 터졌다.


“…!”


남자의 몸에서—

무언가가 끌려 나오듯 올라왔다.


형태.

윤곽.


그리고—


사람.


“…저게.”

“영혼입니다.”


이희영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남자의 영혼이 비명을 질렀다.

“뭐야!! 이게 뭐야!!”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이제 이동합니다.”


그 순간—


시야가 뒤틀렸다.


공간이 찢어지듯 갈라졌다.


빛.

소리.

감각.


모든 것이 한 번에 뒤섞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공간에 서 있었다.


“…여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면서—

모든 것이 존재하는 공간.


“천계 재판장입니다.”


이희영의 목소리.


남자의 영혼이 바닥에 내던져졌다.


“여긴 어디야!!!”

“이거 놔!!!”


하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이희영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사건번호.”


그녀가 입을 열었다.


“H-10001.”


그 순간.


공기가—


무거워졌다.


숨이 막힌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공간을 짓누른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늘이—


조용히 갈라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무언가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허가한다.”


단 한 마디.


하지만—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지배했다.


이희영이 말했다.


“죄인 김호철.”

“다수의 범죄 기록 확인.”


기록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남자가 발악했다.

“이거 놔!! 니들 뭐야!!”


이희영의 눈빛이 식었다.


“…조용히 해라.”

“…죄인.”


그 한 마디.


남자의 몸이 굳었다.


“판결을 요청합니다.”


짧은 정적.


그리고—


“…허락한다.”


그 순간.


이희영이 손가락을 튕겼다.


탁.


남자의 존재가—

빛처럼 부서졌다.


완전히.


사라졌다.


정적.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하.”


숨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이게.”

나는 낮게 중얼거렸다.

“검사입니까.”

“그렇습니다.”


이희영의 목소리는 변함없었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좋네요.”


고개를 들었다.


“이거.”

“마음에 듭니다.”


이희영이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녀가 돌아섰다.


“그럼 이제—”

“정식으로 합류하시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였습니다.”


이희영은 웃어보였다.


“그럼 다행이군요, 따라오시죠”

“정식으로 합류하셨으니 검찰국으로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나는 말없이 그녀를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문 앞에 멈춰 섰다.

문 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3검찰국]

“여깁니다.”

이희영이 문을 열었다.

끼이익—

문 안쪽은 의외로 단순했다.

책상들이 정렬되어 있었고,

각 자리마다 무언가를 검토하고 있는 존재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신입인가.”

짧고 건조한 목소리.

이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 새로 배치된 김규태 검사입니다.”

그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위에서 아래까지 훑는다.

평가하듯이.

“…얼마나 버틸지 보자고.”

그 말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버티는 건 자신 있습니다.”

남자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래.”

“그럼 바로 일부터 하지.”


그 순간—

내 앞에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서류.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사건번호 10002]

이름: 박진수

나이: 34세

죄목:

보험 사기

고의 교통사고 유발 (3건)

피해자 1명 사망 (입증 실패)

현재 상태:

무죄 판결 후 일상 복귀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

익숙하다.

너무 익숙한 케이스다.

증거 없음.

입증 실패.

그리고—

무죄.


“첫 사건이다.”

남자가 말했다.

“직접 내려가서 데려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 바로입니까?”

이희영이 옆에서 말했다.

“예.”

“실습은 끝났으니까요.”


잠깐의 정적.


나는 서류를 덮었다.


“좋습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에는—”


눈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도망 못 칩니다.”


그 순간—

공간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