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아무리 하여도 소설이라는 객관적 예술 장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의 여러 가지 퇴적을 내 안쪽에서 느끼기 시작했지만, 나는 더이상 20세의 서정시인이 아니고, 우선, 나는 일찍이 시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이런 표백(表白)에 적합한 장르를 모색해, 고백과 비평의 중간형태, 말하자면 「간직해둔 비평」이라고도 말할 만한, 미소하고 애매한 영역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고백의 밤과 비평의 낮의 경계인 황혼(黄昏)의 영역이고, 어원대로 「誰そ彼(사람의 모습을 분간할 수 없는 때*)」의 영역일 것이다. 내가 「나」라고 할 때, 그것은 엄밀히 나에게 귀속하는 「나」는 아니고, 나로부터 출발한 말의 모든 것이 나의 내면에 환류하는 것은 아니고, 그곳에서 무엇인가 귀속이나 환류하지 않는 잔재가 있어서, 그것이야말로 나는 「나」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한 「나」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는 사이에 나는 그 「나」가, 실로 내가 점하는 육체의 영역에 꼭 부호화되어 있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육체」의 말을 찾고 있던 것이다.
나의 자아를 집으로 하면 나의 육체는 이것을 둘러싼 과수원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과수원을 멋지게 경작할 수도 있었고, 또 들풀로 우거진 채로 방치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나의 자유였지만, 이 자유는 그 정도로 이해하기 쉬운 자유는 아니었다. 많은 사람은 자기 집의 정원을 「숙명」이라고 부를 정도기 때문이다.
언젠가 생각이 떠올라 나는 그 과수원을 부지런히 경작하기 시작했다. 쓰인 것은 태양과 철이었다. 끊임없는 일광과 철제 농기구가, 나의 농경의 무엇보다 중요한 두 요소가 되었다. 그러한 과수원이 서서히 열매를 맺음에 따라 육체라고 하는 것이 나의 사고의 큰 부분을 점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또 무언가 깊은 계기 없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곰곰이 자신의 유년기를 회상하면,나에게 있어서는 말의 기억은 육체의 기억보다 훨씬 오래 전까지 소급된다. 세상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는 육체가 앞에 찾아오고, 그리고 말이 찾아올 것인데, 나에게 있어서는, 우선 말이 찾아오고 훨씬 뒤부터 몹시 마음이 내키지 않는 모습으로, 그때 이미 관념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육체가 찾아왔지만, 그 육체는 말할 것도 없이 이미 언어에 좀먹혀 있었다.
일단 맨 나무 기둥이 있고, 그리고 흰개미가 와서 이것을 좀먹는다. 그런데 내 경우에는 일단 흰개미가 있고, 머지않아 절반이 좀먹힌 맨 나무 기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내가 자신의 직업으로 하는 말을, 흰개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에 의한 예술의 본질은 에칭(etching)에 의한 질산과 같은 모양으로, 부식작용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라, 우리는 말이 현실을 좀먹는 그 부식작용을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여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고 에칭에 의한 동(銅)과 부식이 모두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동등한 요소임에 비해, 언어는 부식이 동에 대응하는 것처럼 현실에 대응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말은 현실을 추상화해서 우리들의 오성에 연결되는 매체이므로, 그것에 의한 현실의 부식작용은, 필연적으로 언어 자체도 부식해가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오히려 그것은, 과잉된 위액이 위 자체를 소화해 부식해가는 작용에 비유하는 쪽이 적절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이 한 사람의 인간의 유년기에 이미 일어나 있었다고 말해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확실히 나 자신에게 일어난 극(劇)이고, 이것이 내 두 상반하는 경향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는, 언어의 부식작용을 충실히 밀고나가 그것을 자신의 직업으로 하려는 결심이고, 하나는, 어떻게든 언어가 전혀 관여하지 않는 영역에서 현실에 마주하려는 욕구가 있었다.
