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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이와이 슌지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특유의 감성은 유지되어왔지만 플롯이나 풀어가는 방식, 분위기 등에서 밝은 톤과 어두운 톤이 극명하게 갈려왔다.

팬들은 '화이트 이와이'와 '블랙 이와이'라고 나누곤 하는데 (이 분류가 의미 없다고 보는 팬도 있지만.)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같은 작품들이 전자에 속하고, ( 이를 묶어서 '화이트 필름 컬렉션'이라는 블루레이가 나오기도 했다 )

<언두>, <피크닉>,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은 후자라고 할 수 있겠다.



화이트 이와이 작품들의 이야기는 따뜻하고 편안하며 나오는 인물들은 한없이 착하다.

반면 블랙 이와이 작품들의 이야기는 우울하고 기괴해서 몇몇 지점에선 불편함을 느낄 정도. 인물들은 미친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그가 <하나와 앨리스> 이후 12년만에 내놓은 일본어로 된 실사영화 신작 <립반윙클의 신부>는 그 색을 구분짓기가 굉장히 모호하다.

인터넷과 SNS로 점철된 현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고 차갑게 그려냈다. 스토리라인도 가히 평범하진 않다. (<언두>나 <피크닉>때의 그를 보는듯하기도.)

그런데 <립반윙클의 신부>에는 코미디와 따뜻함도 담겨져있다.



누군가는 '그레이 이와이'라는 새로운 색깔을 벌써 부여했던데 음. 뭔가 색깔장난같기는 해도 이번 작품에는 그 표현이 딱 알맞다.





주인공인 나나미(쿠로키 하루)는 소위 말해 'SNS 중독자'다.

플래닛이라는 sns에 빠져있는 그녀는 결혼 상대까지 인터넷으로 구했다.

실제의 세상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못 내고, 위축되어있으며 거짓투성이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마이크를 쓰라는 조롱을 당하는가 하면 가짜 결혼식 하객도 인터넷으로 구한다.)

반면 인터넷에서는 쉴새없이, 그리고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것이 신랑에게 발각되어 의심을 받기도.



그녀가 인터넷을 통해 만난 모든 인물들은 한없이 가볍고 일시적이며 그녀를 이용하는 존재들일 뿐이다.

언뜻 그녀에게 호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무로(아야노 고)와 마시로(코코)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내내 나나미는 속고 또 속는다. 꽤 많은 관객들이 나나미를 답답하고 수동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느 순간 이런 나나미와 현재 내 모습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됐으니까.



인터넷을 통해 짝을 찾는다? 요즘에는 전혀 놀랍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다.

또한, 요즈음의 많은 사람들이 고민거리가 있거나 알리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무슨 행동을 하는가?

인터넷, SNS에 올린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을 적극적으로 참고한다.

(하다 못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인터넷에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생각, 별점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지 않나?)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거짓으로 가득차있거나 부정확하고 아무 생각없이 올린 것들이지만 어쩐지 그런 것들에 기대게 된다.

왜일까? 영화 속의 나나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왜 이런 것들에 점점 마음을 의지하고 속아넘어가게 되는걸까?





간단하다. 외로워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지금 심각하게 소통이 단절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요즘의 우리는 메신저나 SNS로 안부를 전한다. 결혼식을 한다는 친구도 전화 한 통, 청첩장 한 통 오지 않더니

카카오톡으로 된 청첩장 하나만이 달랑 날아올 뿐이다. 가족들도, 친척들도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명절에도 얼굴 보기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결혼식에 부를 친척들이 없어서 가짜 하객을 이용하게 되는 나나미의 모습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영화 속에서 나나미는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가짜 가족'으로 엮이게 되는데

이들은 결혼식 후에 서로 '뒷풀이'를 하며 매우 즐거워하고 좋아한다. 생전 처음, 그것도 인터넷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인데 말이다.

이 씬들을 보고 있으면 각자가 얼마나 외롭고 단절되어 있었으면 '가짜 하객'으로 엮인 사람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실제로 여기서 '가짜 가족'으로 엮인 5명은 모두 '독신'이다.)

실제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가족이나 친구보다는 인터넷, SNS 속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인터넷에서 만나게 된 사이인만큼 일시적이고 잠깐일 뿐,

일행은 금방 헤어지고, 가는 방향이 같아서 좀 더 시간을 보내게 된 나나미와 마시로도 교류가 있는가 싶더니

마시로는 시내 한복판에서 홀연히 사라진다. 나나미는 애타게 마시로를 찾다가 묻는다. 어디에 있느냐고. 역시 'SNS'로

(나나미와 마시로가 가라오케 술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 마시로가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이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굉장히 좋다.)





