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매력은 세련된 첩보물이면서도 느와르의 비극적 감수성을 지닌 주인공의 캐릭터에 있었다.


제이슨 본-데이비드 웹은 이전 트릴로지 내에서 애국의 마음으로 비밀 요원양성 프로그램에 자원했다가 시스템에 의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어버린

청년이었다.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는 그래서인지 요원들 하나하나가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생존을 위해 본과 싸웠고 죽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가졌었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한 이름모를 요원은 본의 암살에 실패하고 오히려 친근하게까지 보이는 대화를 건다.

두통이 있고,  빛이 자꾸만 아른거려 눈에 부시다며, 생사를 걸고 싸운 적에게 동질감을 확인하려 애를 쓴다.

언제나 혼자 일하지만, 왜 타깃을 죽여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시스템의 희생양. 어떤 외로움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본 슈프리머시에서 칼 어번이 분한 CIA의 암살자도 말이 없고 혼자이긴 마찬가지이다. 그저 자신을 죽이지 않는 본을 어리둥절하게, 혹은 무력하게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로 몇십줄 대사보다 많은 말을 보여주었다.

얼티메이텀 막바지에 본을 겨누던 요원이 궁금했던 것은 왜 자신을 쏘지 않았는지이다.

본이 쏴야 할 이유를 모르는 사람을 왜 쏴야 하는지, 궁금해 해본적 있느냐고 물어보자 그때서야 요원은 무언가를 깨달은듯 멍해진다.

시스템에 의해 파괴되어 인간적 상식을 부정당한 개인의 모습이다.

국가가 개인을 안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파편화시킬수 있는지 날카롭게 상상하면서, 동시에 영화로서 애틋한 감성까지 잡아내는 이 시리즈의 힘은

잘 자아낸 설정과 각본의 힘이었다.


레거시를 거치면서, 암살자들의 성격은 좀더 풍부해졌다.

그에 따라 대사량도 많아지고, 암살자 개인의 캐릭터가 좀더 부각되는 느낌이다.

그로 인해 레거시는 본 시리즈중에서 좀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본 레거시 최고의 장면인 산장 장면은 오스카 아이작의 특이한 매력과 함께 폭발하는 감수성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제이슨 본의 문제가 무엇이냐 하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설정이 추가되며 어리숙한 애국청년 데이비드 웹이 사실 애국보다 복수를 위해 자원한 복수귀로 변하면서,

국가로부터 이용당하는 캐릭터의 비극성이 옅어졌다. 복수를 위해 요원양성 프로그램에 자원했다는 사실 자체가 데이비드 웹과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서로를 이용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게 되버린 것이다.

그리고 뱅상 카셀이 연기한 요원이 블랙브라이어 폭로 사건때 신원이 노출되어 고문을 당하게 된 요원이라는 설정이 추가되며, 제이슨 본과의 대결이

그저 개인적인 원한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뱅상 카셀은 이전의 암살자들이 보여줬던 비극적인 느낌이 없다. 다른 매체들에서 보여주는 일반적인 CIA요원 A정도 느낌인데 이 영화에선

최종보스가 되어버린다. 말이야 많을 수도 있고 임무를 위해 민간인들을 쏘아 죽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본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부숴져 만들어진 인간병기의 느낌이 아닌 그냥 전문적인 킬러의 느낌이라 너무 식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CIA또한 캐릭터성을 잃어버렸다. 

이번 제이슨 본과 가장 비슷한 조직내 암투를 보여주는 것은 전작 본 아이덴티티인데, 

본 아이덴티티에서 훌륭한 점은 영화가 전개되어 나가면서 실권자처럼 보였던 알렉산더 콘클린이 점차 몰락하고,

힘을 못쓰는 호구영감처럼 보였던 애봇이 막후 실세임을 충격적으로 보여주며 또다른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슈프리머시에서 워드 애봇과 파멜라 랜디의 대립 또한 극중 또다른 갈등을 만들어내며 긴장감을 끌어올렸고,

노아 보슨과 파멜라 랜디의 2차전이 벌어졌던 얼티메이텀도 유사하다.

무엇보다, CIA내부에서 파멜라 랜디와 같은 선역 캐릭터를 부각시킴으로서 CIA자체를 여러 인간군상들이 모인

군체로 승화시킨 아이디어는 대단했다.


하지만 제이슨 본의 CIA는 그저 권력암투가 벌어지는 설명충들의 집합이다.

화이트보드와 쉴새없는 브리핑으로 무언가 일이 '돌아가는'느낌을 주었던 전작의 태스크포스들과 달리

이번의 CIA는 기술의 발전으로 뭐든지 쉽게 알아내지만 결국 인물들의 동선을 관객들에게 확인시켜주는

해설역에 그치고 만다. 

헤더리의 야심도 퍼즐을 끼워맞추는 수싸움이라기 보다 헤더리의 막강한 해킹실력으로 본을 지원하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충돌로 이루어지게 되다 보니, 맥이 빠져 버렸다.

마지막 장면의 오벨리스크를 비추어주며 애국을 말하며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은 악인이다 라는 교훈을 주려고 애쓰지만,

차라리 전작의 연출과 각본이 더욱 처절했다.


그리스 시위장면은 현장감이 넘쳐 압도적이었다.

얼티메이텀정도까진 아니지만 요원들과의 추격전이 사뭇 긴장되었지만,

마지막의 베가스 추격전은 매우 실망이었다.

전의 시리즈에서는 각 편마다 인상적인 액션씬이 있었다.

아이덴티티에서는 더그라이먼의 훌륭한 마지막 안가 전투씬이 있었고,

폴 그린그래스는 얼티메이텀에서 대시와 본의 명격투장면을 만들어냈다.

맷 데이먼의 나이가 많은 탓도 있지만, 사실 날카로운 격투장면은 운동능력보다

제작진의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이번 영화는 뭔가 힘이 빠진채 만들어진게 아닐까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줄요약


사족이라 이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