소위 건강한 과정에 있어서는, 설령 천생 작가라고 해도 이 두가지의 경향은 상반하는 일 없이 서로 협조해서, 언어의 연마가 현실의 신통한 재발견을 낳는다는, 반가운 결과에 도달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재발견」이라, 그가 인생의 당초에 육체의 현실을, 아직 언어에 더럽혀지지 않고 소유하고 있던 것이 조건이 되어 있고, 나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문교사는 나의 공상적인 작문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곳에는 어디에도 현실과 마주보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무엇인가 어린 나에게도 무의식 중에 언어의 미묘하고 결벽한 법칙이 예감되었고, 말을 오로지 포지티브한 부식작용으로만 사용해, 네거티브한 부식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는, ······더 단순히 말하면 말의 순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말에 의해 현실과 마주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는 것으로 제한되는, ······즉, 포지티브한 부식작용의 촉각만을 곤두세우고 그 부식할 만한 대상과 만나지 않도록 피해서 걷는 것으로 제한된다. ······그런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지 생각된다.
한편, 이러한 경향의 당연한 반작용으로 나는 말이 전혀 관여하지 않는 영역에만 현실 및 육체의 존재를 공연히 인정하고, 이리하여 현실과 육체는 나에게 있어 시노님(synonym)이 되어, 일종의 페티쉬적인 흥미의 대상이 되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말에 대한 관심을, 이 관심으로 부연하고 있던 것도 분명했고, 이러한 종류의 페티시즘은 내 말에 대한 페티시즘과 정확히 조응하고 있었다.
제1단계에 있어서, 내가 자신을 말의 곁에 두고, 현실•육체•행위를 타자의 곁에 두고 있던 것은 명백할 것이다. 말에 대한 나의 편견이 이러한 고의로 만들어진 이율배반에 의해 조장된 것도 확실하지만, 동시에 현실•육체•행위에 대한 뿌리깊은 오해가, 이렇게 형성된 것도 확실한 것이었다.
이율배반은 내가 애초에 육체를 소유하지 않고, 현실을 소유하지 않고, 행위를 소유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세워져 있었다. 과연 인생의 당초에 육체가 나를 방문한 것은 늦었지만, 이미 말을 준비하고 이것을 맞이한 나는 그 제일의 경향에 의해 처음부터 그것을 「나의 육체」라고 인지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생각된다. 혹 내가 그것을 육체라고 인정하면 나의 말은 순결을 잃고 나는 현실에 범해진 자가 되어 현실은 이미 불가피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완고하게 그것을 인지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나의 육체의 관념에, 처음부터 어떤 아름다운 오해가 잠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자의 육체가 결코 「존재」로서 나타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어떻게든 「존재」로서 나타나야만 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존재에 대한 가공할 역설,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는 존재형태로서, 명백한 모습을 나타냈을 때, 나는 괴물이라도 만난 것처럼 당황해 그것을 나 한 사람의 예외와 같이 추측했다. 다른 남자도, 남자란 남자가 모두 그럴 것이라고는 나의 상상도 미치지 못한 것이었다.
분명히 오해로부터 발생한 것이지만, 이러한 당황과 공포가, 달리 「마땅한 육체」 「마땅한 현실」을 가구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는 존재형태를 가진 육체를, 남자의 육체의 보편적인 존재양식이라고는 꿈에도 알지 못했던 나는, 이리하여 「마땅한 육체」를 가구할 즈음하여, 모든 그 반대의 성격을 부여하고자 시도했다. 그래서 예외적인 자신의 육체존재는, 아마 말의 관념적 부식에 의해 발생했을 것이므로, 「마땅한 육체」 「마땅한 현실」은, 절대로 언어의 관여를 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육체의 특징은 조형미와 무언 외에는 없는 것이었다.
