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l 감독님에게 집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기덕 l 내가 사는 집이 내 집이라는 보장은 없고, 또한 누군가가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몰래 와서 머무른다면 그것은 그의 집이고 그의 공간입니다. 이 영화에서 집의 의미는 그렇게 확장되어갑니다. 집이란 것이 물리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영역에 속하게 되면 의미는 커지게 됩니다. 저에게는 정신이 고요하게 안착한 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습니다.



정성일 l <빈 집>은 언제 촬영을 시작해서 언제 마쳤습니까?



김기덕 l 촬영일수는 16일. 횟수는 13회였습니다. 5일에 한번 정도는 쉬었고. 7월2일 시작해서 18일에 크랭크업했습니다.



정성일 l 영어 제목이〈3 Iron 〉인데. 이것은 골프에서의 3번 아이언 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두 제목이 뉘앙스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 영화가 한국과 외국에서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다르기를 기대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빈 집>이라는 제목이 추상적이고 개념적이고 영화에 서정성을 담는 반면〈3 Iron 〉은 폭력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혹시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결과적으로 한편의 영화로 모이게 된 것은 아닙니까.



김기덕 l 3번 아이언이 가지는 강력한 폭력성의 의미는 골프가 부르주아 운동으로 여겨지지 않는 외국에서 그 뉘앙스가 더 잘 살 것이라 생각했고, <빈 집>은 한국에서 더욱 편리하게 쓰일 수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일 l 그렇다면 감독님 자신은〈3 Iron 〉이 더 적절한 제목이라고 생각하는군요.



김기덕 l 그렇죠.



대사가 점점 사라지는 이유?





정성일 l 그것이 바로 이 영화를 따라잡을 코드군요. 사실 <나쁜 남자>에서 한기의 목소리를 지워버린 다음부터 갑자기 당신 작품들에서 대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감독 자신의 맥락으로서의 무성영화 미학쪽으로 이끌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스님은 혼자 남아 있으니까 침묵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사마리아>는 죽은 어머니를 회상하는 아버지와 딸의 여행길이니 둘이 나눌 대사가 없을 수밖에 없는데. <빈 집>의 침묵은 다르게 느껴집니다. 감독님 영화에서 대사가 사라진다는 게 어떤 의미입니까. 혹은 점점 침묵에 이끌리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요.



김기덕 l <빈 집>에서 침묵의 대상은 두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말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실 처음부터 대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나리오 쓸 때는 언제나 대사가 존재합니다만 가지치듯이 서서히 쳐냅니다. 일단 시나리오상 대사를 다 쓴 다음에 대사를 없애고 액션을 보강해가는 과정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나 스스로는 이미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많은 대사를 주고받은 거지요.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언어를 만들어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관객과 함께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것처럼. 국제영화제에 영화를 보러 자주 다닙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사를 이해 못해도 뉘앙스만으로 재미있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뉘앙스나 액션이 대사 못지않은 정보를 주기 때문이지요. 그런 것으로부터 말이 없이도 영화가 된다는 것을 천천히 배운 것 같아요. <빈 집>이 베니스에서 상영했을 때 저울 눈금이 제로가 되는 장면이 나오자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그건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능한 것이구나. 말도 안 되는 구성과 형식이 영화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구나’ 하고 말이죠.



정성일 l 대사가 없어지면서 연출에서 가장 변한 게 어떤 측면인가요.



김기덕 l 뉘앙스와 액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단순히 전화벨 소리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도 그냥 무심하게 사운드만 울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말이 없기 때문에 다른 표현에 관객이 집중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단 1초라도 지루한 컷이 있으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이 영화를 찍었습니다. 관객은 소리와 화면과 미술에 놀라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대사가 없을 때는 그 세 가지 요소에 집중하지 않으면 지루한 영화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태석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빨래를 하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는 행동은 ‘태석이 도둑이 아니다’라는 것을 대사없이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낸 행위입니다.


