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8&aid=0002331046&sid1=001


예컨대 스티브 매퀸의 영화(<노예12년> <쉐임>)와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다크 나이트> <메멘토>)가 두 편씩 올라 있는 반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제임스 그레이, 자장커와 왕빙, 페드루 코스타와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필리프 가렐과 알랭 기로디, 홍상수와 봉준호, 알랭 레네와 장마리 스트로브 등등의 영화가 빠져 있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다른 이라면 위에 거명된 몇몇 이름을 빼고 10여명 정도는 쉽게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명단의 문제점은 다수의 개별 명단을 집계한 결과라는 데 있다. 짐작건대 이 집계에 참여한 전문가 중 상당수는 9시간이 넘는 왕빙의 <철서구>를 아직 보지 못했을 것이다. 몇몇 영화제에서만 상영되었을 뿐 개봉되지 않았고 프랑스 외에는 디브이디(DVD)가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영화가 세 편이나 포함된 명단에 <철서구>가 빠져 있다는 건 그 이유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오즈 야스지로가 서구에 소개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초이지만, 10년 단위로 발표되는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의 세계 영화사 10 베스트 명단에 <도쿄 이야기>가 오른 건 20년이 지난 1992년이다. 명단이 시대에 따라 바뀌는 건 관점의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새로 발견된 작품을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보기까지 그만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계된 베스트 명단의 맹점이다.


또 다른 문제는 <비비시> 같은 지명도 높은 기관의 명단이라는 점 때문에 그것이 정전(正典)의 권위를 행사한다는 점이다. 위대한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정전이라는 단어는 역겹다”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명단이 꽤 훌륭한 경우조차 ‘이걸 안 보면 실격’이며 ‘이것만 보면 된다’는 나태한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명단은 무익하거나 유해한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온갖 베스트 명단이 늘 궁금하다. 명단들을 보며 대개 우쭐함(‘훌륭한 영화를 빼고 멍청한 영화를 넣었군’)과 질투심(‘이건 내가 모르는 영화인데…’)을 함께 느낀다. 중요한 건 후자다. 명단들이 내가 모르고 있던 영화들을 발견하도록 부추긴다.


알려진 영화의 순위 다툼이 아니라 그만의 발견에 명단의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가장 권위 있는 하나의 명단이란 있을 수 없다. 자신의 발견을 뽐내며 서로 경쟁하는 복수의 명단이 있을 뿐이다. 나로선 비비시의 명단보다 한 영화광 고등학생의 명단에서 더 큰 자극을 받는다. 영화 공동체는 기묘한 곳이어서 유명한 서구 평론가의 명단과 한국 고등학생의 명단이 당당히 겨룬다. 이건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