또한, 나는 한편, 언어의 부식작용이 동시에, 조형적 작용을 하는 것이라면, 그 조형의 규범은, 이러한 「마땅한 육체」의 조형미에 다르지 않고, 말의 예술의 이상은 이러한 조형미의 모작일 뿐이고, ······즉, 절대로 부식되지 않는 현실의 탐구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하나의 분명한 자기모순이어서, 말하자면 말로부터는 그 본질적인 작용을 제거하고, 현실로부터는 그 본질적인 특징을 말살하려는 기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얘기하면 말과 그 대상으로서의 현실을 결코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교묘하고, 교활함으로 가득 찬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나의 정신이, 저도 모르게, 서로 모순되는 것의 쌍방에 양다리를 걸쳐 자신에게 편하도록, 가공의 신과 같은 입장에서 쌍방을 조작하려 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실과 육체에 대한 기갈(飢渴)을 더욱더 키웠다.
······훨씬 나중에 나는 다름아닌 태양과 철 때문에, 하나의 외국어를 배우듯이 육체의 말을 배웠다. 그것은 나의 second language이고, 형성된 교양이었지만 나는 지금이야말로 그 교양형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아마 비할 데 없는 교양사가 될 것이고, 동시에 또한, 더욱더 난해한 것이 될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미코시(*제례 때 신위를 모시고 메는 가마) 가마꾼들이 만취한 와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방자한 표정으로, 얼굴을 젖히고, 심한 것은 가마꾼에게 완전히 목덜미를 맡기고 미코시를 들고 행진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눈에 비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수수께끼에 깊이 마음이 어지럽혀진 적이 있다. 나는 그러한 격심한 육체적 고난 사이에 보는 도취의 환상이 어떤 것일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이 수수께끼는 오래도록 계속해서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훨씬 나중이 되어, 육체의 말을 배우고부터 나는 스스로 나아가 미코시를 짊어지고, 어릴 적부터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 결과 안 것은, 그들은 단지 하늘을 보고 있던 것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무슨 환상도 없이 단지 초가을의 절대의 푸른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하늘은, 내가 일생 중에 두 번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될 정도로 색다른 푸른 하늘이어서, 높이 올려진다고 생각하면, 심연의 모습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동요 없이, 맑음과 광기가 하나가 된 듯한 하늘이었다.
나는 즉시 이 체험을 작은 에세이에 적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있어 어떻게든 중요한 체험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자신의 시적 직관에 의해 바라본 푸른 하늘과, 평범한 거리의 젊은이의 눈에 비친 푸른 하늘과의, 동일성을 의심할 여지없는 지점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것이지만, 그것은 태양과 철의 은혜에 다름 아니었다. 왜 동일성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는가 하면, 일정한 육체적 조건을 한결같이 하고, 일정량의 육체적인 부담을 서로 나누고, 등량의 고통을 맛보고, 등량의 만취에 범해져 있는 이상에는, 그 감각의 개인차는 무수한 조건에 제약되어, 가능한 한 작아져서, ······그것도 마약의 환상과 같은 자기관찰적인 요소가 거의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내가 본 것은 결코 개인적인 환각이 아니라 어떤 명확한 집단적시각의 한조각이 아니면 안 된다. 그리고 나의 시적직관은 나중이 되어 말에 의해 상기되어 다시 구성될 경우에, 처음으로 특권이 되는 것이어서, 동요하는 푸른하늘에 접하고 있을 때의 나의 시각은 행위자의 파토스의 핵심에 닿아 있던 것이다.
