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갤소설> 김도령! -4


<1789 남해현 >


오늘따라 김도령은 더욱 신나보였다. 하지만 티아의 머리속은 터질 것 같았다. 김도령을 따라 읍내로 가는 길. 도령은 신나보였지만 티아의 머리속은

폭탄 그자체였다. 루나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언니 계속 여기서 살 생각입니까? 우리가 보살펴야 하는 포니들은요? 지금 턱수염 스타스월이 통치를 하느라

머리를 쥐어싸매고 있는 거 그거 하나는 참 재미있지만 이러다간 난리가 납니다. 솔직히 그 할배 혼자서 해와 달을 조종하는게 아주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 맞는 말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 수억 포니의 마생이 달려있었다. 솔직히 티아는 다 때려치우고 여기에 남고 싶었다. 그동안 만나본 여럿 포니보다도.

이 외계종 남자. 답답하고 고지식한 이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포니들과는 다르게 적당히 진중한 면이 있었고, 현실적이었으니깐. 그리고 인문의 말이

기억이 났다. "낭자. 나는 저 뛰노는 말들이 부럽소. 가끔은 아무런 생각도 안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그렇게 사는거지"

티아는 그 인생이 딱 포니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삶 인걸 알고 있었다.


이퀘스트리아엔 사람들을 말 한마디 했다고 귀향보내는 미친 왕도, 그저 잘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백성들을 두들겨 패는 양반도 신분도 그 무엇도 없었다.

인문의 삶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 수록 안타까웠다. 그의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이었지만, 선왕 영조대왕의 심기를 크게 건들여 사사되고 말았다.

사도세자를 지키려다가 그만. 인문은 항상 그 일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모양이었다.


"자네. 자네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 이곳도 곧 떠나게 되었으니 내 가족 얘기를 해줄까 하오."

읍내로 가는 길 인문은 자상한 표정으로 티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머리가 어지럽던 티아는 그 말에 대답했다.

"응.. 으응? 가족?.."


티아는 불안했다. 한번도 인문이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은 없었는데. 

"어.. 그래.."

"우리 할아버지는 영조 대왕께서 아끼시던 신하였소..."

"영조 대왕?" "그렇지. 아무렴."


사실 티아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재주를 가지고 있기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냥 인문의 말을 들었다. 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야. 오늘 큰 결심을 할 수 있을테니깐.

"그런데 어쩌다가 남해 현에서 살게된거야. 보통 영상 대감들은 한성에 살지 않아?"

"그렇지. 하지만 사도세자. 그분을 어릴때 부터 가르치시던 분이셨소. 성균관 대사성도 지내시던 분이니...."

대사성이든 대제학이든 영상이든 티아는 알 바가 아니였지만, 좋아하는 이의 말이기에 그저 들었다.


"사도세자를 지키려다가 그렇게 되신거야?" "그렇소. 할아버지 성격에 당연한 일이겠지. 우리 아버지 덕분에 내가 풀려난 것을 보면 알 수가 있겠지만, 우리 가문 사람들

다 성정이 괴팍한 사람들이오. 좀 참고 살면 대대손손 편하게 살았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쩌겠소? 이게 우리 가족의 업보인것을..."


인문은 말 끝을 흐렸다. 티아는 뭐라 해줄 말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말했다. "너 내 이야기도 들어볼래?"

인문은 티아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의 어린 시절 말이오?"

"그럼. 내가 여진 땅에서 왔다고 이야기를 했었지?"

"그렇다만..."


티아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더이상 더이상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오늘 결판을 내려고 하기도 했고 말이다.

티아는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아니다. 이 얘기는 저녁에 해 줄게. 이렇게 밝은 날에 좋은 일이 있을 때 할 말은 아니라서.."

"그래. 그러시오.. 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벌써 장터에 도착했나보오.."


티아는 인문을 따라 장으로 걸어들어갔다. 장터엔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물건을 팔고 있었다. 저 멀리 하동 화개장터에서 온

장돌뱅이들이 물건을 사라고 소리를 높혀 지르고 있었다. 인문은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물건을 하나 집고는 말했다.

"자네! 여기로 와보시오."

"응? 왜그래?"


인문은 씨익 웃더니 그녀에게 비녀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곤 수줍게 말했다.

"한양 도성에 가게 된다면. 자네에게 이걸 주고 싶소. 나를 2년동안 죄인임에도 기다려 준 것의 보답이라고나 할까.. 나는 이제 가족이 없기 때문에 내 삶은 내가 이을 수가 있소.

내 가문을 지켜주시오..."


"아니 무슨.."

티아는 얼굴이 새빨게 져셔 얼버무렸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모든게 자유로운 이퀘스트리아에도 이렇게 직설적인 놈은 없었는데.

