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한 여자가 있다. 남자는 여자의 모든 행동을 몰래 엿보고 있다. 범죄다.

그런데 영화는 이걸 보고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랑 영화인 동시에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묻는 영화이다.

 1. 어디까지가 사랑인가?

작중 남성 주인공의 행동은 굉장히 집착적이고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많다. 상대의 사생활을 전부 감시하고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거짓 우편을 넣고 우유 배달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는 질투심에 못 이겨

전화로 배관공을 불러 훼방을 놓고 만다. 그의 정신적 증세는 병적일 만큼 심각해 보인다. 그런데 그가 그녀에게 용기내어 사랑한다며,

나는 당신의 사소한 부분마저 알고 있으며 그런 점들을 챙기고 배려해 줄 수 있다며 솔직하고 따뜻한 고백을 털어 놓은 이후, 그들은 연인이 된다.

이런 사랑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아니, 당사자들이 좋다는데 제 3자가 받아들이는 건 중요한가? 타인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의 사랑이라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이 논점은 현대의 동성애 논란에도 그대로 가져올 수 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사랑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우리의 가치관이다(남자의 행동이 비도덕적이라고 여기는 것도, 사랑은 남자-여자 간의 결합이라 여기고

남자-남자, 여자-여자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전부 우리의 도덕적/성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권리로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고 폄하할 수 있는 걸까?

되려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는 게 아닌가? 미국의 동성애 전면 합법화 이후로 한국에서도 동성애 논란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2. 사랑은 존재하는가?

여자는 남자를 집으로 데려가며, 옷을 벗으며 유혹한다. 흥분하는 남자.

그러자 여자는 그 성적 흥분이 사랑의 전부라며 비웃는다. 충격받는 남자.

굳이 여기서 다양한 사랑의 정의에 관해 글을 줄줄이 늘어 놓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영화가 지적하는 부분이 굉장히 탁월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여자는 성적 흥분이 사랑의 전부라며 조소하지만, 사랑에서 성적인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는 게 가능한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는 사랑과 정신적인 교감을 맺는 사랑이 함께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랑을 단지 성관계로만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또 만약 사랑에서 성적 감정을 전부 배제한다면, 친구들과 느끼는 우정은 사랑과 어디가 다를까? 이 질문들에는 정답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감독이

영화를 끝맺는 방식은 다소 온건하게 여겨진다. 남자는 사랑이 허물어 졌다는 충격에 자신의 혈관을 잘라 버리고, 얼마 후 그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며

그를 간호하고, 뒤늦게 그가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느끼며 끝이 난다. 중반 이후까지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를 해부하며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데 비해, 결국 사랑을 의심하던 여자가 사랑을 확인하기까지의 과정은 이 작품 역시 한 편의 사랑 영화라고 못 박는 듯 하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은 애정에 관한 많은 질문을 던지지만, 어떤 정답도 안겨 쥦 않는다. 그 점이 이 작품을 걸작이라고 판단하게 만든다.

고민하고 사유할 여지는 깊게 남겨 놓아, 감상자 개개인에게 작품의 의미를 완성할 궈니를ㄹ 넘겨 주는 뛰어난 성과를 이루는 예술은 드물기에, 더욱 탁월하다.

당신이라면 마지막에 홀로 구슬프게 울고 있는 여자의 눈물을 닦아 줄 수도,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 줄 수도 있으며, 그 외에도 그녀의 아픔을 달래 줄

수많은 방법이 있다. 너무 선택지가 많아 혼란스러워 할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도 있다. 

당신이 어떤 걸 선택하든 그 녀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계속 보낸다며, 그건 사랑이라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