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포니빌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어느 오솔길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공터에 어닝이 펼쳐진 마차 한대가 서있다.

마차 지붕과 어닝에 토독 토독 떨어지는 빗소리 사이로 도란도란 들려오는 말소리

"도대체 언제까지 내리는거야!"

짜증을 내며 창문을 벌컥 여는 라임스톤.

"하늘을 보니까 오늘은 계속 여기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라임스톤의 뒤에서 글을 쓰고있는 짙은 갈색의 유니콘이 말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라며?! 그냥 우비 입고 가는게 어때? 그렇게 많이 내리지도 않는데."

창문에 앞발을 걸치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라임스톤.

"요 앞은 오솔길이 아니라서 바퀴가 진흙에 빠질거야."

마법으로 깃펜을 휘갈기며 대답하는 벡스.

"네 마법으로 빼면 되잖아?"

라임스톤은 꼬리갈기를 이리저리 흔들며 툴툴거린다.

"내 마법은 책을 쓰거나 차를 끓일때만 쓰지 굳이 피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쓰진 않아."

"또 또 누가 작가 아니랄까봐..."

라임스톤의 볼멘소리에 벡스는 낄낄 웃으며 깃펜을 내려놓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라임스톤의 옆에 서서 창밖을 살피던 벡스는 마차 밖으로 나가서 어닝 밑에 의자 두개를 설치하기 시작한다.

"여기 앉아봐."

창문으로 삐죽 나와있는 라임스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는 벡스.

"싫어."

"답답하지않아? 여기 앉아있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거야."

"......."

창문에서 스윽 사라지는 라임스톤의 얼굴, 조금 뒤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비가 내리자마자 어닝을 쳐서인지 아직 보송보송한 땅의 감촉을 느끼며 의자에 털썩 앉는 라임스톤.

"그러고보니 파이양은 집에 편지 안 써?"

"너가 가끔씩 써주잖아. 어디를 갔는지 뭘 봤는지..."

"내가 책으로 써서 보내는 것보다 파이양이 직접 써서 보내는게 가족들이 더 좋아할걸?"

"됐어, 난 글솜씨도 별로니까."


멀리서 개굴개굴 들려오는 개구리들의 합창


"난 가끔 이런 시간도 필요하더라."

기지개를 피며 말하는 벡스.

"뭐가?"

"이렇게 멍하게 빗소리를 들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너 저번주에 밤에 갑자기 나가서 1시간동안 별보다 들어왔잖아? 그거랑 다른거야?"

"별 보는거랑 빗소리 듣는거랑은 다른거야, 그보다 그때 파이양 안 자고 기다리고 있었어?"

"뭐? 아니, 아니! 너가 새벽에 시끄럽게 돌아다니니깐 깬거지!"

"그리고 기다렸고?"

"니가 나 버리고 밤중에 도망치나 싶어서 기다렸다!"

"흐응~"

"아씨! 입 다물고 니가 좋아하는 빗소리나 계속 들어!"


쏴아아!

거세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몽롱한 표정으로 풀밭을 바라보는 라임스톤과 눈을 감고있는 벡스.

"그런데..."

천천히 입을 여는 라임스톤.

"뭔가 안정되네..."

"그렇지?"

"순간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그게 좋은거야.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머리와 마음을 비우기."

"아무 생각도 안 하기...."

"비가 안 올때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

"아니."

"모닥불 바라보기."

"모닥불?"

"응, 모닥불을 피우고 멍하니 바라보는거야."

"그거 뭔지 알 것 같아. 뭔가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잖아?"

"맞아, 흔들리는 불꽃을 가만히 지켜보면 뭔가 슈슈슉 샤샤샥하고 그런 느낌이지."

"작가가 표현이 뭐 그래? 슈슈슉 샤샤샥이라니."

"내가 파이양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볼 때 느낌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되려나?"

".....무슨 뜻이야?"

"별 뜻 없어."

"거짓말, 무슨 뜻인지 말해."

"진짜 별 뜻 없어."

"이게 계속 거짓말을! 넌 지금까지 뜻 없는 소리를 한 적이 없거든?!"

"진짜야;; 그냥 농담한거야."

라임스톤은 벌떡 일어나서 벡스에게 다가가 노려보기 시작한다.

"내 눈 똑바로 쳐다봐."

벡스는 라임스톤의 눈을 조용히 바라본다.

잠시 후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리는 라임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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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아니네..."

"거짓말 탐지였어?"

"동생들 혼낼 때 쓰던 방법이었거든...눈동자가 흔들리는지 보는거야..."

"난 어땠어?"

"미동도 없더라."

"그렇지? 파이양의 눈동자에 빠져들어서 못 움직이는거야"

"아씨! 빠져드는게 뭐냐고! 무슨 뜻이냐고!"

"슈슈슉! 샤샤샥!"

"이게 진짜!!!"

우당탕 소리와 함께 뒤로 넘어지는 벡스와 그 위에서 투닥거리는 라임스톤

"아하하핳!!! 알았어! 그만!! ㅇ 요 용서해줘!"

