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케보면 전반부와 후반부는 홍상수가 지나온 그리고 앞으로 해나갈 영화관일수도 있고
홍상수 영화중 자기확인 기능이 가장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영화가 아닌가 싶네
무엇보다 장소안에서 홍상수가 가장좋아하는 아무것도아닌상태의 인물로서의 순간을 굉장히 잘 드러냈음...난 이부분이 참 좋더라. 우유먹는 첫대화씬.
근데 아이러니하게 아무것도 아닌상태의 인물들, 마치 홍상수가 좋아하는 세잔 속 인물들의 순간처럼.
말이나 정보, 사회적 의복없이 드러나고 만나는 순간들은
이상적임을 바라보고 순간 아름답지만, 궁궐내부의 닫혀있는 프레임때문에 불완전하고 차가운 느낌의 한계를 안겨다 주는거 같기도하다.
결국 서로 소개를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0에서 숫자가 채워지듯 점점 상투적인 대화와 동선 안에서 서로에 대한 교감을 탐색하는데
말이 아무리 필요없다할지언정 우릴 구성하고있는게 언어와 정보, 사회적 틀이기때문에 이게 현실이고 이 테두리 안에서 차선적으로 탐색하는게 사람이 아닌가 싶음.
그래서 희정이는 움츠러드러있고 아무것도안하고 우유만마시는 모습에서, 그 모습이 순간적으로 아름답긴하지만 대안이될순없기에 금새 평이한 관심, 대화, 질문, 호기심,
내러티브적인 탐색이 오갈수록 오히려 활력을 띄고 움츠러든 참새가 점점 생기를 발휘하는거처럼 약간의 연기를 하는 순간은 오히려 완전하진 못해도 생명력을 가져다 줌.
고로 서로 약간의 연기를 드러내는 순간들이 우리가 할수있는만큼 하면서 사는 순간들이 아닌가 싶음.
그래서 전반부의 이상적이고 순수와 추상의 세계를 극도로 추종하는 반내러티브적인 춘수는
(마치 그 자신이 세잔의 눈으로 세계를 투명하게 보고있다는, 봐야한다며 현실 앞에 추상이란 대안에 빠진상태.)
마치 자언 카세료 이전의 인물들처럼 스스로 단단하지 못한 상태로 보임.
(아마 이건 이전의 홍상수들. 결단을 유보한채 할수있는 만큼 하면서 산다는 현실적임보다, 상투나 내러티브앞에 반대피켓을 드러내는데 힘썼던 추상적인 인물들일수도있고.
암튼 회집 외부에서의 '아까 저 안에선 완전했는데' 라는 대사처럼 전반부의 춘수가 극도로 반내러티브적이고 추상적인 인물로보이지만,
오히려 그런 순수나 미적인 상황의 '완결성'을 스스로 판단내리고 틀에 맞추고 있는 등 오히려 역으로
내러티브적인 사고에 사로잡히거나 상투성을 반복하여 자가당착에 빠진 인물임을 보여줌. 고로, 춘수는 GV에서 사람들에게 '말'이란 구체적인 전염, 내러티브에대해
비이성적으로 화를내고 나갈수밖에 없는 캐릭터임. 자기자신이 생각하는 추상의 세계는 완전한것이고, 아름답고, 옳은데 현실이 완전하지 못하기때문에.
약간의 대안적 성격에 빠진 상태라 오히려 단단하지 못한 1부의 춘수는 그 자신 스스로가 내러티브적인 프레임에 갇혀 상투성을 반복할수밖에없음.)
그래서 이런 완전성의 추구, 추상성, 탐미적인 성격이 그 순간만큼은 진실일수있겠으나 어찌나 저찌나 해도 현실적인 질문앞에 진정성이 퇴색되는건 옳고그름을 재치고서라도
어쩔수없는 부분임. 홍상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감독이 아니라, 진심이여도 자가당착에 빠지는 상투적인 프레임, 혹은 그걸 벗어나려는 대안적움직임이 자가당착에 빠지는 등
현상 자체를 바라보면서 새로운면을 발견하려는 감독임.
암튼 그래서 전반부의 춘수는 결국 GV에서 역으로 말이 중요하지않다며 말로서 추상을 외치고 영희와는 안좋은관계로 끝나버리고 맘.
아무런 체온의 공유도 없고, 마음한켠의 사랑의 나눔을 보존하지도 못한채.
