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영화 갤러리에 올린 글은 단순한 토막 난 기억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품격을 갖추고 글을 배설하고자 한다.

다만, 좋은 점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적지 않고 싶다.

왜냐면... 칭찬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깐...









<또순이의 좆포칼립스 감상문>



엑스맨 서사시의 뼈대를 이루는 대주제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다. 실제로 엑스맨이 탄생한 이유 역시, 핍박 받던 흑인 사회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X 간 이념 논쟁을 만화책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고, 이는 찰스 재비어 교수와 에릭 렌셔 간의 이념 갈등으로 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더욱 더 엑스맨의 새로운 시리즈를 맡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다. (싱어는 유대인이자 동성애자로서 소수자의 삶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포칼립스 시리즈는 <브라이언 싱어의 엑스맨 트릴로지>에서 왜 필요한 것인가.

바로 아포칼립스라는 악당이 '돌연변이의 근원'에 대해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포칼립스는 최초의 돌연변이로서 군림했고 모든 돌연변이의 아버지라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20번 가까이 나오는 "My child"라는 대사는 아포칼립스 스스로가 근원임을 자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는 편견과 선입견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소수자인 돌연변이를 이끌어 갈 유일한 목자이며 권능자다. 아포칼립스는 돌연변이의 근원으로서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엑스맨 아포칼립스 시리즈(원작)의 재미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만약 목자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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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엑스맨 트릴로지는 사실 프리퀄 시리즈에 가깝다. 후에 나올 뉴 엑스맨 시리즈를 위해 인물들을 재정비하고 세대 교체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폭스가 마블에게 밀리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근원을 묻고, 위에서 말한 질문을 해결한다면 뉴 엑스맨의 성공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기는 커녕, 코 앞에 들이닥친 상업성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브라이언 싱어가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삼은 것은 위와 같은 고단수의 판단이었지만, 폭스사에서는 향후 나올 영화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블이 <퍼스트 어벤져>와 <토르:천둥의신> 같은 졸작을 뿌려낸 덕분에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캐릭터성'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 흥행을 싹쓸이 할 수 있었고, 폭스가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엑스맨 : 아포칼립스>가 최적이자 최후의 기회였을 것이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마케팅 효과를 누려야 했다. 감독은 상업성의 논리를 거부할 힘이 없고 결국, 엑스맨에서 새로 나온 인물들은 각 캐릭터들을 읊조리는 것만 해도 영화의 절반을 소모했다.


실제로 이 아쉬운 점이 어떻게 드러났는지 알아보자.







[Chapter 1. 좆젤, 좆일록, 좆톰 그리고 매그니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4인의 기사단을 조종하는 것은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인물의 감정 변화가 누락되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4인의 기사단은 각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핍박을 받고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다수의 횡포에 대해 신물이 난 상태로 '돌연변이의 근원이자 목자'인 아포칼립스에 동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만의 뚜렷한 정체성이 있어야, 훗날 아포칼립스를 배신할 때도 각자의 이유에 대해 관객이 고개를 끄덕일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엑스맨:아포칼립스>에서는 각 캐릭터를 마케팅 도구로만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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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엔젤은 검투사 노예와도 같은 상황을 겪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는 즐기고 있었다. 나이트크롤러와의 대결 장면에서 대사 한 마디만으로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싸우는 거임ㅋ"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터무니 없는 등장 씬 때문에 아포칼립스에게 들러붙는 것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냥 "내 날개 고쳐줬으니 고마워. 힘 줘서 고마워. 니 편 할께"라는 식이다.

사일록은 더 놀랍다. 뒷골목 정보상인의 보디가드 노릇을 하는데, 사이킥 에너지(광선검)를 강화시켜줬다고 갑자기 아포칼립스에게 들러붙는다.

스톰은 더 이해할 수가 없다. 분명 자기 아지트에 미스틱 사진을 붙여놓을 정도로 그녀를 존경했다. 미스틱은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에서 대통령 암살을 막고 돌연변이가 사회의 편견과 핍박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보여줬다. 그런데 스톰은 그녀의 이상과 달리 아포칼립스 편에 붙는다. 이유는 없다. "스톰이 미스틱을 존경한다"는 소재는 오로지 영화 마지막에 '배신'을 위해서 존재할 뿐, 그 전에 나오는 수많은 오류는 다 무시해버린다.

매그니토는 주연답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고,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 다수에 대한 분노가 일어나는 과정, 그리고 아우슈비츠라는 장소를 통해 그 분노가 잘못된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까지 좋았다. 몇몇 영갤러들은, 공장에서 피바람을 일으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데 오히려 이 점은 감독이 더 노련했다. 감정적으로 매우 중요한 씬에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힌다면, 나중에 엑스맨 편이 되어, 자기 내면에도 '선한 본성'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 설득력을 잃을 수도 있었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인데, 엔젤 쓸데없는 격투 장면, 스콧 차 훔쳐서 놀러다니는 거, 울버린과 진의 과한 만남 씬, 퀵실버의 4분짜리 과한 씬을 줄인다면 충분히 스토리상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퀵실버는 <데이즈 오브 퓨쳐패스트>처럼 느린 시간 속에서 노래 'Time in a bottle'과 딱 맞아떨어지는 연출이 기가 막힌 거지, 그냥 퀵실버가 멋있어서 기가 막힌 게 아니다. 이번에는 그냥 퀵실버의 멋에 도취된 것만 같다. 이건 팬들의 성원이 오히려 독이 된 결과다.