화난 듯 아닌 듯 입에 미소를 띄우고 벡스를 간지럽히는 라임스톤.

잠깐의 소란이 지나가고 풀밭에 드러누워있는 두 포니.

"야"

"응?"

"근데 왜 자꾸 '파이양'이라고 부르는거야?"

"라임스톤 파이니까?"

"라임스톤이라고 부르면 되잖아. 나도 너 '룰라문씨'라고부를까?"

"라임스톤은 너무 길잖아. 파이양이 부르기 쉽고 또 더 귀엽고"

"아 왜, 짧은게 좋으면 그냥 파이! 라고 부르지?"

"저번에 그렇게 불렀다가 옆에 있던 파이가게 사장님이 튀어나와서 나 끌고 들어갔던거 기억 안 나?"

"아하하하! 맞다! 그때 배고프지도 않았는데 파이 3개나 사버렸었지!"

"그리고 파이양은 나보고 벡스라고 부른적 별로 없잖아. 보통 야, 너, 작가 이렇게 부르고 어쩔 때는 유니콘, 저번에는 얌마 라고 부른적도 있고"

"그...랬나?"

"그랬지."

"...벡스가 부르고 싶은대로 불러도 상관없어...파이양만 빼고..."

"라임파이."

"싫어."

"파이스톤."

"싫어."

"마블네 언니."

"슬슬 짜증나려고 하는데"

벡스는 쿡쿡 웃으며 라임스톤을 바라본다.

"뭐라고 불러줄까? 원하는거 있어?"

"그냥 이름이나...좀 더 친근하게도 괜찮고..."

"예를들어?"

"........"

"음?"

"아 몰라!"


빗방울 사이로 멀리있는 숲속에서 바람이 불자 향긋하면서도 비릿한 풀내음이 느껴진다.


"있지, 라임스톤."

"...어?"

"집 떠나서 힘들거나 그렇진 않아?"

"또 묻는다...힘든거 없다고 했잖아."

"난 처음에 되게 힘들었거든."

"너가 원해서 나온거 아니야?"

"내가 원해서 나오긴 했어도 몇 번이고 돌아갈까 고민도 많이 했었어."

"그럼 왜 돌아가지 않았어?"

"모두에게 큰소리치고 집을 떠났었거든. 다들 만류하는데 나는 할 수 있다고, 내가 원해서 하는거니까 후회는 안 한다고, 이렇게 까지 말해놓고 바로 다시 돌아가는건 좀 그렇잖아?"

"....."

"하던 일을 그만두고 바깥 세상으로 나가면 크게 성공하고 행복하게 살 줄 알았었어. 그러고보니 우리 집안은 참 신기하네...내 친척중에 떠돌이 마술사도 하나 있는데."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거야?"

라임스톤이 기묘한 표정으로 벡스를 바라보자 벡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당연히 지금은 무지 행복하지."

"너 꽤 유명한 작가잖아? 책도 나름 잘 팔리고 있고."

"에이~ 유명하기는... 내 이름을 아는 포니 본적있어?"

"어...없었나?"

"돌아갈까, 그만둘까 몇 번을 생각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적응을 하고 지금까지 오게된거야."

"....."

"배낭 하나에서 두개로, 두개에서 작은 마차 하나로, 작은 마차에서 더 큰 마차로, 이런식으로 점점 떠돌이 생활이 일상이 되었고 이제는..."

벡스는 말을 멈추고 라임스톤을 지긋이 바라본다.

"처음만난 채석장 아가씨한테 능청스럽게 견학을 신청할 정도로 익숙해졌지."

"그때 너가 견학 신청할 때 진짜 어이없었는데 히히"

벡스는 웃는 라임스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입을 연다.

"요즘 문득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고 있어."

"뭔데?"

"라임스톤을 괜히 데리고 나왔나...하는 생각."

"무슨 뜻이야?"

"가족들하고 잘 지내고 있던 너를 괜히 이런 떠돌이 생활로 끌어들였나 하는 생각."

"내가 선택해서 나온거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마."

"안 하려고해도 계속 떠오를 수 밖에 없지. 난 처음에 많이 힘들었으니까."

"너랑 나는 달라, 너가 힘들었다고 나도 힘들거라는 걱정은 하지마."

".......듣고보니 그러네."

"너는 처음에 혼자였으니까 힘들었겠지. 나도 나 혼자였다면 이렇게 집을 떠나지 않았을거야."

라임스톤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조용히 덧붙인다.

"같이 가자고 권유한 포니가 너가 아니었으면 떠나지 않았을거고..."

그 말을 들은 벡스의 시선이 느껴지자 라임스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발치를 바라본다.

"라임스톤은 언제 돌아갈거야?"

"뭐를? 집에?"

"평생 떠나있을건 아니잖아?"

"생각해본적 없어. 그냥 무작정 널 따라 나온거니깐."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언제 돌아갈지 미리 생각해놔."

"굳이?"

"미리 생각을 해놓으면 돌아갈 때 마음이 더 편해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질걸."

"아니, 안 할래."

"나중에 힘들어진다."

"됐어, 안 할거야."