태석은 선화가 만들어낸 판타지?



정성일 l 혹시 태석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던 것은 아닙니까. 그러니까 태석은 선화가 만들어낸 일종의 판타지인 것입니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두 사람의 여행이지만, 사실 그것은 혼자만의 여행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사는 원래부터 성립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감독님은 프로덕션 노트에서 ‘우리는 모두 빈집이다. 굳게 잠긴 내 자물쇠를 누군가 열고 들어와 나를 해방시켜주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그러던 어느 날, 유령 같은 한 남자가 나타나 나의 자물쇠를 열고 나를 데려간다. 오늘, 난 무작정 그 남자를 믿고 따라간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나’는 태석이 아니라 선화입니다.



김기덕 l (웃음) 등골이 짜르르한 게 너무나 정확하게 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선화의 판타지입니다. 선화에게는 한국의 주부들이 생각하는 불만이 모두 들어 있지요. 박탈당한 경제권, 언제나 집안에 갇힌 식물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 그런 것들을 스스로의 의지로는 파괴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의 한국의 여성들입니다. 그들이 늘 꿈꾸는 것은 누군가 찾아와주는 것이 아닐까요. 선화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므로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겁니다. 이 시나리오를 보고 이승연은 “이것은 선화의 꿈인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정확하게 본 것이었고 그래서 그를 캐스팅한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것은 태석의 꿈일 수도 있습니다. 빈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 너무나도 허전하기 때문에 누군가 피폐하게 갇혀 있는 사람의 구원자가 되고 싶은 스스로의 욕망. 양쪽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성일 l 도대체 태석은 어떤 사람입니까. 영화를 보면 태석은 가족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혹은 가족 사이로 스며들고 싶어합니다. 가족 사진 앞에서 자기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카메라로 유사가족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우리가 태석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경찰서에서 들을 수 있는 한마디, “공부도 할 만큼 한 놈이…”가 전부예요. 공부도 할 만큼 한 태석이 빈집을 찾아 떠도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입니까.



김기덕 l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이른바 어느 정도 행세하는 사람들의 여백이라고 생각해요. 역설적으로 태석은 빈집에 들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의 빈집을 드러내는 겁니다. 거기에다 자신의 부재한 가족, 혈통적 가족이 아니라 사회적 가족을 불러들이는 것이 어쩌면 태석의 목적입니다. 거기에 구체적으로 선화라는 가족이 들어서면서 가족이라는 형태를 복원해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적어도 그가 돈이 없어서, 또는 자기의 피폐한 현실 때문에 부잣집을 드나드는 것으로 관객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성일 l 영화에서는 한번도 이름이 불리지는 않지만, 이승연의 영화 속 이름은 다시 선화입니다. 선화는 <나쁜 남자>의 여주인공 이름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도 여주인공 이름도 선화입니다.



김기덕 l 제가 정한 이름이 아닙니다. 대본을 쓸 때는 그저 ‘그녀’라고 했고 ‘남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연출부에서 선화로 부르더라구요. 이름이 있어야 연출부에서 일하기 쉬워지니까. 태석은 연출부 중 한명의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이름들을 거부하지 않았으니까요. 한자로 해석해도 좋은 이름이지요. 글자 그대로 선할 선과 화난 화. 상반된 두 가지가 충돌하는 이름이기도 하고.



정성일 l 그러니까 동명이인이군요. (웃음) 알다시피 이승연씨는 위안부 누드 사진집으로 사회에서 폭력적으로 매장당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 영화에서 누드 사진 모델이자 남편에게 매맞는 아내로 나옵니다. 이 이야기는 이승연이라는 배우의 또 다른 사건과 중첩적으로 읽힙니다. 이런 사실이 불편하지 않은가요. 아니면 이 영화에 그런 복합적인 의미를 주기 위해 그의 스타 이미지를 사용할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까.



