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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가

이퀘스트리아의 포니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그 이름

유니콘이면서 농사에 관심을 가진 특이한 포니들의 가문


처음에는 그들도 어스포니들처럼 작은 농장을 일궈나가던 보잘것 없는 포니들이었지만
마법이라는 강력한 힘 덕분에 어스포니들보다 뛰어난 품질과 생산량을 이뤄낼 수 있었고,
세대가 바뀌자 그들은 자신들에게 농사를 가르쳐주었던 어스포니들의 땅을 모두 사들였다.


흙에 스며드는 빗물처럼 조금씩 자신들의 사업장을 확장하던 애플가는
어느새 이퀘스트리아 식료품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었고,
셀레스티아 공주의 눈에 들어 귀족의 작위를 수여받았다.


그렇게 귀족의 반열에 오른 애플가는 더이상 발굽에 흙을 묻히지 않게 되었지만

애플가에서 처음으로 흙을 만지지 않은 세대인 장녀 재클린은 안락한 삶 속에서 이유모를 공허함에 시달렸다.


“하…”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어디론가 향하던 재클린은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심란한 기분에 한숨을 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가문의 상징인 사과나무가 우뚝 솟아있는 정원

그리고 애플가의 포니들 대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지만,
언제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큐티마크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어스포니들


그 모습을 보고있으면 재클린의 마음도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물론 가족들은 다른 쪽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언니!”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재클린은 깜짝 놀라 뒤쪽을 바라보았다.

“또 그 숫말을 보고있는거야?”
“애플블룸…”
아직 앳된 목소리에 재클린은 한숨을 쉬며 자매의 이름을 불렀다.


아직 간단한 염동력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귀여운 망아지
하지만 하녀들의 이야기를 자주 엿들어서인지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하는 포니였다.

특히… 연애 관련으로


“이번에 들어온 정원사의 아들이 잘생기긴 했지”
“그런거 아니야”
망아지가 눈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자 재클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물론, 재클린도 암말이라 잘생긴 숫말에게 관심이 없는것은 아니였지만,
정원에서 일하는 포니들 중 그녀의 마음을 얻은 포니는 아무도 없었다.


“히히! 할머니에겐 비밀로 해줄게!”
“…”
재클린이 부정하자 애플블룸은 알겠다는 듯 윙크를 해주며 그 작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떠나갔고,
재클린은 서투른 발걸음을 끝까지 바라보다 시계를 확인한 후 다급히 원래 목적지로 향했다.


“후…”
잠시 후 검소하게 장식된 문 앞에서
재클린은 숨이 막히는 느낌에 심호흡을 했다.

문을 여는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문 안에 있는 포니는 어려웠기에


마음을 다잡은 재클린이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늦었구나”

중후하고 위엄있는 목소리


재클린은 마른 침을 삼키며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의 애플가를 있게한 가주

‘레이디 스미스’

그녀는 부드러운 인상의 노마였지만 여전히 우아했고,
진실을 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은 그녀 주변의 포니들을 모두 긴장하게 만들었다.


“또 정원사들을 보고 있었느냐?”
“네…”
간단한 질문이었지만 재클린은 조금 주저하다 자신의 할머니에게 대답했다.


“너는 가주가 될 몸이야. 그런것에 흥미가 생길 나이인건 알지만.. 시간 약속은 지켜야 한단다”
“죄송합니다”
재클린은 노마의 잔잔한 목소리에 눌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가주

재클린의 운명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의 무게는 재클린의 마음을 무자비하게 짓눌렀다.


재클린의 부모님이 살아있었다면 어린 재클린이 벌써부터 가문의 후계자라는 무거운 짐을 지지 않아도 됐겠지만,
재클린의 부모는 이젠 살아있는 포니가 아니였고 장남인 매킨토시는 배움이 느렸기에 그 짐은 자연스럽게 장녀인 재클린의 몫이 되어버렸다.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있는 레이디 스미스는 자신의 손녀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다 재클린의 발굽에 무언가를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 네게 선물을 하나 주마”
“선.. 물이요..?”
예상치 못한 선물에 재클린은 자신의 발굽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생기있게 반짝이는 작은 씨앗들이 놓여있었다.


“내 아버지께서 처음으로 심으셨던 사과나무에서 처음으로 수확한 사과가 품고 있던 씨앗이란다”
“이런걸… 저에게 주셔도 괜찮나요?”
레이디 스미스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하자 재클린은 조금 당황한 듯 물어보았고,
노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구나”
레이디 스미스의 말에 재클린은 씨앗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생기가 넘치지만 무엇인가를 갈망하고 있는 씨앗
재클린은 그 씨앗들에게서 묘한 이끌림을 느꼈다.