라임스톤은 잠시 생각하더니 살짝 기분이 상한 얼굴로 벡스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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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간다느니 그런 말 하지마."

"너무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마. 당장 돌아가고 그런거 아니니깐."

"당장이 아니라도 그런 말 하지마."

"알았어, 미안해. 괜히 무거운 주제를 꺼내서."

"너랑 계속 다닐거니까 너가 안 돌아가면 나도 안 돌아가."

"하하! 이건 좀 부담스러운데?"

"부담 주는거니까 받아들여."

"내가 평생 안 돌아가면?"

"....평생 너랑 있는거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벡스는 어닝의 경계에 살짝 걸치게 서서 하늘을 보며 말한다.

"비...많이 오네..."

"....."

"춥지는 않지?"

".....대답은?"

"무슨 대답?"


라임스톤은 새빨간 얼굴로 벡스를 째려보며 말한다.

"대답!"

"어?"

"작가가 뭐 이렇게 말 뜻을 이해 못 해?! 너랑 평생 다닌다고!"

"어? 어 어 그래, 고마워."

"고마운게 아니라! 난 니가 좋다고!!!"


라임스톤은 자리에서 일어나 벡스 앞에 똑바로 서서 비를 맞으며 큰소리로 말한다.

"난 널 좋아한다고 이 멍청아!!! 늘 점잖빼는 모습하고 열심히 글을 쓰는 모습!! 내가 짜증내도 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는 미소!!! 가끔 눈치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습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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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젖어가는 라임스톤의 갈기와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빗물.

벡스는 황급히 라임스톤을 어닝 안 쪽으로 잡아당긴다.

"왜 비를 맞고 그래?"

"니가 하도 둔해서 그랬다!"

바들바들 떠는 라임스톤의 눈가에는 여전히 빗물이 흘러내린다.
"나도 라임스톤이 좋아."

그 말을 들은 라임스톤은 잠시 멈칫하더니 쭈뼛쭈뼛 벡스의 품에 머리를 밀어넣고 말없이 가만히 서있는다.

벡스는 라임스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안 추워?"

"응, 안 추워."

벡스는 자신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웅얼거리는 라임스톤을 꼭 안아준다.

조용히 입을 여는 라임스톤.

"진짜 내가 좋아?"

"내 눈동자 바라볼래?"

"....싫어...부끄러워..."


코를 훌쩍이는 라임스톤.


"내 갈기 젖었는데 안 차가워?"

"괜찮아, 안 차가워."

"따뜻해?"

"응, 따뜻해."

그렇게 말없이 한참을 서있다가 벡스의 품에서 나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시선을 돌리는 라임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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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이제 그거인거지? 서로 좋아하니깐."

벡스는 웃으며 대답한다.

"파이양이 허락해 주신다면 아주 특별한 포니가 되어드리겠습니다."

라임스톤은 파들파들 떨리는 입술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좋아! 허락할게! 앞으로 절대 날 슬프게, 외롭게 하지 말고 계속해서 멋지고 놀라운 여행을 시켜줘."

라임스톤은 천천히 벡스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인다.

"평생..."


라임스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대답하는 벡스.

"널 슬프게, 외롭게 하지 않을게."

라임스톤을 다시 꼭 끌어안고 덧붙이는 벡스.

"평생..."






푸른 하늘이 펼쳐진 다음날 아침.

곳곳에 남아있는 작은 웅덩이 속, 밝게 비추는 햇살이 수놓아져있는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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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출발하자! 여기 빨리 배낭 메고!"

"배낭은 마차에 넣어두지?"

"간식 먹고 싶을 때마다 매번 마차에서 꺼내게? 벡스! 벌써부터 날 슬프게 하는거야?!"

"가는 길에 간식 많이 먹으면 후회할걸? 트로팅엄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정말 많거든!"

덜그럭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마차.

밝게 미소짓는 라임스톤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그들이 가야할 방향을 안내해 주듯이 펼쳐져있는 무지개를 눈에 담는다.


마차를 끌며 지도를 읽는 벡스.

"어디보자...여기서 저쪽으로..."

벡스의 곁으로 살며시 다가와 발을 맞추며 살포시 머리를 기대는 라임스톤.

"벡스, 어제 못 물어본게 있는데..."

"뭔데?"

"벡스는 내가 어디가, 어떻게, 왜 좋아?"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라임스톤의 얼굴.

"그건말이지..."

벡스는 미소를 띄우고 라임스톤의 머리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한다.

"나중에 청혼할 때 말해줄게."

어느새 귀까지 새빨게진 라임스톤은 고개를 들어올리고 소리친다.

"아씨! 지금 말하라고!!! 궁금해!!!!"

"싫어~! 그냥 책에다가 써버릴까? 라임스톤이 왜 좋은지."

웃으며 대답하고 속도를 높이는 벡스.

"뭣?! 얌마! 너 그거 진짜 책에다 쓰면 가만 안 둘거야!"

앞서가는 마차를 황급히 따라잡아 벡스에게 살짝쿵 박치기를 하는 라임스톤.


여행길의 새로운 소중한 의미를 찾은 두 포니는 그렇게 다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