김기덕 l 영화 속에는 이승연씨의 누드 사진을 서서히 복원해가는 과정이 있지요. 그것은 우리가 오해한 무언가를 다시 복원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선화 캐릭터가 배우로 설정되어 있었지만, 승연씨가 “내가 배우이므로 사람들이 이승연을 지나치게 연상할 것이다”라고 해서 일리가 있다 싶어 모델로 바꾼 것입니다. 한 배우를 무대에 다시 회복시키려는 의도 같은 것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빈 집>이 개봉하고 나면 어떤 반응들이 나올지 매우 궁금하고, 여전히 반응이 극도로 냉정하다면 한국사회가 아주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재인식하게 되겠지요.



차이밍량의 <애정만세>가 떠오른다?



정성일 l 이 질문에 오해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시 차이밍량의 <애정만세>를 보셨는지요. 영화의 도입부는 저에게 차이밍량의 <애정만세>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물론 선화의 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영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지만, 처음 빈집에 들어가 태석이 하는 대부분의 행위들은 이강생이 <애정만세>에서 했던 것들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 이야기는 감독님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김기덕 l 솔직히 <애정만세>에서는 마지막에 여자가 공원에 앉아서 우는 장면밖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들으니까 이강생의 에피소드들도 기억이 나는데. 제 영화들이 저의 전작들이나 다른 누군가의 영화들의 이미지와 중첩이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누구나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정성일 l 하지만 영화공부하는 사람들은 <빈 집>의 첫 5분을 보고서 <애정만세>를 떠올릴 겁니다. 지금부터 시작될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계속 그 질문에 부딪힐 수도 있을 테고. 그럴 땐 그냥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만.



김기덕 l 그런 질문들은 상관없습니다.



정성일 l 그렇지가 않은 것이 영화 이미지들의 역사 속에서 그런 것들을 인용해서 해석하는 것은 비평계에서 피할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김기덕 l 차이밍량이 잘 알려진 유럽에서도 <빈 집>의 이미지들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해석하지는 않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정성일 l 빈 아파트에서 할 수 있는 많은 행위들이 있을 겁니다만 태석이 빨래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세탁기를 두고서 구태여 손빨래를 선택했는데. 그것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정서적 효과가 있습니까?



김기덕 l 노동을 동원한 손빨래는 기계를 이용한 세탁과 달리 인간미를 전달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그런 인간미를 좀더 정감있게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해보면, 빈집에 들어가서 마땅하게 할 만한 것이 없어요. 영화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손빨래 외에 캐릭터에게 마땅히 시킬 만한 일이 없습니다. 반복적으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웃음)



정성일 l 처음으로 들어간 아파트가 주는 첫 번째 인상은 스위트 홈입니다. 이 아파트는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라는 유명한 클리셰를 보여줍니다.



김기덕 l 그것은 제가 사는 아파트입니다.



정성일 l 아. 그렇습니까? 중요한 포인트네요. 그런 뒤에, 여행에서 돌아온 가족들을 통해 감독님은 스위트 홈의 이미지가 위장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감독님은 단 하나의 예외인 한옥집만을 남겨놓고, 스위트 홈이 위선적이거나 허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당신의 견해입니까.



김기덕 l 그렇습니다. 굳이 한옥집을 예외로 둔 것은 고유하다고 하는 우리 정서를 되찾고 싶다는 유치한 보물찾기이기도 합니다. 그 집은 유일하게 두 주인공이 발 섹스를 시작하는 곳이고, 나중에 선화는 이 집에 들러 의자에 누워서 쉬었다 갑니다. 주인을 무시하고 내 집처럼 들어가지만, 주인 역시도 그녀를 침입자로 여기지 않지요. 이 장면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집이라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의 크기가 아니라 밀도이며, 그 밀도가 가장 완벽한 곳은 한옥입니다. 꽉 찬 듯하지만 공기가 살아 있고 숨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정성일 l 다시 첫 아파트로 돌아가서, 감독님은 이 가족에게 마치 벌을 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태석이 장난감 총을 고쳐놓고 그 집을 떠났는데, 남편과 싸우던 엄마를 향해 아이가 방아쇠를 당깁니다. 아마도 그녀는 눈을 잃었을 겁니다. <수취인불명>을 연상시키는 장면인데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요. 게다가 그 벌을 남편이 아닌 아내에게 내릴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까.



