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황진미 아줌마도 곡성 존나 칭찬하네 대단한 영화라고 극찬 리뷰씀ㅋㅋㅋ
역시 종교적으로 해석하면서 가장 종교적인 질문을 하는 영화라고 함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20160520100703247
[황진미의 부귀 영화] 보고난 후 더 혼돈에 빠지는 영화 '곡성'
황진미 영화평론가
영화 본 내용 제각각 달라 관객들 혼돈에 빠져농촌 스릴러에서 토종 오컬트와 좀비물로강렬한 종교적 메타포,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본다
‘곡성’은 실로 대단한 영화이다. 불이 꺼지는 순간 영화는 관객의 멱살을 잡고 테마파크 속 귀신의 집으로 끌고 들어간다. 강렬한 이미지로 오감을 뒤흔든 후, 겨우 멱살을 놓아주는가 싶더니 이제는 혼돈과 허무의 벼랑 끝에 올려놓는다. 불이 켜지면 거기엔 애초 아무것도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관객들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보았다는 것이 모두 다르다. 마치 악몽을 꾸었을 때처럼, 입을 떼는 순간 감흥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논리 정연한 설명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영화 속 종구(곽도원)는 몇 번이고 악몽에서 깨어난다. 종구의 눈을 통해 사태를 보는 관객들은 방금 본 끔찍한 장면들이 종구의 꿈인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영화는 종구를 혼돈의 무간지옥으로 끌고 간다. 처음에는 제법 이성적인 것처럼 굴던 종구는 자신의 딸이 위태로워지자 점점 의심과 광기에 사로잡힌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종구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추인하지만, 영화의 반전으로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죽은 건지 산 건지… 산 채로 뜯어먹히는 엽기성, 신체 절단과 감염
‘곡성’의 장르는 무엇일까. 처음에는 농촌 스릴러와 코미디를 뒤섞은 듯한 장르로 출발한다. 그러나 중반 이후 뚜렷한 오컬트와 좀비물로 변모한다. 이건 대단한 성취이다. 한국에서 오컬트는 ‘검은 사제들’ 이전에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검은 사제들’이 가톨릭 엑소시즘을 한국화했다고는 하지만 번안물일 수밖에 없는 데 반해, ‘곡성’은 완전히 한국적인 엑소시즘을 보여준다. 더욱이 ‘곡성’은 ‘검은 사제들’보다 먼저 찍은 영화다.
좀비 영화 역시 한국에서 거의 만들어지지 않았다. 독립영화 등을 제외하고는 ‘GP506’이나 그 아류인 ‘무수단’에서 좀비의 존재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곡성’은 단지 좀비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비물이 지향하는 공포의 본질을 구현한다. 즉 죽은 건 지 산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신체가 변형되고 절단되는 기괴함, 산채로 뜯어먹는 엽기성, 감염으로 확산하는 전염성 등이 생생하다. ‘곡성’은 가장 한국적인 오컬트영화이자 본격 좀비 공포물이라는 점에서도 상찬받을만하다.
◆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집에 가지 말라
하지만 오컬트나 좀비물이라는 장르로는 ‘곡성’에 대해 반도 설명할 수 없다. ‘곡성’은 내용의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극히 신학적이며, 현실적인 시공간을 채택하지만, 우화에 가깝다. 요컨대 리얼리즘의 외피를 쓴 종교 우화이다. 영화는 아예 누가복음 24장을 자막으로 띄우고 시작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문구는 영화의 마지막에 종구가 두려움과 의심에 가득 차서 무명(천우희)의 손을 만져보는 장면과 가톨릭 부제가 부활한 일본인(쿠니무라 준)의 손에서 성흔을 보는 장면과 맞물린다.
무명의 손을 만진 종구는 소스라치게 놀라지만 그것이 만져져서 놀란 것인지 만져지지 않아서 놀란 것인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불신에 가득 차서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집에 가지 말라는 무명의 말을 무시하고 뛰어가는 종구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가톨릭 부제는 일본인 앞에서 “주여”라는 감탄사를 내뱉지만, 그것이 눈앞의 존재에 외경을 느껴서 한 말인지, 공포에 사로잡혀 하늘의 주님을 찾는 말인지 명확지 않다.
◆진짜 비극은 인간이 끝까지 믿지도 못한다는 것
영화는 종교적인 메타포를 사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제의 측면에서 가장 종교적인 질문으로 육박해 들어간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흔히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 말하지만,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인 존재인가. 영화는 종구를 통해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혼돈의 지경에 놓인 인간이 소문이나 몇몇 단서들을 짜 맞추어 심증을 갖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할수록 어떤 행동이든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심증은 믿음으로 굳어진다.
이제 보는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진짜 비극은 인간이 끝까지 믿지도 못한다는 데에 있다. 종구는 굿을 하다가도 도중에 중단시키고, 닭 울음을 기다리다가도 마지막 순간에 집에 간다. 첫 번째는 다행이었지만 두 번째는 불행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인식의 한계 때문에 쉽게 미혹되지만, 믿음의 한계 때문에 금세 의심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을. 서로를 악마라고 부르는 무명과 일광 사이에서, 누구의 말도 믿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는 종구의 모습이 바로 인간의 본질인 것을.
저런 첫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는 사람의 심리는 뭘까
진미누나가 웬일 자기 스탈 아닌것 같은데 극찬이라니ㅋㅋㅋ곡성은 장르영화공식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굉장히 철학적인 메타포가 가득한데 역시 황진미도 그부분 찝어주네
황진미 리뷰가 이리 깔끔하게 읽힐때가
닭이 세번 울때까지 가지말라는 장면이 곡성에서 중요한 장면인데 리뷰에도 나오네
황진미 글에 공감하기는 오랜만, 답을 알려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의 핵심을 잘 이야기해주네. 곡까들은 보고 또 빼액대겠지
어차피 이미 누가 쓴거잖아 ㅋㅋㅋㅋ
황진미 맨날 무시했는뎈ㅋ이런글도 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