“재클린, 이제 가봐도 좋다”
씨앗을 유심히 바라보는 재클린의 모습에 레이디 스미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재클린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전한 후 방 밖으로 나갔다.


가주의 방을 나온 재클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창문에 기댄 채 자신의 발굽에 있는 씨앗을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땅에 심어 꽃피우게 만들어준다면 수 많은 포니들에게 즐거움이 되었을 씨앗들

그러나 가문의 첫 씨앗이라는 이유로 영원히 심어지지 않을 씨앗들

그 가여운 씨앗들은 재클린의 발굽 안에서 자신들을 심어달라는 듯 반짝였다.


씨앗들을 바라보던 재클린은 정원을 바라보며 발굽을 휘둘러 씨앗들을 뿌리려다
정원의 중앙을 지키고 있는 사과나무와 눈이 마주치고 다시 발굽을 거둔 후 실망한듯 빛이 약해진 씨앗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들도 나 같은 신세구나…”
재클린은 씨앗들을 내려다보며 미안하다는 듯 속삭였다.


그것이 그들의 운명이였다.


원하지도 않는 명예를 떠안고 미소라는 가면을 쓴 귀족들과 매일 암투를 벌여야하는 애플가의 가주

그리고 가주들의 발굽에서 발굽으로 내려오며 말라죽어가는 가문의 보물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한 그들의 운명은 바뀌지 않을 것이였다.


하지만 그때
어디선가 기적이 일어났다.


- 콰앙! -


“뭐.. 뭐야!”
재클린은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깜짝놀라 창밖을 내다보았고 조화로운 색의 파도에 감탄했다.


“아름다워…”
무지개의 마법에 매혹된 것일까?

재클린은 자신도 모르게 저택 밖으로 순간이동을 사용했고,
무지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은 화단을 넘어

높은 울타리를 넘어

안락한 삶을 넘어

가문의 이름을 넘어

그녀의 마음이 가리키는 곳으로


그렇게 무작정 걸어가던 재클린은 무지개가 희미해질때쯤 정신을 차리고 낯선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어디지..? 돌아가야 할텐데…”
자신의 발굽에 쥐여진 씨앗들과 누구의 것인지 모를 모자를 매만지던 재클린은 사라져가는 무지개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한숨을 쉰 후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려 저택으로 돌아가려했지만 그녀의 발은 땅에 붙어버린 듯 떨어지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은걸까?

그 숨막히는 곳으로?

재클린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가문의 후계자인 그녀가 지금 당장 돌아가지 않는다면 할머니의 신임을 잃게 될것이고 어린 동생이 후계자의 짐을 짊어지게 되겠지만…

재클린은 무지개의 끝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무지개가 그녀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도.


무지개를 확인하고 돌아가리라 결심한 재클린은 다시 몸을 돌려 무지개가 사라져가는 방향으로 향했고,
문득 발굽에 있는 모자가 생각나 자신의 머리에 흙냄새나는 모자를 씌웠다.


“알아보는 포니가 있을수도 있으니까…”
마음속으로 모자의 주인에게 용서를 구하고 모자로 자신의 뿔을 가린 재클린은 무지개가 떠 있었던 방향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발굽 아래로 뭉개지는 흙과 향긋한 풀내음을 즐기던 재클린의 눈 앞에 숲이 나타났다.


“숲..! 숲이야..!”
재클린을 환영하듯 숲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재클린은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며 소리쳤다.


파도처럼 들려오는 나뭇잎들의 마찰소리

바람조차 정체된 애플가의 저택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그 아름다운 소리에 눈을 감고 녹색의 파도를 즐기던 재클린의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처음보는 포니잖아? 오늘은 처음보는 포니들을 많이 만나네!”
낯선 목소리에 눈을 뜬 재클린이 뒤쪽을 바라보자
그 곳에선 그녀와 비슷한 나이대의 망아지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솟아오르는 듯한 무지개 큐티마크를 가진 망아지

재클린은 이 망아지가 자신이 본 무지개와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 이름은 뭐야? 내 이름은 레인보우 대쉬! 이퀘스트리아 최고의 비행사가 될 포니지!”
“어…”
당돌한 망아지의 외침에 재클린은 당황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스포니가 비행사?

애플가문이라는 것을 들키면 어떻게 하지?

지금쯤이면 할머니께서 날 찾으실텐데?