김기덕 l 첫 번째 집은 태석이라는 인물의 위험성까지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석이 꼭 우호적인 사람만은 아니라는 사실. 한 가족을 재성립하고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치명적인 위험성을 초래해놓고도 그냥 가버리는 것이지요.



정성일 l 태희는 두 번째 집에서 선화를 만납니다. 매맞는 아내는 우리 사회의 매우 뿌리깊고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그런데 선화를 중산층으로 설정하지 않고 부잣집에 갇혀 있는 것으로 만들어놓을 필요가 있었습니까? 부르주아 가정의 느낌이 커서 폭력적인 모습들이 현실적이 아닌 계급적인 상징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감독님은 이 영화가 매맞는 아내의, 가족으로부터의 탈출 욕망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란 것은 아닙니까.



김기덕 l 부잣집이든 아니든 어느 집이나 그런 모델들이 있습니다. 선화는 그 계급에 올라서기 위해 일련의 과정들을 겪은 다음에 그 집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런데도 구타를 수용하고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그 계급이라는 것마저 비참해지는 현상이지요.




3번 아이언과 폭력과의 관계?





△ 한강 중지도에서 남편인 민규(권혁호)에게 3번 아이언을 휘두르는 것을 지도하는 김기덕 감독.



정성일 l 골프채로 공을 쳐서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을 떠올렸을 때 생각한 정서적 효과는 무엇입니까.



김기덕 l 골프를 5년 전에 처음 해보면서 흥미를 느꼈습니다. 부르주아 운동으로 보이지만 사실 섬세한 계산과 인내가 있어야 하는 운동입니다. 언젠가 골프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싫어하는 3번 아이언을 주제로요. 3번 아이언은 직선코스에 강하고 총알처럼 날아가기 때문에 전화번호부 책도 뚫습니다. 이것으로 공을 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테러라는 것을 떠올릴 때 생각하지 못하는 백색의 공과 반짝이는 은빛 골프채. 그것으로 폭력을 휘두르면 그 임팩트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력적인 폭력이라는 생각이지요.



정성일 l 태석과 선화가 함께 들르는 첫 번째 집은 사진작가의 집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 집에 선화의 누드 사진이 걸려 있다는 겁니다. 사진작가를 선화가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게 좀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진작가의 집에 선화가 가는 것은 불편한 일일 테고, 모르고 찾아갔더라도 사진을 보게 되면 그 집에서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집에서 처음으로 잠을 자지 않습니까.



김기덕 l 우연히 들어간 집에 그 작가가 살고 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희박한 일이지만, 무리하게 설정한 이유가 있어요. 선화는 그 누드 사진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내 영화 최장의 롱테이크일 겁니다. (웃음) 그날 밤에 선화는 과거를 부끄러워하며 그 사진을 잘라서 모자이크처럼 마구 뒤섞어버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태석이 여기에 한번 더 와서 사진을 아예 없애버립니다. 몸은 증발해버리고 마음만 남은 것이라는 뜻이지요. 이야기의 끝을 위한 계획적인 배치입니다. 모자이크도 그렇습니다. 사진을 잘라서 부위들을 뒤섞어놓으면, 누드라는 개념은 날아가버립니다.



정성일 l 이 집에서 선화는 태석이 그랬던 것처럼 자발적으로 손빨래를 합니다. 그것을 보고 있는 태석은 어떤 깨달음을 공유한 것처럼 웃습니다. 유일하게 태석이 웃는 장면이고 처음으로 표정을 보이는 장면입니다. 그 행위의 모방에서 선화가 태석을 따라하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김기덕 l 선화도 잘못이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스로 인생을 불행하게 조장한 것을 회복해나가는 과정. 그것은 물리적 노동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정성일 l 그러니까 빨래라는 것은 일종의 정화일 수도 있습니까.