나의 비극의 정의에 있어서는, 그 비극적 파토스는 아주 평균적인 감수성이 어떤 순간에 사람과 거리를 두는 특권적인 숭고함을 지니는 때에 생기는 것이며, 결코 특이한 감수성이 그 특권을 과시하는 때에는 생기지 않는다. 따라서 말에 종사하는 자는 비극을 제작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도 그 특권적인 숭고함은 엄밀히 일종의 육체적 용기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비극적인 것의, 비장, 도취, 명석 등의 제요소는, 일정한 육체적인 힘을 갖춘 평균적 감성이, 바로 자신을 위해 준비된 그러한 특권적인 순간에 제회(際會)하는 것에서 생겨난다. 비극에는, 반(反)비극적인 활력이나 무지, 특히, 어떤 「어울리지 않음」이 필요한 것이었다. 사람이 어떤 때 신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평소엔 결코 신 혹은 신에 가까운 것이어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만이 볼 수 있는 그 이상한 신성한 푸른 하늘을 나도 또 볼 수 있었을 때에, 나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수성의 보편성을 믿을 수 있어서, 나의 기갈은 치유되어, 말의 기능에 관한 나의 병적인 맹신은 제거되었다. 나는 그때 비극에 참가하여, 전적인 존재에 참가하고 있던 것이다.
한 번 이런 것을 보면, 나는 처음으로 아직 몰랐던 많은 것을 이해했다. 말이 신비화하고 있던 것을 근육의 행사는 거뜬히 해명했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에로티즘의 의미를 아는 것과 닮아있다. 나에게는 서서히 존재와 행위의 감각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걸어온 길은 남보다 다소 더뎌서 같은 길을 걸어온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나의 기도(企図)를 가졌다. 만일 한 개의 관념이 나의 정신에 침투하여, 나의 정신을 그 관념으로 비대하게 하여 게다가 그것이 나의 정신을 점령하는 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정신의 세계에서는 별로 드문 일은 아니지만, 서서히 육체와 정신의 이원론에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나에게는, 왜 이러한 사건이 정신내부에서 일어나고, 정신의 외연에서 끝나 버리는가, 라는 당연한 의문이 솟아났다. 물론 정신적인 번민이 위궤양의 원인이 되는 심신상관적(psychosomatic)인 실례는 잘 알려져 있다. 내가 생각한 것은 그곳에서 멈추지 않는다. 만일 나의 어린 시절의 육체가 우선 말로 좀먹힌 관념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지금은 이것을 역용하여, 한 개의 관념이 미치는 곳을, 정신에서 육체에 미치게 하여, 육체 전체를 그 관념의 금속으로 된 갑옷으로 해 버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한 것이다.
본래 그 관념은 나의 비극의 정의에도 말한 것처럼, 육체의 관념에 귀착해야할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뇌리에서는, 정신보다 육체 쪽이 보다 고도로 관념으로 있을 수 있고, 보다 친밀히 관념에 친숙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관념(이데아)라는 것은 애초에 인간존재에 있어서 한 개의 이물이고, 불수의근이나 제어불능의 내장이나 순환계로 가득 찬 육체는, 정신에 있어서의 이물이고, 사람은 이물로서의 육체를, 이물로서의 관념의 비유로서 말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관념의 교묘한 습래는 마치 처음부터 숙명적으로 부여된 것으로까지 느껴져서, 그것은 점점 각인에 부여된 육체와의 상사(相似)를 강하게 해, 그 제어불능의 자동적인 기능조차 육체에 매우 닮아갈 것이다. 크리스트교의 성육신 사상은 여기에 기초하여, 어느 사람들은 손바닥과 발에 성흔(스티그마)을 드러내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에는 일정한 제약이 있어, 비록 어떤 과격한 관념이 우리의 머리에 한 쌍의 위압적인 뿔을 기르는 것을 바라도 뿔이 생겨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이 제약은 최종적으로는 조화와 균형으로 귀결해, 가장 평균적인 미와, 그 동요하는 푸른 하늘을 보는 것에 만족하는 육체적 자격을 부여하는 것에서 끝날 것이다. 그것이 또, 이상한 과격한 관념에 대한 복수와 수정의 기능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늘 나를 그 「동일성을 의심할 여지없는 지점」으로 데리고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나의 육체는 한 개의 관념의 소산임과 동시에, 관념 자체를 숨기는 최상의 방패막이가 될 것이다. 육체가 무개성의 완벽한 조화에 달한다면 개성은 영구히 가두는 것이 가능함이 틀림없다. 나는 본래 정신의 나태를 나타내는 똥배나, 정신의 과도발달을 나타내는 갈비뼈가 나타난 얇은 가슴과 같은 육체적개성을 몹시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의 육체적 개성을 스스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정신의 치부를 육체로 속속들이 드러내는 후안무치의 행동처럼 생각되었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이야말로,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유일의 나르시시즘이었다.
