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그녀는 트리니티 주변 공원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레이사?"
"아...선생님"
그녀는 힘없이 대답했고 이내 고개를 떨궜다. 나는 그녀의 머리위로 우산을 씌워주며 물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거야? 이렇게 비맞으면 감기 걸려."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생님...그저 저 때문..."
"나쁜 버릇 또 나왔네. 자기탓만 하는건 하지 말라고 했지? 선생님 앞에선 솔직하게 얘기해줘"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다.
"저...그게 요즘 쿄야마 카즈사가 안보여서요."
순간, 얼마전의 일이 생각났다. 비나 총력전에서 그녀를 팽했고, 아이리를 시켜 그녀를 완전히 배제하는 그런것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다.
"동아리를 찾아가도 나머지 분들 모두 냉소적인 반응이시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을까요? 전 쿄야마 카즈사와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서 전화번호도 없고요..."
내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둘러댔다.
"그... 그러고보니 나도 요즘 못본지 꽤 된거같네. 요즘 시험기간이라 많이 바쁜가봐. 얼마전에 나한테 시험공부 알려달라고 했었거든."
물론 거짓말이다. 알려준건 단 1번뿐이다. 그러자 그녀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군요! 역시 제가 걱정할 부분이 아니었네요! 비가 내리는 바람에 괜히 쓸데없이 감성만 터져가지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녀는 전광석화처럼 벤치에서 튀어오르듯 일어섰다. 그리고 늘 하는 90도 인사를 하고 공원에서 멀어져갔다.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카즈사..."
내가 한 일을 상상했다. 그때의 나는 반쯤 미쳐있었다. 시간은 촉박했고 몸은 과로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너무 큰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이런 핑계도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곧이어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오른쪽 어깨가 빗물로 완전히 젖어있었다.
걸음을 옮겨 그녀가 자주가던 카페에 들렀다.
"어서오세요~"
알바생의 청량한 목소리가 나를 반겨주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마카롱을 골랐다.
여전히 내 마음이 어떤지 명확하게 알수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해야할 일은 명확했다.
'기다려, 카즈사쨩...'
안자고 뭐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