김기덕 l 부자와 결혼함으로써 나태해진 사회 자본주의 시스템에 결탁한 자신의 일면을 반성하는 것입니다.



한옥이 주는 의미, 과거로의 회귀



정성일 l 태석과 선화가 들르는 세 번째 집, 혹은 영화에서 들르는 다섯 번째 빈집은 한옥가옥들이 늘어선 동네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 집에서 비로소 안락함을 경험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보이는데요, 하나는 표면적인 것으로서 즉각적으로 서구화되고 근대화된 삶으로부터 벗어나 전통적인 가치의 삶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거기서 가족의 가치를 생각해보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생각은, 이것이 일종의 시간여행은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현재를 돌아다니는 이들이 블랙홀에 빠져서 과거에 빠졌다가 돌아온다는 것. 저는 감독님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에 단지 공간적 이미지뿐만이 아니라 시간적 이미지에도 끌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덕 l 과거로의 회귀라는 말은 옳습니다. 현대적 전통가옥에는 과거가 많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선화와 우리의 과거이기도 한 지난 정서를 되찾아가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 집은 나중에 선화가 다시 찾아가는 유일한 집이고 최초로 선화가 자신의 목적을 획득한 집입니다.



정성일 l 감독님의 영화는 공간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것은 <악어>부터 그랬고 <섬>은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 이후 줄기차게 공간을 일종의 감옥처럼 다루어왔습니다. <파란 대문>의 여인숙과 <나쁜 남자>의 사창가는 일종의 감옥입니다. 혹은 <해안선>의 부대가 그렇습니다. <수취인불명>의 고향은 떠나지 못하는 공간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떠 있는 절도 그렇습니다. 저는 <사마리아>가 결국 그 공간을 떠나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빈 집>은 다시 공간으로 돌아오는 셈인데. 그러나 그것은 흥미롭습니다. 빈집들은 마치 여기저기 떠 있는 섬처럼 흩어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공간들이 자신의 상상력에 어떤 바탕을 이루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기덕 l 집이라는 공간은 울타리로 정의내릴 수 있으나, 저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깥의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 역시 지금의 공간에 이유와 사건들을 제공해주기 때문이지요. 공간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공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성일 l <빈 집>에서 태석이 묶여서 골프공에 맞는 장소는 한강다리 밑이었고, 이 장면은 데뷔작인 <악어>를 연상케 합니다. 어쩌면 <빈 집>은 <악어>의 다른 버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악어>의 용패가 자살하려던 여자를 구해서 함께 사는 것과 <빈 집>에서 태석이 맞고 사는 여자 선화를 구해서 함께 빈집을 돌아다니는 것은 결국 같은 행위니까요.



김기덕 l <나쁜 남자>를 찍었던 곳과 같은 장소입니다. 저에겐 평생 가도 잊지 못할 플래시백 같은 코드가 아닐까요. 다시 거기 가야만 편해지는 그런.



정성일 l 그 장소에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까.



김기덕 l 첫 영화의 기억이지요. 그리고 가장 외로운 공간이기도 하고. 숨을 공간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아무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공간. 페이드인되면서 감옥으로 화면이 바뀌면 태석은 실재하지 않는 공으로 소리를 내며 공튀기기를 합니다. 어쩌면 여기서부터는 환상일 뿐이고, 한강 다리 아래서 이미 죽었을 수도 있겠지요.



10년 동안 변한 것 혹은 지켜온 것?

정성일 l <악어>를 만든 지 올해 10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11편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영화적으로 자신의 어떤 점이 가장 변한 것 같습니까.