그런데, 그 기갈에 의해 생긴 육체와 정신의 괴리의 주제는 대단히 오랫동안 나의 작품 속에서 영향이 남아 있었다. 내가 그 주제에서부터 서서히 멀어진 것은「육체에도, 고유의 논리도, 어쩌면 고유의 사고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때부터이고, 「조형미와 무언만이 육체의 특질이 아니라, 육체에도 그 특유의 요설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렇게, 두 개의 사고의 추이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내가 오히려 상식에서 출발하여 비논리적인 혼미를 향해 나아갔다, 고 느낄 것에 틀림없다. 근대사회에 있어서 육체와 정신의 괴리는 오히려 보편적인 현상이고, 그에 있어 불평을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납득이 가는 주제인데, 「육체의 사고」라거나 「육체의 요설」 같은 감각적인 허튼소리는 누구도 쫓아올 수 없고, 내가 그러한 말으로 자신의 혼미를 얼버무리고 있다고 느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현실 및 육체에 대한 페티시즘과, 말에 대한 페티시즘을, 정확히 서로 조응하는 것으로서 동격에 두었을 때, 이미 나의 발견은 사전에 예견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조형미로 가득찬 무언의 육체를 조형미를 본뜬 아름다운 말과 대응하는 것에 의해, 동일의 관념(이데아)의 근원에서 나온 두 개의 것으로서 동격에 두었을 때, 이미 나는 나도 모르게 말의 주박에서 몸을 해방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언의 육체의 조형미와 말의 조형미와의 동일기원을 인정하고, 육체와 말을 동격화할 수 있는, 하나의 플라톤적인 관념을 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단계에는, 육체로의 말의 투영의 시도는, 이미 손에 닿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시도 자체는 심히 비 플라톤 풍의 시도였지만, 육체의 사고와 요설에 의해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제 단지 하나의 체험을 거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하기엔 먼저, 나와 태양과의 최초의 만남에서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이한 말투지만 내가 태양과 만난 경험이 두 번 있는 것이다. 어느 인물과 결정적인 만남을 하고 그로부터 일생 떨어질 수 없게 되는 훨씬 전에, 건너편도 이편에 눈치채지 못하고, 이편도 거의 무의식의 상태에서, 그 소중한 인물과 어딘가에서 흘끗 만난 적이 있는 것이다. 나와 태양과의 만남도 그랬다.
최초의 무의식의 만남은 1945년의 패전의 여름. 그 전중전후의 경계의 수많은 여름풀을 비추고 있던 가열한 태양. (그 경계는, 단지 여름풀의 안에 절반 파묻혀 있던, 그리고 여러가지의 방향으로 기운, 부서진 일련의 철조망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그 태양을 쐬며 걷고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잘 알지 못했다.
그것은 매우 긴밀하고 평등한 여름의 일광이고, 만물의 위에 조용히 만물의 위에 내리쏟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도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곳에 있는 짙은 녹색의 초목은, 이 백주의 용서없는 빛에 내리쬐어, 하나의 명석한 환영으로서 미풍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의 잎의 끝에 나의 손가락이 닿아도 없어지려 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이 같은 태양이, 지난 시기, 지난 세월, 전적인 부패와 파괴에 관계되어 온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출격하는 비행기의 날개나, 총검의 숲이나, 군모의 휘장이나, 군기의 자수를, 고무하는 것처럼 빛내온 것은 틀림없지만, 그보다 훨씬 많이, 육체부터 끝도없이 새는 피와, 상처에 모여드는 금파리의 몸을 빛내, 부패를 맡고, 열대의 바다나 산야에 있어서 많은 젊은 죽음을 감독하고, 최후에 그 지평선까지 뻗어가는 녹슨 적색의 광대한 폐허를 지배해온 것이었다.
