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 꽃이 한창인 숲(花ざかりの森)
그녀는 숲의 꽃이 한창일 때 죽어갔다.
그녀는 다른 곳에 더 푸른 숲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샤를 크로 산인(散人)
서장
이 토지에 온 이후로는, 내 기분에는 은둔이라고도 이름 붙이고 싶은, 그런, 이상하게 늙은 마음이 흘끗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이 토지는 나 자신으로도, 또 내 핏줄의 위로도, 어떤 연고가 없는 토지에 지나지 않는데, 언젠가는 나 자신, 그렇게 해서 나 이후의 핏줄에, 무엇인가 깊은 연관도 가지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 기분을 안은 채로, 집의 뒤편의, 좁은 이끼가 낀 석단에 올라, 구경 이외에는 이렇다 할 용도가 없는 5평 정도의 풀이 한쪽 면에 무성해 있는 고루에 서면, 나는 언제나 조용한 멍한 마음과 함께, 지나온 세월에의 타는 것 같은 향수를 느꼈다. 여기 바로 아랫마을을 품에 안고 있는 산맥을 향해, 압박하고 있는 내해가, 여기부터는 한눈에 보였다. 아침과 저녁 무렵에, 마을 변두리에 접해 있는 선착장에서, 어떤 대도회와 연락하는 기선이 나가는 것이지만, 그 기적소리는, 여기에서도 초조할 정도로 똑똑히 들렸다. 밤에는, 불을 가득 붙인 골무만 한 배가, 힘껏 원양을 향해 갔다. 그런데도 그런 선향(線香)만 한 작은 불꽃의 엇갈리는 모양은, 보고 있어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나는, 추억 따위는 시시한 것이라고 거듭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겨우 1, 2년 전의 일이다. 나는 어떤 편견으로부터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추억은 지나간 날의 생활의 빈 껍질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 가령 그것이 미래에의 과실의 임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이미 현재를 잃어버린 쇠한 사람을 위한 것일 뿐 아닌가, 라고. 열병과 같은 젊음은, 저런 생각에, 함부로 걸핏하면 긍정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 멀쩡한 동안은, 나는 그것과는 다른 생각의 방향으로 쉽게 이동하고 있었다. 추억은 ⌜현재⌟의 가장 청순한 증거인 것이다. 사랑이라느니 그리고 헌신이라느니, 그런 현실에 두기엔 너무 청순한 것 같은 감정은, 추억 없이는 그것을 점치지도, 찾아 헤매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낙엽을 밀어 헤쳐 찾은 샘이, 처음으로 푸른 하늘을 비추는 것과 같다. 샘 위에 떨어져 흩어져 있는 곳에서, 낙엽들은 결코 하늘을 비출 수는 없는 것이니까.
우리에게는 실로 여럿의 선조가 있다. 그들은 마치 아름다운 동경처럼 우리의 안에 사는 것도 있는가 하면, 속이 타게, 심한 거리의 너머에 서 있는 것도 적지 않다.
선조는 종종, 신기한 방법으로 우리와 해후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인 것이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빛이 아름다운 날 따위에, 우리는 지팡이를 짚고서, 공원의 울타리에 다가가거나 할 것이다. 문에 들면, 그것은 극히 한산한 시간인가 무엇인가로, 사람 그림자 보이지 않는 넓은 장소가 비길 데 없는 그리운 것으로 생각된다든지 할 것이다. 평소는 지팡이 따위 들 일이 없는 주제에, 아무런 생각 없이 지닌 그것은, 먼 옛적, 가까스로, 일 초인가 이 초 동안 만지게 해준 가보의 투구의 감촉 따위를, 문득, 생각나게 한다든지 할 것이다. 그럴 때다.
먼 연못 근처의 벤치에서 (그것은 연못의 반사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 때문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예절있게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푹 쉬고 있다. 문득 그 사람이 이쪽을 본다. 그러자 왜인지 매우 쾌활한 모양으로 일어서서, 거의 달릴 것 같이, 햇빛을 누비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어린애 같은 열심으로, 마침 예기하고 있던 그림처럼 그 사람을 응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거리까지 오면 물고기가 물의 푸른색에 녹아들어버리는 것처럼, 급격히 그 가까운 사람은 햇빛에 녹아버린다. ⸻그러나 어쩌면, 이 나의 고백으로부터, 누군가는 가문의 예복과 하카마를 걸친 대략의 노인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는 쪽이 진짜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매우 드문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주, 신사복을 입은 청년이거나 젊은 여자거나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해서 지나치게 생각해선 안된다. 그들은 모두 입을 맞춘 것처럼, 수수한, 눈에 띄지 않는, 가지런한 모습을 하고 있다, 대단히 먼 곳에서 우리에게 미소를 전해온다, 마치 우리의 안에 그런 미소만을 끌어당겨 보이는 자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미소는, 그러나 애달픈, 동경에도 가까운 듯한 일편단심을 보이고 있다. ······
선조가 정말로 우리의 안에 산 것은, 도대체 얼마나 옛날이었을까. 오늘, 선조들은 우리의 심장이 너무나 여러가지 것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안에 주거를 바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들은 애처롭게, 들썽거리며 시계처럼 그 주위를 돌고 있다. 이렇게 엄(嚴)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따로따로 떨어져버린 시대를, 그들은 꿈을 꾸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금, 그들은,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서로 떨어진 때와 같은 이별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다. 엄한 것은 이제 거칠고 조잡한 암석의 성질을 갖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미는 수려한 분마이다. 일찍이 안개가 자욱이 낀 아침의 하늘을 향해서, 사납게 우는 채로, 그것은 꼼짝않고 제지되어 억압되어 있었다. 그런 때만, 말은 무구하고 유례없이 상냥했다. 그러나 지금, 엄함은 고삐를 풀었다. 말은 몇 번이나 발이 채여, 그래서 몇 번이나 일어서면서 곧장 달려갔다. 이제 무구하지 않다. 진창이 살을 더럽게 물들여버리고 있었다. 정말로 드문 일이긴 하지만, 지금도 다시, 사람들은 더럽혀지지 않은 백마의 환영을 보는 일이 없지는 않다. 선조는 그런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다. 서서히, 선조는 그 사람의 안에 살게 될 것이다. 여기에 용하게도 고귀한, 공동생활이 실마리를 가지는 것이다.
그 이래 선조는, 그 사람의 안의 진실과 벽을 접하고 살게 된다. 이 어지러운 세계에 있어서는, 그저 변증의 수단일 뿐이었던 진실이, 그 본래의 의상을 몸에 걸칠 것이다. 지금까지, 나태하고 소극적이었던 그것이, 아름다운 과감함을 되찾을 것이다. 선조는 가만히, 그 새로운 진실에 의해, 길러지는 것을 기다릴 것이다. 참으로 선조는, 대단히 상냥한 양식으로, 양육되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 모습은 작동하는 것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은 늘 수동의 자세를 흐트리는 일이 없다. 매우 극단의, ⸻예를 들면 저녁놀이, 밤의 침입을 예감하는 것처럼, 두려움과 긴장의 한창에, 한층 더 눈에 띄게 빛나는 찰나⸻, 있는 그대로의 모양으로 자신을 멈춰서, 일초라도 길게 ⌜완전⌟을 가지고, 조금의 하자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소극하기 짝이 없는 물과 닮은 긴장의 아름다운 일순이고 구원(久遠)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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