김기덕 l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옛날보다 자신감은 조금 더 생긴 것 같은데. 옛날에는 영화적 표현에서 콱 막혀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안도할 수 있는 결과에는 항상 도달합니다. 그래도 “정말 이것이 영화일까”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저는 불안하게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망치로 여기저기를 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 질문처럼, 저 자신은 많이 가벼워졌습니다. 예전에는 많은 목표가 있었지만 지금은 욕심이 다 사라졌습니다.



정성일 l 반대로 물어보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감독님이 영화적으로 버리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감독님이 지키려고 끝까지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김기덕 l 줄기차게 저예산과 언더영화 노선을 지킨다고 말들을 하는데 사실 저는 의식적으로 그래본 적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말 그런 노선을 지켜왔나’ 하고 돌아보면, 정말 그렇더라구요. 그렇게 끊임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행인 것은 제가 모자를 여전히 쓰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웃음) 보여주기 위한 디스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 나 스스로를 다르게 가장해서 고쳐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성일 l <빈 집>의 영화적인 진수는 태석이 감옥에 들어간 다음부터입니다. 여기서부터 진짜가 나옵니다. 감옥을 일종의 정신병원처럼 찍었는데. 그래서 같은 방에 있는 죄수들은 마치 정신병자 같습니다. 감옥의 이미지를 정신병원 이미지로 놓고 다시 영화를 시작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김기덕 l 영화는 세 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빈집을 골라다니는 챕터, 감옥 챕터, 감옥에서 나와서의 챕터. 그리고 뒤로 갈수록 각 챕터의 길이는 점점 줄어듭니다. 감옥신은 고민이 많았습니다. 유령연습이라는 것이 갑자기 나오면 관객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병원의 이미지를 던져준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그런 설정에 관객이 이미 동의하고 익숙해졌으니까 정신병원의 이미지를 없애나갔습니다.

선화의 집과 감옥을 교차편집한 이유?



정성일 l 감옥과 선화의 집을 교차편집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의 방식은 미장센 영화가 아니라 몽타주 형식인데. 선화의 집을 감옥으로 만들기도 하면서 동시에 계속되고 있는 가정폭력의 이미지를 중첩시키고 있습니다. 태석이 새 흉내를 낼 때 선화는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한옥가옥을 찾아가서 낮잠을 잡니다. 이것은 두 장소의 몽타주인 동시에 지적인 몽타주 방식이기도 한데. 더 중요한 것은 교차편집의 방식이 감옥 전체를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사가 없기는 하지만 사실주의적이었던 영화에서 별안간 판타지로 탈바꿈을 해버리는데, 탈바꿈의 의도는 무엇을 목표로 한 것입니까.



김기덕 l 위대한 해석입니다(웃음). 일차적으로 저는 그것이 꼭 교차편집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백과 이해의 공백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변해가는 것에 똑같이 보조를 맞추어주어야만 했습니다. 선화는 남편이 때리면 맞받아치기도 하고, 손빨래를 하기도 하면서 서서히 변해갑니다. 그리고 태석은 180도 뒤에 완벽하게 숨는 것을 연습해나갑니다. 둘은 감옥과 집에 따로 있는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서로 치밀하게 마지막까지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성일 l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는 손바닥의 눈입니다.



김기덕 l 그 눈은 그림자 연습을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 눈을 피하는 연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은, 숨고 싶어하는 경지에 서서히 도달하는 과정이라고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눈은 다양한 뉘앙스를 가지고 인식되어왔으니까요. 마음의 눈이라고도 하지 않습니까.



정성일 l 감옥에서 나온 태석은 그림자가 되어 그가 선화와 들렀던 집을 차례로 방문합니다. 그러나 선화를 한번에 찾아가지 못하고 우회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김기덕 l 그것은 선화의 집에 완전하게 존재하기 위한 일종의 훈련과정입니다.



