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신다.

누군가는 미소를 마시고 누군가는 한숨을 마신다.
누군가는 축배를 마시고 누군가는 후회를 마신다.

하지만 어느쪽을 마셔도 착실하게 마신이를 죽여나간다.

술이란 그런 것이다.


“부하들 머리 위에 폭격을 지시해놓고 팔자좋게 술이나 마시고 계셨습니까?”

“… 어떻게 됐지?”

내 품을 떠나버린 그 아이를 떠올리며 사색에 잠겨있는 동안 내가 이퀘스트리아에서 제일 싫어하는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흙바닥에 뒹군듯 흙투성이의 몸,
어둠을 뚫고 풍겨오는 피비린내,
항상 있었던 곳에 보이지 않는 권총집…

전투가 너무 격렬해서 자신의 장비조차 분실할 정도였나?
아니면 소중한 이를 한번 더 잃어버린 슬픔에 분풀이를 하러 온건가?

나는 모르는 척 잔을 비우며 조용히 내 권총집의 버튼을 풀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면 언제라도 눈 앞의 포니를 쏠 수 있게


“실패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안전장치를 풀던 발굽을 멈칫했다.
스카이를 죽인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왜..?


“그런가..?”

“… 궁금하지 않으신 겁니까?”

뻔뻔한 녀석 같으니…
자식을 죽이라고 지시해야만 했던 어머니가 자식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을리가 있나?


“그 아이는 제 어미를 넘어섰고, 나는 수 싸움에서 패배했다. 그것으로 충분해”

나는 내 심란한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든 부하를 노려봐준 후 관심없는 척 말하고 그의 발굽 움직임을 경계하며 자리에 앉았다.
이정도로 신호를 줬으니 멍청한 저녀석이라도 내가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다는걸 눈치채리라.


“그렇다면 멋대로 떠들겠습니다”

“흥… 마음대로 해”

눈 앞의 골칫거리는 내 신호를 눈치챘음에도 지껄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머리가 아파진 나는 콧방귀를 뀐 후 술을 한잔 따라마셨다.


“누군가 정보를 흘리고 있습니다”

“근거는?”

“스카이는 그곳에 없었고, 부대는 거의 비어있었으며, 그녀의 부하들 일부가 부비트랩과 함께 저희 소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 안듣는 부하녀석의 말대로 하룻밤 사이에 곳곳에 심어둔 눈을 피해 장비와 병력을 모두 이동시키고 매복까지 준비하는건 이쪽의 작전과 상황을 미리 알고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다시말해 이 부대 안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 내게 그걸 말하는 이유는?“

“그게 당신일거라 의심했었지만…”

“지만..?”

자신도 관련되어 있는 정보가 적에게 흘러들어간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증거를 모으지 않고 스카이의 어머니면서 동시에 자신의 상관인 나를 떠보기 위해 총을 숨긴채 만나러 오다니…
확실히 스카이가 좋아했을만큼 재미있는 녀석이다.


“마시고있는걸 보니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 나도 술 정도는 마셔”

“자기 부하를 함정에 빠뜨린 후 마시는 포니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넌 내 부하 아니야”

스카이가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말했던 것일까?
그 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궁금했지만 동시에 기분이 나빴다.

자기 어머니에게조차 말하지 않은걸 저런 한심한 녀석에게 말하다니!
… 그만큼 그 아이는 내가 미웠던 것일까? 그만큼 내가 그 아이를 상처 입혔던 것일까?

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스카이도, 나도… 그리고 눈 앞의 저 녀석도


“하… 스카이가 너를 데려오자마자 무슨 짓을 해서라도 널 군대에서 쫓아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스카이는 저와 함께 도망쳤을겁니다”

“그 아이를 버리고 전선으로 도망친주제에?”

나는 스카이를 버리고 도망친주제에 살아돌아온 눈 앞의 겁쟁이를 노려보았다.
셀레스티아의 광신자녀석, 처음부터 마음에 안들었다.


“그때의 전… 어리석었습니다”

“지금도 어리석어”

녀석이 전선이라는 말을 듣고 진흙 구덩이 속에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대답하면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 이 저주받은 전쟁에 참여한 모든 군마들이 한번쯤은 거치는 과정이었다.

평소같았으면 녀석을 비웃어 주었겠지만, 취기가 돌아서인지 나는 아직 얼음이 남아있는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마셔”

“… 감사합니다”

셀레스티아를 믿을 적엔 항상 맑은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며 술은 입에도 안대던 녀석이 내가 술잔을 건네자마자 받아서 입안에 털어넣었다.

나는 신앙조차 잃어버린 숫말의 한심한 얼굴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그렇게 잃어버릴 것이었으면 진작 버려버리고 내 딸을 바라봐주었어야지…


“… 아직도 옛 부하들의 망령에 시달리나보지?”

녀석의 발굽이 떨리는것을 본 나는 한숨을 쉬며 술을 한잔 더 따라준 후 말했다.


“…”

“흘려보내. 앞으로 더 많은 피가 네 영혼에 들러붙을텐데 그런거 하나하나 따지면 군마로 남을 수 없어. 애초에 군복을 입을 때부터 그정도 각오는 한거 아니였나?”

내 말을 듣고 녀석은 얼음물에 희석되어가는 술을 바라보며 고민하다 단숨에 들이킨 후 미소를 지었다.


“… 생각보다 상냥하시군요”

“덜떨어진 후배에게 주는 충고일 뿐이야. 게다가 얼마없는 부하녀석이 내일 아침 시체로 발견되면 귀찮으니까”

녀석의 미소를 보자 안그래도 나빴던 기분이 더 나빠진 나는 녀석을 노려보며 상관 살해 미수범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거칠게 안전장치를 조작한 후 권총집의 버튼을 닫았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상관을 살해하려고 들어올땐 권총없는 권총집을 숨기지 말고 아무 권총이나 구해서 꽂아놓은걸 보여주던가 해”

“충고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꺼져”

꼴보기 싫은 포니가 사라지자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술병을 입에 물었다.


취하고 싶었지만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맑아졌고,
차갑지만 뜨거운 모순적인 액체가 꿀럭꿀럭 넘어갈때마다 술과는 다른 씁슬함이 입안에 감돌았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것으로 죽어가는 저런 한심한 녀석마저 총을 들 수 있게 만든 군대가
스스로 과거에 사로잡혀 혼자 고통받는걸 속죄라고 생각하는 저런 숫말을 사랑했던 내 아이가
그리고 저녀석과 스카이같은 상냥한 아이들마저 자신들의 영혼이 피범벅이 될때까지 싸워야 할만큼 광기에 물들어버린 이 세상이…
무엇을 마셔도 씻겨지지 않을 씁슬함을 입안에 감돌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