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은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 원짜리

낡은 붉은 벽돌 빌라의 3층 구석방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그 집에선 미지근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앞 세입자가 나간 지 얼마 안 돼서 환기가 덜 됐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그 냄새는 환기 따위로 해결될 냄새가 아니었다.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분명 장마철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벽지는 항상 묘하게 눅눅했고, 장판 밑을 들추면 희끄무레한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그래도 돈이 없었기에 나는 참았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서 집은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돌아와 잠만 자는 공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가을로 접어들 무렵, 침대 머리맡 쪽 벽지 뒤에서 나기 시작한 소리였다.


처음에는 그저 쥐나 벌레같은게 무언갈 갉아대는 소리인 줄 알았다.


'사각, 사각, 사각…….'


아주 규칙적이고 가벼운 소리.

귀를 벽에 바짝 대면 석고보드 너머에서 무언가 아주 작은 발톱으로 벽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름이 돋았지만, 오래된 빌라에 쥐가 있는 건 흔한 일이니 다음 날 다이소에서 끈끈이를 사다 구석에 놓아두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끈끈이는 여전히 깨끗했다.

쥐가 없어진건가 잠시 기대했었지만 소리는 계속해서 매일 밤마다 들려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가 사라지기는 커녕 그 소리의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날엔

'스르륵...... 툭. 스르륵...... 툭...'


또 어떤 날에는

'사각... 툭. 툭. 사각... 툭. 툭.'


마치 물에 젖은 무거운 천을 벽 뒤에 가져다 대고 천천히 끌어올리는 소리... 혹은 벽지를 조금씩 긁어대다가 툭툭 두드리는 듯한 소리...


그 소리의 형태가 바뀔 때마다 벽에서 나던 그 비릿하고 역한 냄새가 더 짙어졌다.


이건 단순한 곰팡이 냄새가 아니었다.

미치 여름날 길가에 방치된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서 흘러나오는 즙, 혹은 오래된 하수구 바닥에서 풍기는 썩은 비린내와 닮아 있었다.



10월 중순쯤 되자, 연한 미색이던 벽지 한구석이 거뭇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가로세로 한 뼘 정도 크기로 시작된 검은 얼룩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매일 밤 미세하게 번져나갔다.


손가락으로 그 얼룩을 짚어보았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확 떼고 말았다.


차가웠다.


단순히 서늘하거나 축축한 수준이 아니라, 얼음물을 머금은 수건을 만지는 것처럼 축축하고 기분 나쁜 냉기가 손끝을 타고 느껴졌다.


게다가 벽지가 미세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마치 벽 뒤의 무언가가 주먹으로 벽 안쪽에서 벽지를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부푼 벽지를 눌러볼까 하는 생각도 처음인 들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날 밤, 나는 침대 방향을 반대로 돌려 누웠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듯했던 소리가 이번엔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르륵..... 스르륵......'


이제 그것은 긁는 소리가 아니었다. 무언가 눅눅하고 부드러운 것이 벽지 뒤를 문지르며 기어 다니는 소리였다.


마치 손바닥으로 벽을 더듬는 것처럼.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숨을 죽였다.

내 거친 숨소리 사이로 벽 너머의 소리가 묘한 박자를 맞추는 것 같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참다못한 나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벽지가 썩어가고 소리가 난다며 항의했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툴툴거리며 도배사를 불러주겠다고 했다.


이틀 뒤, 도배사가 작은 가방을 들고 찾아왔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찡그렸다.


"아이고, 냄새가 왜 이래? 이런 집에 사람이 살았었어요?"


"제가 지금 살고 있잖아요... 벽 뒤에 쥐나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물이 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도배사는 커터칼을 꺼내 얼룩진 벽지 가장자리에 칼집을 넣었다. 칼날이 벽지를 가르는 순간, 훅 하고 풍겨 나온 악취에 나는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것은 단순히 썩은 냄새가 아니라, 무언가 유기물이 완전히 부패했을 때 나는, 뇌를 찌르는 듯한 지독한 냄새였다.


"어이쿠, 이거 물이 새는 정도가 아닌데..."


도배사가 칼날을 든 채 벽지를 쭉 잡아당겼다.


'찌이이익ㅡ'


오래된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벽지가 벗겨졌다. 그리고 그 뒤에 드러난 벽면을 본 도배사는 들고 있던 커터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벽은 시멘트가 아니었다.


원래는 콘크리트였어야 할 그 자리에, 누군가 급하게 파낸 듯한 좁고 깊은 틈새가 나 있었다. 가로 30센티미터, 세로 1미터 정도의 길고 좁은 틈. 그리고 그 틈새 안쪽은 시커먼 진흙 같은 것과 함께...


수많은 머리카락이 엉겨 붙어 있었다.


마치 하수구 구멍에 고인 머리카락 뭉치처럼, 길고 검은 털들이 틈새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그 머리카락들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방 안으로 흘러든 바람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마치 숨을 쉬듯, 아주 느리게 오므라들었다가 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게... 이게 뭐야?"


도배사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그는 뒷걸음질을 치다 이내 방 한가운데에 주저앉았다.


내가 굳어 있는 사이, 벽지의 남은 부분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아래로 툭 떨어졌다.


완전히 드러난 틈새 안쪽, 머리카락 뭉치들 사이로 무언가 허옇고 매끄러운 것이 보였다.


사람의 이마였다.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 가면서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아주 좁은 틈 사이에 강제로 구겨 넣어린 사람의 얼굴 윗부분.


그것은 벽 속에 서 있는 채로, 아니, 벽 안에 갇힌 채로 나를 향해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발견한 순간, 틈새 속의 머리카락들이 일제히 곤두서듯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그 썩어가는 이마 아래, 감겨 있던 눈꺼풀이 서서히 들리는 것이 보였다.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탁하고 허연 점액만이 가득 차 있었고, 그것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스르륵......'


벽 뒤에서 나던 그 소리가 이제는 벽 밖으로, 방 안의 공기를 타고 직접 들려왔다. 그것이 틈새 속에서 몸을 비틀며 앞으로 아주 조금, 1센티미터쯤 상체를 내밀었다. 벽지 뒤에 고여 있던 비릿한 진물이 바닥 장판 위로 뚝, 뚝 떨어졌다.


"으아아악!"


도배사가 먼저 비명을 지르며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가 발목을 묶은 것 같았다. 그 좁은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썩은 냄새가 내 목구멍을 가득 채웠다.


그것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이가 다 빠져 짓무른 잇몸 사이로 검은 물이 흘러내리며, 아주 낮고 축축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추워..."



그날 이후 나는 그 방에 단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짐도 모두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들어가기 전 그 방에 살던 세입자는 어느 날 야반도주를 했다고 했다. 집주인은 그가 월세를 밀려 도망친 줄로만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이 그 벽을 허물었을 때, 틈새 속에서 나온 것은 야반도주했다던 세입자의 시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최소 5년은 그 벽 속에 갇혀 있었던 또 다른 사람의 유해였다.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내가 도망쳐 나온 뒤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 벽 속의 시신은 이미 완전히 부패해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내가 본 그 젖은 이마와 움직이던 머리카락, 그리고 내게 춥다고 속삭이던 그 목소리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는 지금도 매일 밤 잠들기 전, 새로 구한 자취방의 벽지를 손으로 쓸어본다. 혹시라도 벽지가 축축하지는 않은지, 귀를 대면 벽 너머에서 무언가 긁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