정성일 l 마침내 태석은 선화의 집에 옵니다. 영화는 여기서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상황에 가깝습니다. 혹은 선화가 일종의 정신착란에 빠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는 태석의 그림자를 보고, 그 다음에는 거울에 비친 태석의 모습을 봅니다. 그런 다음 선화의 첫 번째 대사가 나옵니다. “사랑해요 여보.” 그런데 그 말은 사실 태석에게 한 말입니다. 안겨서 키스하는 것은 남편이 아니라 태석이고. 다음날 아침의 두 번째 대사 “식사하세요”도 역시 태석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들의 테마음악이라 할 노래가 흐르면, 태석은 여자 뒤에 그림자처럼 나타나고, 둘은 체중계에 올라가서 몸무게가 제로 상태가 된 것을 봅니다. 사실 저에게 이 장면은 순간적으로 선화의 자살처럼 보였습니다. 우리가 중력 제로가 될 때는 체중계 위에 목을 매거나 아니면 더이상 영혼이 없는 시체가 되어 그것이 무의미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거기서 끝이 납니다.



김기덕 l 그것은 정성일 선생님의 깊이 연구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것인데. (웃음) 고마운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림자를 본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흔적을 보여주지 않는 것입니다. 느낌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죠. 느낌만 존재한다는 것은 있으나 없으나 결국엔 ‘있는’ 것입니다. 그를 물리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선화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태석을 거울로 유도하는 것입니다. 선화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느낌만 감지하지 존재는 인지하지 못합니다. 느낌이라는 것은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를 가장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물리적으로 그런 존재를 설득한 것뿐이지 사실 추상적 공간입니다. 태석은 선화 의식 속의 판타지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어쨌든 너무 훌륭하게 해석을 해주셔서 고마운 반면…. (일동 웃음)



여전히 종교적 색채가?



정성일 l 저는 여전히 감독님의 영화가 종교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다음에도 그 견해를 철회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감독님 영화의 방점은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악어>에서 그것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파란 대문> 이후 감독님 영화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에는 구원으로 방점을 이동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에서도 그러하고 <빈 집>에서도 그러합니다. 구원이라는 테마에 매달리게 된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김기덕 l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죄의식과 구원이 아닌 관계들이 과연 일상에 존재하는가요? 그것은 종교적으로 해석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그런 것들이 끝임없이 충돌하는 것이 아닐까요. 구체적인 언어로 내 영화가 지나치게 해석되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죄가 있어서 내가 기도를 하는지 죄가 앞으로 있을까봐 기도하는지… 내게는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성일 l <빈 집>의 마지막 자막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넣어서 우리에게 어떤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길 바란 것입니까? 사실 이 말은 영화에 정확한 대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혹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김기덕 l 마지막 장면. 그것은 이 영화가 끝날 시간까지만의 결말입니다. 이어서 영화를 만든다면 거기서는 태석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지요. 남편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도 있을 테고.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남으로써 차단된 것이고, 앞으로도 보여질 이유가 없습니다. 그 자막은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다는 제 의지입니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판타지만으로도 또 현실만으로도 봐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요. 그 사이의 혼란기를 끊임없이 지고 사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다음 영화는 총이 주인공?

정성일 l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김기덕 l <나는 살인을 위해 태어났다>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권총이 다섯쌍의 남녀를 거치면서 자신을 소유한 인간들이 왜 복수를 해야 하고 감정을 폭발시켜야 하는지 고민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권총에서는 인간의 숨소리가 납니다. 권총은 러시아말로 이야기를 하고,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려 합니다. 이 권총은 처음에 맹세를 합니다. 나는 나쁜 사람만 죽이는 권총이 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권총이 감정을 가지기 시작하지요. 주인이 쏴도 자신의 의지로 총알이 안 나가게 한다든지. 이것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권총이란 화자가 공간들, 빈집들을 이동하는 영화입니다. <빈 집>도 초고를 완성했을 때는 이게 과연 영화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해야 할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었습니다. <사마리아>도 역시 제가 한번은 지나가야 할 역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는 살인을 위해 태어났다>도 만들어진다면 내 영화인생의 한 역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