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겁나던 시절에서 아무것도 겁나지 않는 시절로 넘어온 느낌이에요.”

 

그래, 서류를 갖고 도재를 찾아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사라에겐 도재를 협박할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음을 예상하긴 했다. 이를 직접 보니 안심이었다. 사실 둘 사이의 신경전은 후계자 자리다툼이라기보다는 조금은 스케일이 클 뿐인 일반적인 남매싸움으로 비쳤을 뿐이다. 동생이 일방적으로 오빠에게 으르렁대는 관계에는 필시 도재의 병으로 비롯된 오해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바. 그 오해를 어떻게 알게 될지 그리고 그 오해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가 가장 궁금했다. 도재의 병에 대해 알자마자 바로 찾아온 사라. 대화를 통해 그간의 행동에 대한 미안함을 표하는 동생과 그런 동생의 마음을 덜어내주는 오빠. “다 알아봤어.” 사라의 두려움 없이 올곧은 걸음걸이를 알아봐준, 동생이 자신에 대해 오해를 하고 화를 냈던 것은 나 때문이라는 도재. “미안하다.” 또 한 번 누군가에게 먼저 사과하는 도재다. 자신의 병을 밝히지 못한 미안함과 동생반응에 대한 자신의 지레짐작을 사과하는 미안함’, 병으로 비롯된 오해 자체에 대한 미안함등이 뒤섞인 복합적인 사과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기적인 내가 보기에 도재가 미안할 이유는 없다 생각했기에 이 순간 먼저 사과를 하는 도재가 더없이 대단해 보였다. 동생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자신이 먼저 미안하다 말하는 용기. 사람으로서, 오빠로서 완벽한 도재다.

 

매번은 아니겠지만, 도재가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는 주환이다. 사라에게 병에 대해 들켰음을 덤덤하게 털어놓는 도재와 이를 사표로 책임지겠다는 주환. 일반적으로 미안함보다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고마움이지만 도재의 주환을 향한 고마움은 미안함이 스며들어 있기에 그간 건네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낱 일 뿐인 상사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항상 애쓰고 사표까지 마다하지 않는 주환에게 단순히 미안함만 느꼈다면 벌써 말했을 것이다. 단순한 미안함보다 말하기 힘들었을 미안함을 동반한 고마움을 주환에게 건네는 도재다. 어쨌든 잃을 것이 많아 가족에게 병을 선뜻 밝히기가 힘들었던 도재는 일단 사라라는 큰 산 하나를 생각보다 수월하게 넘었다. 남은 건 우미라는 다음 산. 우미와 평생 갈 사이라는 세계, 결심을 한 도재다. 막상 발걸음을 떼보니 다행히도 산은 아니고 언덕 정도였을까. 발병 이후로 제 3자에게 속 시원하게 밝힌 적이 없었을 도재가 세계의 친구들에게 병을 고백한다. 사랑하는 연인 덕분에 큰 변화를 결심하고 경험해보는 도재다. 사람들과 복작거리는 가운데 술잔을 기울이며 우정을 느끼고 쭈그리도 되어보고(feat. 괜찮아. 난 편견 없으니까). 10년의 세월 속에서 딱딱한 껍데기 속에 자신을 가두던 도재가 이제 그 껍데기를 부수고 햇빛을 만끽하기 시작한다. 평생 못 느낄 줄 알았던 그 햇빛이 좋고 신기한 도재다.

 

도재네 집. 조선백자 한 점과 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세계. 일전에 주환이 했던 비유로 인해 세계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된 도재였기에 조선백자 옆의 그녀가 피식 웃음이 새어나올 상황임이 분명하다. 자신이 조선백자와 닮았다는 도재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과 함께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을까궁금해하는 세계. “한세계씨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졌기에 사랑하게 된 도재다. 그녀를 만났기에 모든 게 겁나던 시절을 넘어 아무것도 겁나지 않는 시절로 온 듯하다는 도재. 이 말은 결국 참 애달프게 됐다. 도재가 세계를 만나 이제 겨우 행복한 시절을 누리려나 했는데, 세계에게 비밀발각의 위기가 닥쳐왔다. 세계의 비밀을 지키고자 목숨을 건 그녀의 친구 유미. 우미의 사고소식을 접한 도재가 혼비백산 병원으로 달려왔으나 세계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건질 수 없고. 은호와의 연락 끝에 겨우 세계를 찾나 했더니, 문자 한 통 남기고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 그녀다. 눈 앞에 닥친 시련을 도재와 같이 감내하기에는 너무나 충격이었던 모양인 세계. ‘자신때문에 목숨까지 건 소중한 친구에게 느끼는 죄책감을 아무런 죄 없는 도재와 함께 나누기엔 너무나 착한 세계였을 터.

 

그저 홀로 남겨진 도재. 일에 집중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업무보고를 받는 와중에도 알림음이 울리면 황급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대답 없는 세계에게 문자를 보내고.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기억 속 세계와 닮은 차림새의 여자를 보면 한달음에 달려나갈 정도로 머릿속이 온통 세계로 가득 찼다. 세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는 와중에 어느새 해가 저물고 도재는 대형 옥외 광고판 속 세계를 만난다. 어디에나 있는 세계가 정작 옆에 없다. 말로 표현 못 할 답답함을 느끼곤 발걸음을 마저 옮기는 도재다. 이후 길을 건너다 횡단보도에서 한 할아버지와 지나친 도재는 직감적으로 세계를 느낀다. 차들이 맹렬히 지나다니는 대로를 가운데 둔 채 서로를 마주한 두 사람.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얼굴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세계, 도재가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세계는 또 사라지고 만다. 세계의 잔상을 쫓는 도재의 표정엔 쉬이 알 수 없는 감정이 스며든다. 세계의 본래 얼굴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충격? 또 다시 사라진 세계에 대한 허무감? 그래도 세계의 생사를 알았다는 안도감? 이 순간 도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혐생끗 리뷰시작인줄 알앗는데 감기걸려서 이제겨우 하나해서 올린다ㅇㅇ 갤럼들 감기조심해ㅐ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