태양은 죽음의 이미지와 떨어지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로부터 육체상의 은혜를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물론, 전시중의 태양은 광휘와 영예의 이미지도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이미 15세의 나는 다음과 같은 시구를 쓰고 있었다.
「그래도 빛은 밝아 온다
사람들은 해를 찬미한다
나는 어두운 갱 안
해를 피해 혼을 내던진다」
무려 나는 어두컴컴한 실내를 책을 겹겹이 쌓은 책상 주위를, 나의 「갱」을 사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무려 나는 내성(内省)을 즐기고, 사색을 가장하고, 자신의 신경총(神経叢)의 안의 연약한 벌레의 울음을 넋을 잃고 듣고 있었을 것이다.
태양을 적시하는 것이 유일한 반시대적 정신이었던 나의 소년시절에, 나는 노발리스 풍의 밤과, 예이츠 풍의 아이리쉬·트와일라잇을 편애해, 중세의 밤에 관한 작품을 썼지만, 전후를 경계로 해서, 서서히 나는 태양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시대에 아첨하는 시기가 오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 무렵 쓰여, 또는 세상에 나온 문학작품에는 밤의 사고가 지배적이고, 단지 그들의 밤은 나의 밤과 비교해, 훨씬 비탐미적일 뿐인 차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시대는 묽은 밤보다 농후한 밤에 더욱 많이 경의를 표하고, 소년시절의 그만큼 듬뿍 몸을 담그고 있던 나 자신의 꿀처럼 농후한 밤도 그들의 눈에서는 몹시 묽은 밤으로 보이는 듯했다. 나는 차츰차츰, 전시중의 자신이 믿은 밤에 자신(自信)을 잃고, 혹시나 나는 시종일관, 태양을 숭상한 측에 속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그리고 혹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내가 의연히 태양을 적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그리고 나의 작은 밤을 계속 주장하는 것은, 시대에의 아첨에 지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밤의 사고를 일삼는 인간은 예외없이 건조하고 윤기가 없는 피부를 가지고, 처진 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어떤 시대를 하나의 넉넉한 사상적인 밤에 에워싸려고 했고, 내가 본 온갖 태양을 부정하고 있었다. 내가 본 생도, 내가 본 죽음도 부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태양은 그 쌍방에 관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52년에, 내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간 배의 갑판 위에서, 태양과 다시 한 번 화해의 악수를 한 것은 다른 곳에도 적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자. 여하튼 그것은 나와 태양과의 두 번째의 만남이었다.
이래, 나는 태양과 손을 끊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태양은 나의 제일의 의(義)의 길의 이미지와 결부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태양은 나의 피부를 불사르고, 나에게 그들의 종족의 일원으로서 각인을 찍었다.
