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은 왜 그런 불행을 겪어야 하는가?”
-<곡성> 나홍진 감독 인터뷰 中-
영화 <곡성>의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비극적 사건의 원인을 묻는 것에서부터 이 영화의 구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다. 곡성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앙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려낸 비극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끔찍한 재앙을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외부인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영화의 시작, 종구는 새벽에 일어나 급하게 나갈 준비를 한다. 무슨 일이냐는 아내의 질문에 “사람이 죽었다네”하고 담담하게 대답할 뿐이다. 아내 또한 “누가?”라며 일상적인 대화의 일부인 것처럼 시큰둥하게 묻기만 한다. 이어지는 장모와 딸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종구는 철저하게 제 3자로서 사건 밖에 위치한다.
하지만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에게도 이상한 증상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흐름은 뒤바뀐다. 막연하던 의심들은 점점 공격성과 방향성을 띄고 종구는 본격적으로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의문의 여인 무명(천우희)은 종구가 일본인을 의심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다. 어딘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던 첫인상은 금새 사라지고, 일본인이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그녀의 말을 종구는 홀린 듯 믿게 된다. (하지만 사실은 그녀 또한 ‘할머니가 그러는데’ 라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전달해줄 뿐이다.) 묘한 눈빛의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다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녀는 온데간데 없고 종구의 눈 앞에는 발가벗은 일본인이 나타나 그를 덮친다. 그리고 종구는 꿈에서 깨어난다.
우리는 여기서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영화가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종구가 듣고 목격한 모든 것이 그저 아무 근거 없는 허상일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각자의 믿음을 가지고 종구의 뒤를 따라간다.
결국 곡성은 허무한 믿음과 의심에 관한 영화다.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텅 빈 냉장고를 보여주는 목격자의 말만큼이나 공허한 소문과 의심은 오히려 가벼운 꽃가루처럼 삽시간에 영화 전체로, 스크린을 넘어서 관객에게로 퍼져나간다.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고자 일본인을 찾아간 종구는, 그곳에서 또 한번 그의 의심을 증폭시키는, 그러나 막상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진실들을 목격한다. 신발이라는 작은 불씨는 그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지만, 그의 집요한 질문에 효진은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왜 자꾸 물어보냐’라고 소리칠 뿐이다.
모른다. 종구는 아무것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아무것도 모른다. 당연하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알 도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 그들은 선택해야 한다. 장모는 용한 무당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의사는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경찰은 버섯이 원인이라고 한다. 동료 경찰은 평소에는 차지도 않던 십자가 목걸이를 했다. 그리고 종구는 다시 일본인을 찾아간다.
분노한 종구는 그에게 소리 지르지만, 그의 말들은 대상에 직접 닿지 못한다.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통역을 사이에 두고 간신히 의미를 전달할 뿐이다. 그 의미가 잘 전달 되긴 한 것인지, 종구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그저 가만히 종구를 쳐다보기만 한다. 그의 고요하면서도 지독한 눈빛은 영화 중간 중간 등장하는 곡성의 그 무심한 풍경과도 닮아있다. 그리고 이런 종구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효진이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면서 사태는 더욱 비극적으로 변해갈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른 무당 일광(황정민)의 등장은 오히려 영화를 더욱 더 미궁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계속되는 미스터리들은 꼬리의 꼬리를 물며 이어질 뿐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주어지지가 않으면서 영화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이게 곡성이 가진 최대의 힘이다. 그러한 여백은 영화를 텅 비게 만들기는커녕, 여백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의심과 상상과 믿음은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여백을 채우면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이러한 의심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기대하며 영화 속 화자인 종구를 따라간다.
그렇기에 그런 종구가 마지막에 다다른 곳이 처음 그에게 의심을 심어준 무명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오히려 그가 한참을 쫓아온 외지인과 마지막에 마주하는 사람은 그가 아닌 부제 양이삼이다.
양이삼은 외지인의 모습을 한 악마가 이 사태의 주범이라 생각하고 그를 찾아가지만, 외지인과 마주한 그는 결국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울부짖는다. 그것은 악마를 마주한 이의 두려움일까, 아니면 뿌리 채 뽑혀버린 자신의 믿음에 대한 절망일까.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라는 그 지고한 믿음이 이토록 끔찍한 재앙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함 없이 그대로라면, 악마는 처음부터 그러한 믿음 속에 잠들어있던 것이 아닌가?
한편 한참을 돌아 재회한 종구에게 무명은 이전과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더 이상 종구는 그녀를 믿지 않는다.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가려던 종구에게 그녀는 또 다른 말들로 그를 사로잡는다. 의심과 혼란으로 뒤섞인 종구는 결국 그녀를 믿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끔찍한 비극뿐이었다.
그렇다면 무명의 말을 믿고 끝까지 기다렸다면 사태가 달라졌을까? 처음부터 무명에게 흔들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갔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이 사태의 원인은 결국 무엇인가? 누가 선인이고 누가 악인인가? 종구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끝 없는 질문에 대답해줄 이는 아무도 없이, 우리는 그토록 허탈한 비극적 결말을 품에 안은 종구의 표정을 끝으로 극장을 나서야 한다. 누구도 우리의 의심과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내려줄 수 없다. 비극은 그저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발버둥칠수록 우리는 길을 잃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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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갤이 마무리되고 칸이나 유명 영화지에서 곡성 리뷰가 올라는 시점이라 많이 민망하네요.
곡성 보고 나서 느낀 점이랑 생각들을 친구랑 얘기하면서 정리하는 느낌으로 써봤습니당.
그렇네여
국
굳
오랫만에 보는 굿 리뷰 ㅊㅊ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의미가 잘 전달되는 글이네요 Good
흐흐 감사합니다
잘썼다 진짜
좋다 리뷰.
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