인문은 당황한 티아를 보더니 말했다. "하하. 내가 항상 소꿉놀이 벗으로만 보였소? 나도 이제 약관이오. 사실 내 나이가 혼란중에 잘은 모르지만

이리 갓을 쓰고 있으니. 자녀도 과년은 되었을 터이고... 항상 나를 편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자네가 좋구려.."


티아는 속이 타들어갔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 너무 당황스럽다 이렇게 갑자기 직설적으로?

그것도 뭐 연애? 이런것도 없이 이렇게? 하지만 티아는 왠지 거절하기가 싫어서 미래를 무시해 버리고 비녀를 받고 말았다. 그리고 루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미친 에미나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겁니까 언니?"


벌써부터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았지만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인문은 티아가 그것을 받자 킥킥 웃으며 말했다.

"여보. 장서방. 그 비녀 얼마인가?"

"아! 인문! 아니 인문나리. 이제 한양 가신다면서요? 스무냥만 주십시오"

"자네! 내가 가는데 좀 깎아 주게나. 마지막일세." "그럼 열냥만 주십시오"


인문은 비녀를 가져와 티아에게 주며 말했다. "잘 가지고 계시오. 한양에 가면 계속 쓸 물건 아니오.

금비녀를 못해줘서 미안하구려. 하지만 곧 과거를 보게 된다면 뭐라도 해줄터이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이래도 책은 다 읽은 사내이올시다."

"인문아..."


티아는 당황스러웠지만 나름 기분은 좋았다.


한편.. 루나는 마음이 불편해 밖으로 나왔다. 인문의 반응을 보니 대놓고 돌아다녀도 이 멍청한 나라의 백성들은 자신을 못 알아볼것 같기 때문이었다.

벌써부터 루나는 언니의 잔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7일. 7일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는 이퀘스트리아로 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경쾌하게 포니의 몸을 한채 숲속을 달리고 달렸다. 잠시라도 이 짜증나는 순간을 잊고싶었다.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우나! 우나! 거기 서!"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 루나는 놀라서 멈추곤 두리번거리고 외쳤다.

"히히히히힝!"


셀레스티아가 가르쳐 준 방법이다. 인간들에게 들킨다면 이렇게 하면 대부분 피해갈 수 있다고. 하지만 무섭게도 목소리는 다시 말했다.

"우나! 아니 루나인가. 왜그래 우리끼리. 무섭게."

한번도 본명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루나는 매서운 표정으로 뿔을 정면으로 겨누곤 말했다.

"누구냐! 모습을 드러내라!"


그러자 눈 앞에 익숙한 아이가 나타났다. 루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니 너는.. 박씨 보살이잖아! 산신을 모시는..."

이 동네의 사당에 있는 무당이었다. 루나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이기도 하고 말이다. 솔직히 루나는 얘가 신기가 있다는 걸 반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신기가 있었으면 산신님이 벌써 이야기라도 해주었겠지. 이 녀석은 조선의 처자가 아닌 만주의 말이다. 이런 식으로.


하지만 박씨 보살은 오늘은 좀 달라보였다. 그녀는 씨익 웃더니 부채를 펴고 말했다.

"이런 보름동안 안보여서 걱정했는데, 너 그거 알아. 난 너의 고통을 잘 알아."

"무슨소리야?"


"루나 옹주? 너 고향에서 옹주로 살았지?"

"아니 그걸 어떻게..."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산신님에게 이야기만 좀 하면 될거야. 사실 나도 너를 속였어. 미안해."


박씨 보살은 뭐라고 중얼중얼거리더니 꼬리가 세개 달린 여우로 변하곤 말했다. "내가 널 고향에 보내 줄 게. 너는 이곳에 있어선 안될 녀석이야.

너 때문에 산신님이 고통받고 있다고. 너는 이와 기를 어지럽히고 조선 팔도를 전란에 빠트리게 할 존재야. 뭐 하지만 너와 나의 우정이 가짜라고 생각하진 마

나는 너를 진심으로 도와주는거니깐."


루나는 당황스러웠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자신 말고 더 있었다니. 루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너도 이리 잘 아는 걸 보니 다른 차원에서 온거야?"

"아니. 다른 차원은 아니고. 나는 여기서 수천년간 살았어. 너도 천년뒤면 내 마음을 알게 될 걸?"

"천년?.. 너도 알리콘이야?"


"아니 난 뿔 달린 말은 아니야. 그저 산신님을 모시는 하녀일 뿐이지. 너희 나라의 뭐 그거하고 비슷하긴 하겠다. 내 목표도 동물들을 보살피는 거야"

루나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말했다.

"그래서. 날 도와준다고 어떻게?"


"너가 3일 내로 너 고향에 가게 해 줄게. 하지만. 희생이 필요할 거야. 너희와 관련된 한 사람의 운명. 그게 필요해."

"운명?..."

"김도령. 그 녀석 너희 둘과 친했지?"


루나는 얼어붙었다. 그녀의 머리속에는 티아와 인문 둘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많은 포니들

자기를 공주님이라 부르는 포니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