[Chapter 2. 거대한 주제, 좆만한 생각]


<아포칼립스>를 주제로 삼았다면, 서두에서 밝힌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를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포칼립스는 그냥 파괴의 신일 뿐이다. Weapons, Super powers를 무너뜨리고 새 세상을 이룩하는 것에만 집념한다. 이는 '다수의 횡포, 소수의 핍박'에 대한 이야기가 될 수 없으며 '근원에 대한 질문'에서 해답을 주지도 못한다. 그냥 3D IMAX 상영관에서 스펙타클만 일으킬 뿐이다. 결국, 4인의 기사단은 뚜렷한 개연성 없이 아포칼립스 편에 붙었다가, 뚜렷한 설득력 없이 배신을 한다. 사일록은 거기서 또 이해하지 못할 배신을 한다.

그러다보니 악역이 존나 쌔보이기는 한데, 뚜렷하게 기억에 남질 않는다. 우리가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에 반한 것은, 행동은 밑도 끝도 없어 보일지라도 선과 악에 대한 괴물같은 분석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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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잘못은 바로 이 새끼다. 본 영화의 각본을 맡은 사이먼 킨버그. 판타스틱4 리부트 각본에도 참여했다.)




[Chapter 3. 인터스텔라의 악몽이...]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의 교차편집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천하무적 센티넬이 쳐들어오는 그 긴박감. 마주치면 일단 사망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무력감...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아 존나 떨리네, 제발 좀 빨리 좀 해결해"라며 각본에 설득되어 간다. 이때 1980년에서는 인물들 간 첨예한 대립구도가 극에 달하면서 더욱 더 다리를 떨게 만든다. 참 대단한 구성이었다.

그런데 <아포칼립스>에서는 충분히 멋진 기회가 있었음에도 대충 흘려보낸다. 대머리가 된 찰스가 역공을 시작하는 시점인데, 찰스의 정신 속에서 아포칼립스와 육탄전을 벌이는 것이 교차편집의 시작이다. 엑스맨은 하나 둘 씩 힘을 합치는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악한 행동을 하던 4인의 기사단이 점차 뚜렷한 자신만의 가치관이 생기고 있다"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찰스의 정신 속에서는, 둘이 생각하는 이념과 철학 등에 대해 논쟁이 나와야 한다. 이 점은 찰스가 아포칼립스 대가리 붙잡고 "내가 느끼는 것을 너도 느껴봐"라며 이미지 공격을 했던 것으로 표현될 수 있을 텐데, 그냥 육탄전으로 연출한 것이 참 밋밋했다. 그러니까 전혀 연관성 없는 교차편집이 되었고, 따라서 긴장감도 팽팽하게 당길 수 없었다. <인터스텔라>에서 존나 긴박한 5차원과 느긋느긋하게 옥수수에 불 태우는 것... 갑자기 그 악몽이 떠올랐다.









[Chapter 4. 이거 왜인지 몰라? 아니 원작도 안 봤어?]



결말은 씬 구성과 연출력이 다소 구식이어서 그렇지, 이야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아포칼립스는 스스로 최초의 돌연변이이지만,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근원에 대해서 알지 못하며, 또한 이 초인적인 능력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스스로 목자, 구원자, 신 행세를 해대지만 정작 자신의 근원에 대해서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고, 이는 원작에서 아포칼립스의 심리적 컴플렉스로 작용한다.

이때 진 그레이가 힘을 해방하면서 '피닉스 포스'가 나오는 것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피닉스 포스는 태초부터 존재한 우주의 근원적 힘인데, 생명의 탄생과 죽음, 시작과 끝, 탄생과 소멸의 의인화라 할 수 있다. 모든 힘의 근원이다. 

따라서 아포칼립스 눈에 비친 피닉스 포스는, 자신을 비롯한 만물의 근원이었고 이를 깨닫는 순간, 평생의 소망을 해결한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 대사가 "마침내 밝혀졌다(revealed)"였나? 아무튼 밝혀졌다는 뉘앙스였다. 이제서야 우주적 내용을 담았고, 본질적인 질문을 해결한다는 감독의 트윗을 이해하게 되었다. 연출 제외하고 이야기만 본다면 정말 훌륭한 결말이었다. 


근데 이건 십 년 전 엑스맨 3편에서 나왔던 피닉스 포스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거기서 피닉스 포스는 그냥 존나 쌘 우주적 힘이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오로지 원작 만화를 즐긴 사람한테만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마 사이먼 킨버그와 브라이언 싱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거 왜인지 몰라? 아니 원작도 안 봤어?"









하지만, 글을 쓴 나는 당장 원작 만화 팬이기 때문에, 영화를 좆으로 만들든 터래끼로 만들든 다 감사하고 재밌게 본다. 유치하고 아쉬웠지만, 엑스맨 역시 흥분하면서 봤고 피닉스 포스 나올 때는 두 손을 꼭 붙잡았다. 그래도... 이렇게 푸념이 길었던 이유는 <데이즈 오브 퓨쳐패스트>가 워낙 좋았기 때문 아닐까.


<세줄요약>


1. 캐릭터를 너무 많이 등장시켜야'만' 했고, 결국 난잡한 각본 속에서 모두가 개연성을 잃음

2. 아포칼립스는 원래부터 훌륭한 주제이고 또 감독에겐 꼭 필요한 선택이었는데, 그냥 힘 쌘 악당에만 집중을 함

3. 퀵 실버, 찰스의 정신 세계에서 역습 이 두 개는 충분히 훌륭하게 연출 가능한데, 시간 떼우기만 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