그러나, 사고는 본질적으로 밤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 말에 의한 창조는 필연적으로, 밤의 뜨거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의연히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하는 습관을 잃지 않았고, 내 주변에는, 밤의 사고의 자취를, 그 피부에 뚜렷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시 한 번 그러나, 사람들은 왜 깊은 곳을, 심연을 바라는 것일까? 사고는 왜 측량추처럼 수직하강만을 일삼는 것일까? 사고가 그 방향을 바꿔서, 표면으로,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어째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인간의 조형적인 존재를 보증하는 피부의 영역이, 단지 감성에 맡겨져서 방치된 동안에, 가장 업신여겨지고, 사고는 일단 깊은 곳을 향하면 불가시의 심연에 빠지려고 해서, 일단 높은 곳을 향하면, 모처럼인 육체의 형태를 내버려두고, 같은 불가시의 무한의 천공의 빛으로 날아가려고 하는, 그 운동법칙이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혹 사고가 위쪽이든 아래쪽이든, 심연을 향하는 것이 그 원칙이라면, 우리의 개체와 형태를 보증하고, 우리들의 내계와 외계를 나누는 곳의, 그 중요한 경계인 「표면」 그 자체에, 일종의 심연을 발견하고, 「표면 그 자체의 깊음」에 끌리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태양은 나에게 나의 사고를 그 장기(臟器)감각적인 밤의 깊숙한 곳 속에서, 밝은 피부로 뒤덮인 근육의 융기까지 끌어내는 듯이 꼬드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서 조금씩 표면으로 떠오른 나의 사고를, 견고히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나에게 새로운 거처를 준비하라고 명하고 있었다. 그 거처라는 것은, 잘 해에 그을리고, 광택이 나는 피부이고, 민감히 융기하는 힘찬 근육이었다. 실로 이러한 거처가 요구되어, 이러한 집물이 조건이 되기 때문에, 「형태의 사상」 「표면의 사상」은, 많은 지식인들에게 끝내 친근해지지 못한 것에 틀림없다.
병든 내장에 의해 만들어진 밤의 사상은, 사상이 먼저인가 내장의 몹시 어렴풋한 병적 징후가 먼저인가를, 거의 그 사람이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육체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천천히 그 사상을 창조해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다른 이의 눈에도 보이는 표면이 표면의 사상을 창조해 관리할 때는, 육체적 훈련이 사고의 훈련에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애초에 「표면」의 깊은 곳에 끌린 그때부터, 나의 육체훈련의 필요는 예견되어 있었다.
나는 그러한 사상을 보증하는 것이 근육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들어 쇠약한 체육이론가를 누가 회고할 것인가. 서재에서 밤의 사상을 조종하는 것은 허락되어도, 핼쑥한 서재인이 육체에 대해 말할 때의, 비난이건 찬탄이건, 그 입술만큼 빈한한 것이 있을 것인가. 이것들의 가난함에 대해 나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으므로, 어느 날 졸연히, 자신도 근육을 풍부하게 가지고자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나의 「생각」에서 생겨날 때에, 부디 눈을 집중해주길 바란다. 육체훈련에 의해 불수의근이라고 생각되고 있던 것이 수의근으로 변질되는 것처럼, 사고의 훈련도 그러한 변질을 가져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육체도 사고도 일종의 자연법칙으로까지 이름붙이고 싶은 불가피한 경향에 의해, 오토마티슴에 빠지기 쉬운 것이지만, 작은 수로를 뚫으면 쉽게 물길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미 자주 체험한 것이다.
우리들의 근육과 정신의 공통성의 일례가 여기에 있다. 어떤 시점에, 어떤 관념에 통괄된 육체나 정신은, 곧 그곳에 「겉보기의 질서」의 가지런한 소우주를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휴지인데, 마치 활발한 구심적인 활동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나 정신의 이러한 잠시 동안 소우주를 만드는 형성작용은, 환상의 작용에 닮아있지만, 우리들 생명의 순간의 행복감은 이러한 「겉보기의 질서」에 힘입는 바가 많다. 그것은 외부의 혼돈에 대하여 고슴도치가 둥글게 몸을 움츠리는 것 같은 생명의 방위기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생각되는 것은 하나의 「겉보기의 질서」를 타파해서, 별개의 「겉보기의 질서」를 만들어내고, 생명의 이러한 완고한 형성작용을 역용해서,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방향을 향해 하는 것은, 불가능한 논의가 아닌 것이다. 그 「생각」을 나는 곧 실행에 옮긴다. 이 경우 나의 「생각」은, 사고라기보다도, 나날의 태양이 나에게 주는, 새로운 그날그날의 하나의 기도(企圖)라고 말해도 좋았다.
이렇게 해서 내 앞에, 어둡고 무거운, 차가운, 마치 밤의 정수를 더욱더 응축한 것 같은 철괴가 놓였다.
개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