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센터 인부들이 떠난 뒤의 집은 고요했다.


경기도 외곽, 신도시 개발 구역에서 빗겨나간 낡은 연립주택 2층.


아내인 지수는 거실에 쌓인 박스들을 정리하다 말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지수야, 이것 좀 도와줄래?"


내 목소리에 지수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떨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았던 창밖에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었다.


지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미안, 수현아. 낯설어서 그런가 봐. 그나저나...

이 집... 묘하게 조용하네."


조용한 게 아니라 먹먹한 것이었다.


벽지 너머에서 이웃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고립감이 우리가 가진 전 재산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평화였다.


서울에서의 실패를 뒤로하고 내려온 이곳에서, 나는 지수가 다시 예전처럼 웃기를 바랐다.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난 저녁, 우리는 주방에 마주 앉았다.


지수는 이사 첫날은 잘 먹어야 한다며 근처 재래시장에서 사 온 식재료로 매운탕을 끓였다.


좁은 주방에 비린내가 섞인 매콤한 증기가 가득 찼다.


"이거, 시장 할머니가 오늘 아침에 갓 잡아 올린 거라고 하더라."


지수가 커다란 냄비를 식탁 한가운데 놓았다.


빨간 국물 위로 미나리와 고춧가루가 둥둥 떠 있었다.


그런데 국자 건져 올린 생선 토막을 보는 순간, 나는 숟가락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냄비 속에서 커다란 잉어의 머리가 나를 향해 꼿꼿이 세워져 있었다.


푹 익었을 텐데도 생선의 눈은 백탁 없이 투명했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식탁 위 형광등 불빛을 반사하며 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지수야, 이거 손질을 좀 더 해야 했던 거 아냐?"


"왜? 싱싱하고 좋잖아. 어서 먹어."


지수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그릇에 국물을 담았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생선의 살점을 발라 입으로 가져갔다.


'쩍, 쩍.'


지수가 음식을 씹는 소리가 평소보다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마치 뼈째로 으스러뜨리는 듯한 기괴한 저작음..


나는 묘한 이질감에 목구멍이 조여왔다.


지수는 원래 생선 비린내조차 싫어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국물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생선 눈알을 파내고 있다.




"나 잠시 담배 좀 태우고 올게."


속이 메스꺼워진 나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베란다로 나가는 복도는 불을 켜지 않은 탓에 어두웠다.


슬리퍼를 끌며 걸음을 옮기는데, 발바닥에 무언가 끈적한 것이 닿았다.


불을 켜자, 낮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 보였다.


안방과 거실 사이, 벽지 하단부에 아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누군가 송곳으로 정교하게 뚫어놓은 듯한 구멍...


그 주변으로 검붉은 액체가 튀어 있었다.


나는 홀린 듯 무릎을 굽히고 앉아 그 구멍에 눈을 가져댔다.


구멍 너머는 분면히 안방이여야 핬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우리 집 안방이 아니었다.


좁은 구멍 사이로 보이는 공간은 온통 시커먼 어둠뿐이었고, 그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작고 하얀 것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벌레 같기도 했고, 아주 작은 사람의 손가락 같기도 했다.


"사박, 사박, 사박...'


낮에 들었던 환청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소리는 구멍 너머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그때, 구멍 저편에서 무언가 커다란 것이 슥 하고 지나갔다.


그리고 칠흑 같던 구멍이 갑자기 충혈된 선홍색으로 가득 찼다.


반대편에서 누군가 이 구멍에 눈을 대고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식탁에서 봤던 잉어의 눈과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수현아, 거기서 뭐 해?"


뒤에서 들려온 지수의 목소리에 깜짝놀라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지수는 언제 왔는지 내 바로 뒤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채 닦지 못한 잉어의 붉은 국물이 번져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벽에 구멍이 있길래..."


"구멍..? 무슨 구멍?"


지수가 내가 보고 있던 벽면을 쳐다봤다.


나도 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방금까지 분명히 존재했던 구멍은 온데간데없었다.


매끄럽고 깨끗한 새 벽지만이 형광등 아래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피곤한가 보네. 어서 가서 자자."


지수가 내 손을 잡았다.


근데 그녀의 손은 방금 뜨거운 매운탕을 먹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머리맡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 때문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낮에 들었던 소리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끔찍한 소리였다.


`'쩍, 쩍, 쩝…….'


아내가 식탁에서 잉어를 씹던 그 소리.


그 소리가 지금 내 머리 바로 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지수는 내 옆에 누워 있었지만, 지금 그녀의 숨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옆을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서서히 젖어오는 베개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배개에서는 낮에 맡았던 그 지독한 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