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나를 온전히 사랑해 줄 사람은 없었으니 짧았지만 내게 참 과분한 시절이었다고 감사하게 생각하면 된다. 꿈같던 시절은 걱정했던 대로 그저 꿈이었을 뿐이라 깨고 싶지 않아도 언젠가 깰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그렇게 매듭지어 과거를 외면하면 이 생생한 기억에도 언젠간 곰팡이가 슬어주겠지. 이제 꽤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아프지 않다곤 못하지만 더 이상 아파서 주저앉진 않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애초에 나라는 사람은 기대하던 만큼, 꿈꾸던 만큼은 사랑받은 적 없었다. 사랑도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던 내가 천진하고 만다. 믿고 싶은 대로 믿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그저 꿈에 취한 시간이었다고 웃어 볼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린 건지. 그걸 받아들이기 괴롭고 싫어서 참 오래도 아픔을 미뤄왔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곰팡이가 슬기만 기다린다. 더 이상 나에게 빛바랜 기억에 낀 먼지를 닦아볼 용기가 없기를 바란다. 혹여나 기억에 낀 희끗한 먼지가 닦인다 하더라도 그건 네 손에 닦인 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헛된 바램은 맴돌기만 하다 나를 찌를테니, 언젠가 돌아와서 나를 무너트릴 기대는 접는 게 났다. 타인이 주는 기대는 희망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가 주는 기대는 희망 고문일 뿐이니.

언젠가 이 사랑이 끝난다면 더 이상 누군가를 천진하게 사랑하다 상처받을 일은 없겠구나. 이게 만일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면 네가 말했던 대로 너는 내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