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체제는 인간을 구속상태에서 해방하여 자유로운 개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행동양식, 사유 등을 제한해놓고 자기네들 듣기 좋고 대중들도 속여넘길 수 있는 이름표를 붙이는 통치방식을 취한다.
열린 사회 운운하지만 체제의 우리를 벗어나면 여지 없이 탄압하는, 그러나 전체주의 국가의 폭력성 어쩌구 하며 대중에게 새겨놓은 이미지를 신경쓰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주 섬세하고도 비열한 방식을 취하는 것이 현실이다. 안티파 같은 사실상의 어용 정치깡패를 통한 직간접적 폭력과 매스미디어를 통한 악의적 보도, 노출은 기본이고, 직장 상사에게 밀고하여 생계를 파탄내버리기도 하는 모습은 자유주의의 본산이고 최대 실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통해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문화 역시 무한정의 소비와 말초신경 자극원의 접근성(ex.공짜 포르노)을 바탕에 두어 지금의 대중, 주류문화라는 것은 옛날 히트작 우려먹기, 인간성 고취가 아닌 동물로 퇴화시키는 형태로 인간에게 접근한다.
자유주의 이전의 고대, 중세와 비교해도, 자유주의 역사 내에서 전기 후기 등으로 나누는 식으로 비교해도 현대 자유주의의 구체화는 인간이 인간 최저점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아낸다. 1945년 이후 세대를 대상으로 물어도 50년대가 이상적이었다, 80년대야말로 황금기였다는 등 일상에서조차 현대를 암흑기로 인식한다. 그럼에도 왜 대중은 현 체제에 순응하며 이를 극복할 의지조차 갖지 못하는가? 민주주의가 역사상 존재해온 정치체제들을 빼고 가장 안 좋은 체제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은 어찌하여 그렇게 큰 힘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 분명히 미학적 요소나 소비상품의 질 따위를 제외하면 인류는 자유주의 이상에 동의하고 있다. 알게모르게 경험적으로, 특정 선을 넘으면 나락으로 추락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채 말이다. 자유주의 이념은 실로 노골적으로 위선적이다.
이런 체제가 월드와이드웹,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 같은 사회연결망의 발전, 그리고 이들과 인간을 하루도 떨어지지 않도록 연결시켜주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매개체의 등장을 통해 그 고유의 통치기법을 강화해나간다. 기술을 자끄 엘륄의 사상을 빌려 정의하자면 결국 사회, 문명이 효울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법들의 총합이다. 인터넷 기술의 등장과 융성은 하나의 지구촌이라는 자유주의 체제의 이상에 맞추어 지구의 모든 인간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익명의, 특정 다수의 지배층에게 선사했다는 것에서 의미를 갖는다. 인터넷은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가 아닌 거위 식도에 꽂힌 깔대기와 거위의 위장에 투하되는 옥수수 사료라고 할 수 있겠다. 사기업이라는 명분으로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이 각국 시민들이 표출하는 의견을 갖가지 방식으로 억죄는 행태 자유주의 체제가 기술에 올라타 궁극적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중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후대에 기록되지 않을까.
가스샤워실 안에서 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