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monorail&no=625&page=1 이 글과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

식당차 내부 디자인이 뭔가 식당이라기보다는 독서실 공부방스러운 느낌이 든다. 실제로 서울-원주 열차는 늦은시간에는 하행선(19시 출발), 상행선은 이른시간(510분 원주 출발)이 다 보니까 통학하는 학생들이 공부방으로 많이 애용했다.

통일호로 격하되고 난 뒤엔 식당 영업을 중지. 저걸 떼놓고 다닐수가 없어서 억지로 붙이고 다녔다고 함.


2.


Q. 한창 식당 영업 뛰던 시절에는 철도청에서 직영했으려나, 아니면 똑같이 서울프라자호텔 외식사업부 같은 데서 영업했으려나. 판매 메뉴는 새마을 식당칸하고 똑같았겠지?


A. 현역땐 우등/무궁화였으니 새마을보단 무궁화에 걸맞게 서비스됐겠지. 인테리어도 딱 무궁화 느낌나구만.


3. 


Q. EEC가 도입되던 초창기라면 1980년대 초중반일텐데, 통념처럼 탄광경기가 좋아서 영업이 잘 되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석탄 수요가 줄어드는 80년대 후반 가서 석탄산업합리화조치 등으로 슬슬 폐광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었는데 그렇다면 그 징후가 80년대 초중반부터 있었을 거라고 생각함. 태백-영동선 연선 지역에서 당시 기준으로 EEC 같은 고급 교통수단에 대한 운임은 물론이거니와 특실칸이나 식당차 같은 기타 부대요금의 지불능력이 되었으려나?


A. 물론 지금과 비교하면 당시 노동자들의 상황은 열악한 것은 맞으나, 목숨걸고 일한다는 직업이고 사북 대규모 파업사태를 겪으면서 처우도 그나마 개선이 많이 되었다는걸 감안한다면, 무궁화 열차 운임이나 식당차를 이용할 만큼 돈을 받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봄. 탄광 근처에 유흥 및 환락시설도 많았고, 돼지고기 소비도 많았다는걸 감안한다면.


조선업계와 그 일대 지역 경기를 보더라도 훅가는데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음. 거시적인 지표상으로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쇠락징조가 보였을지 몰라도, 그게 진짜 체감으로 다가오는데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감안한다면, EEC 운행 초기에는 탄광 경기 호황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봄.


Q. 탄광산업이 호조기였다던 70년대조차 태백선의 임시승강장, 간이역들 중 실적 안 좋은 역들이 속속 생겨나서 정리심사대상으로 찍히던 판이긴 했었지만 뭐...... 하긴 그렇겠네. 주요역들은 아직 건재했을 것이고 그 주요역들 위주로 정차하는 EEC였다면 아직 버틸 만 했으려나.


A. 그건 탄광경기 영향보다는 도로교통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크게 향상되어서 나오는 현상이라고 보는데? 단군이래 최대호황이었다는 3저호황이라는 때에도 철도는 오히려 계속 쇠퇴해서 폐선, 편수 감축, 적자 심화 말이 계속 나왔고.




4. EEC특실은 통일호 특실과 비교해서 다를바 없었음. 56석 편성되었고, 좌석은 무궁화호 유선형열차(구특전이라 불리던 열차)나 원조새마을호 좌석에 비해서 더 낡은 좌석이었음. 말년에는 두 편성가지고 한 편성은 서울-제천, 나머지는 서울-원주에 충당. 특실좌석에 앉으려고 개표 직후 100미터 달리기 하는 사람들도 많았음.


5. 현재 남아있는 EEC 관련 자료는 좀 협소한 상태. 한국철도차량 100년사 같은 서적이나 기타 한국철도 관련 서적에 실려있을 수 있는 특실, 식당칸 사진들을 스캔한 것 같은 이미지야 조금만 수고를 들이면 찾을 수 있긴 한데, 개인 저작자들이 촬영,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진짜 거의 드문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