영화 후반부에서 마시로는 나나미 앞에서 갑자기 독백을 한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편의점에서 과자를 샀을 때 과자를 봉지에 분주하게 넣어주는 점원을 보면

왜 나 따위를 위해서 이런 일까지 해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자기는 그것이 낯설고 어찌할 바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돈으로 그런 친절을 산다고.



누군가는 뭔 정신나간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의 우리 모습이 그렇다.

실제로 돈으로, 인터넷으로 가짜 가족을, 친구를, 짝을 구하고 그들의 친절이나 사랑, 우정을 사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립반윙클의 신부>는 감독이 바라보는 요즘의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젊은이들을 영화 내내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어서

낯뜨거워지기도 하고, 요즘의 나의 모습, 우리 사회의 모습들, SNS 따위에 대해서 계속 곱씹게 만든다.



이와이 슌지는 이러한 차갑고 씁슬한 이야기와 주제를 쿠로키 하루의 사랑스러운 연기와 간간히 녹아들어간 유머로

중화시키고 있는데, 그에게서 처음 느껴보는 '블랙코미디'적 재능이어서 매우 흥미롭기도 했다.

(후반부의 마시로의 어머니, 아무로, 나나미가 연출하는, 가장 기괴하고 어찌 보면 슬프고 씁슬한 장면에서조차도 코미디가 가미된다.)





이 영화의 시작과 끝은 모두 나나미 혼자 서있는 장면인데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첫 장면에서의 나나미는 어지러운 시내 한복판에서 내내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카메라 구도도, 그녀의 시선도 초조하고 불안한 느낌

반면 마지막의 나나미는 자신만의 집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으며 그녀의 행동도 처음으로 당차고 자신있어보인다.

(똑같이 집정리를 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4월 이야기>의 결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감독은 어찌 보면 최근에 개봉한 영화 <최악의 하루>의 엔딩처럼,

나나미에게 있었던 일들은 정말 '최악의 하루, 하루'들이었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고

앞으로 주인공은 행복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듯하다.



블랙 이와이의 작품들이 대부분 배드엔딩에 가까웠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독특한 지점이고,

그것이 <립반윙클의 신부>가 완전한 블랙이 아닌 '그레이'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이와이 슌지가 만들었던 영화들 중에선 몇 안되는 호불호가 꽤나 확실하게 갈릴만한 영화지만

그의 영화 중 가장 새롭고 독특하며 웃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직전에 만들었던 것이 <하나와 앨리스: 살인 사건>이라는 따뜻한 애니메이션었던 걸 생각하면 더 놀랍다.





영화에서의 쿠로키 하루는 실제로 저런 성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코코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라고 하는데

영화의 중후반부를 이끄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아야노 고는 얄밉지만 귀여운 캐릭터의 느낌을 잘 살렸다.



또한 전작인 <하나와 앨리스: 살인 사건>부터 이 작품까지 이와이 슌지가 속한 3인조 유닛 '헥토 파스칼'이 음악작업을 이끌고 있는데

<립반윙클의 신부>는 '헥토 파스칼'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인 마코 쿠와바라가 음악의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예고편에 깔리는 コスモロジー (Cosmology)와 何もなかったように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이 두 곡은 주연배우이자 가수인 코코가 직접 불렀다]

등을 필두로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항상 그래왔듯 음악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작년 말 '이와이 슌지 기획전' 내한행사 때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와이 슌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매우 아슬아슬한 삶을 살며 매일 불안과 싸우고 있으며, 사는 것이 힘들어지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 사회가 이대로 괜찮은지 의문을 가졌고, 앞으로 어떤 과제가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어 <립반윙클의 신부>를 만들었다고 했다.



최근의 그의 작품에서는 <러브레터>, <4월 이야기> 등에서의 감성과 감각적인 연출, 음악에 사회비판적인 모습까지 더해진듯 하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그가 여전히 열정적이고 이 시점에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젊은'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 앞으로의 작품들을 더욱 기대할 수 있게 만든 작품이었다.




★★★★

+ 2시간짜리 버전을 봤는데 1시간 잘린 것이 참 아쉽다. 뭔가 생략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마시로 어머니로 나오는 배우가 이와이 슌지의 얼굴을 닮아서 재밌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