후반부의 춘수는 확실한 결단이 차있는 모습이다. 전반부와는 달리 솔직하고, 과감하면서 자기자신을 드러내지만 그 솔직함의 힘은
반내러티브적이고 극도의 추상적인 시점의 사물을 보려는 시각이아닌 오히려 적당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할수있는 만큼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어떠한 결단에서 나오는거 같다. 난 여지껏 홍상수 영화에서 이렇게 멋진 캐릭터는 본적이 없다. 카세료 보다 멋있었음
아마 내 생각엔 홍상수 스스로 많이 단단해진거같다. 희정의 추상화 그림앞에서도 전반부춘수는 추상적,용기,반내러티브적인면, 예술적인 언어로서 받아들였다면
같은 추상화앞에서 후반부 춘수는 극걸 상투적인 패턴, 자기연민, 노재능으로 판단내릴만큼 후반부춘수는 정확하고 물리적인 논리로 상투성을
벗겨내는 작업을 해온 홍상수로 보임. 자기자신이 이미 대안적인 추상을 그리고있는것이 아닌 현실을 사는 사람으로서 아마 그런 판단을 내릴수있는게 아닌가싶음.
고로 할수있는만큼만 하고산다, 약간의 연기 같은 현실의 삶, 맘속에 아주 작은 사랑을 품는것 등등 적당히 현실을 사는것, 적당히 추상적인 거울을 비춰보는것으로
새로운면을 확인하는 정도로 그치는게 더 단단한게 아닌가 싶고 아마 후반부춘수가 옳은 이유인거 같기도 하다.
어쨋든 전반부 후반부의 구조의 나눔은 다른 시점으로 같은이야기속에서 새로운면을 발견하는 거라기 보단, 같은 시점에서 다른이야기로 새로운면을 발견하는거같다.
궁궐에서의 만남까지(차를 마시기전)는 전반부의 결과를 안상태에서 약간의 다른 구도, 시점, 숏의 순차로 같은얘기,비슷한구조로 담아
아무것도 아닌상태, 추상적인 만남의 순간을 더 극적으로 제시함. 왜냐면 이 궁궐까지만남 일련의 과정엔 이들의 정보가 교차할 대사도없고, 오로지
이들의 운동의 반복만을 보여주면서 공간안에 순간적으로 놓여지는 인물을 포착하는데 힘쓰고있음. (감독이세요? 대사이전까지)
마치 그 순간의 시간이 고여있고, 인물들은 정물상태에서의 순간처럼 사회적프레임을 벗고 잠시나마 붕 떠있다.
그래서 이 이후부터 후반부에 비슷한 구도, 다른대사로 극을 이끌때
아무것도아닌상태,추상의상태(궁궐)->(이후 gv이전까지 전반부,후반부의 차이)->(gv날에서의 다른 2개의 결말)이
어케 이루어지는지 체감이 확확 선명하게 느껴짐.
고로 후반부의 춘수가 홍상수 영화에서 이례적으로 모호함이나 이중성이없고, 결단에 차있을수있는건
이제 완전히 구조로서만 결말의 영감을 제시하는게 아니라, 이제 구조가 달리보이게끔 캐릭터-인물로서도 차이를 이끌어내야하기에
모호한 구석이 없어진거 같다.
단순히 두개의 마인드를 달리하는 상황을 두었을때 결말이 달라지게끔 한게 아니라.
적당히 할수있는만큼 현실적으로 살때, 그러면서 옷을벗는 바보같은 짓을할때. 바보같지만 알몸으로도
아무것도아닌상태의 순간은 우리 일상에서 발견하고 존재하고있다고 순간적으로 포착하고있음...
그래서 궁궐속 프레임에 갇힌 마치 말이 적고, 정보가 없는 상태의 '아무것도 아닌' 추상적인 순간은 약간 탐미적이고 현실과좀떨어진 정물적인 한계가있다면.
후반부의 팬티까지벗고 쇼한뒤의 춘수가 영희랑 걸을때 엄마의 나레이션같은 통화 "미치광이, 빨개벗고 팬티까고"
대사로 인해 오히려 '말'로서 바보같지만 우스꽝스럽지만 '아무것도 아닌 상태'의 천진한 사람이 되어,
상투성에서 추상적인순간, 그런만남을 드러내어줌.
전반부의 극도로 혐오하던 '말'은 후반부에서 오히려 순간을 불어넣어주는 따뜻함이 되어버림.
마찬가지로 그 순간 이들의 프레임은 궁궐과달리 뻥 뚫린 길거리이며, 우연성이 아닌, 작위성 (영희야안녕 하는 자전거)의 긍정까지 노골적으로 표현함.
도둑이 들었는데, 발자국만 남기고 갔다는 말을 연상케하는
마지막장면에서의 영희는 춘수와 아무일도 안일어났지만
그 사람, 영화를 본 뒤 발자국만 남기고 돌아서며 영희도 춘수도 사라짐.
거의 미스테리한 감정임...
진짜 눈물나게 사랑하고싶어지는 용기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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