할머니가 나를 포기하고 애플블룸에게 후계자 자리를 맡긴다면? 그 여린 아이가 상처받지는 않을까?

여러가지 고민들이 재클린의 머릿속을 헤집었고,
레인보우 대쉬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런 재클린에게 다가갔다.


“… 너 고민이  많나보구나?”
“앗..! 미.. 미안!”
자신을 대쉬라고 소개한 망아지가 얼굴을 바짝 붙이며 말하자 재클린은 깜짝 놀라며 사과했고,
대쉬는 그런 재클린을 보며 잠시 노려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핫! 괜찮아! 그럴수 있지! 나도 가끔 그래!”
“그.. 그래..?”
호탕한 대쉬의 반응에 재클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쉬를 바라보았고,
대쉬는 다 알고있다는 듯 미소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럴땐 네 친구들을 생각하면 돼! 가족도 좋고!”
“친구나 가족…”
이제부터 자신도 친구라는 듯 어깨동무를 하며 몸을 밀착시키는 대쉬의 말에 재클린은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의 가족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애플 가문이라는건 중요하지 않았다.
눈 앞의 당돌한 망아지는 그녀가 공주였어도 똑같이 대해주었을 것이다.


이제는 할머니가 자신을 찾는다고해서 두렵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다면 지금처럼 언제든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고 가문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그녀의 소중한 동생 애플블룸이 혼자서 후계자의 짐을 떠안게 될 일은 없었고 고통받을 일도 없었다.

맥킨토시는 배우는것이 느리긴 해도 결국엔 해내는 포니였고,
애플블룸은 아직 큐티마크를 얻지는 못했지만 행동력과 결단력을 가진 포니이니
그녀가 사라지더라도 둘이서 충분히 가문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맥킨토시와 애플블룸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줄 애플가의 친척들이 이퀘스트리아 전역에 퍼져있었다.

그리고… 만약 그들에게 자매의 발굽이 필요하다면 그녀 또한 조력자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곁에 있어줄 생각이었다.


생각을 정리하자 그제서야 재클린은 깨달았다.

재클린에게 필요한건 그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정직함과 사랑하는 포니들에 대한 믿음 뿐이였다는 것을


“그래서? 네 이름이 뭐야?”
재클린의 고민이 정리된 듯 보이자 대쉬는 낯선 포니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았고,
재클린은 새로운 자신을 위한 이름을 만들어냈다.


“애플… 잭..! 내 이름은 애플잭이야!”
“애플잭..? 특이한 이름이네! 괜찮아, 특이한 이름을 가진 포니들은 많으니까! 예를들면…”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 치곤 어색한 울림이였지만 대답을 들은 레인보우 대쉬는 의심하지 않고 자신의 감상을 떠들어댔다.


하지만 레인보우 대쉬가 열심히 떠들고 있는 와중에도 갓 지어낸 애플잭이라는 이름은 재클린의 마음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가정교사들에게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받은 그녀조차 이해할 수 없는 힘이 그녀와 그 이름을 연결시키는 것처럼


“오..? 애플잭! 너 큐티마크가..!”
대쉬의 말에 자신의 새로운 이름을 되뇌이던 재클린은 자신의 엉덩이를 바라보았다.

탐스러운 사과 세개

애플 가문
아니, 애플잭에게 어울리는 큐티마크였다.


엉덩이에 생긴 사과들을 바라보던 애플잭은 발굽안의 사과 씨앗들을 떠올렸고,
씨앗들이 제일 바라는 것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혹시 여기에 씨앗을 심을만한 곳이 있을까?”
“응..? 씨앗..? 음… 아! 내가 주인없는 공터를 알아!”
애플잭의 부탁에 대쉬는 조금 생각하다 애플잭의 발굽을 붙잡은 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고,
곧 잡초조차 없는 공터가 나타났다.


“주인이 없는 이유가 있네…”
애플잭이 발굽으로 벌레들도 떠나버린 땅을 파내며 말하자
대쉬는 그런 애플잭의 눈치를 보며 멋쩍은듯 웃어보였다.

“아.. 괜찮아! 이런 곳에서도 사과를 키울수 있어!”
애플잭은 그런 대쉬를 보고 괜찮다는 듯 미소지어주며 파낸 흙 속에 씨앗을 조심스럽게 심어주었다.


이제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이 작은 공터에서
자신만의 작은 농장을 만들어 갈 것이다.


어린시절 들었던 이야기 속에서
땀과 눈물을 비료삼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를 개간해 푸른 땅으로 만들어낸,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몸이 타들어가는 통증을 이겨내며 농사지었던 순박한 가장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