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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가 던지는 소통에 대한 질문과 그 답..

[타자와 대면했을 때 우리의 소통방식은 어떠해야 바람직한가]

답:루이스처럼하면된다. 루이스처럼 사려깊게.





보시다시피 컨택트는

소통에 대한 인식만 가지고는 영화가 될 수 없었다.

너무 뻔하지 않은가? 루이스가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고 타자의 입장에 서서, 진심을 다해서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캥거루가 나는 몰라요고 외계인의 무기는 우리의 무기가 아니었고 언어는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아서 소통하기기 힘들고..

너무 오랫동안 다루어져왔던 것들이다.

그것만으로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이것만으로는 전혀 독창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컨택트가 예술 작품이 된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컨택트의 독창적인 부분은 따로 있다.

편집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매우 정교하게 다루었다는 점이다.




영화가 루이스의 꿈인듯 과거인듯 제시하는

딸과 같이 등장하는 장면들.



루이스는 이혼녀인 것 같다. 별거 중인 것 같다. 아이가 죽은 것 같다.

막바지까지 영화는 그것을 확실히 하지 않는다.

관객들은 막연히 짐작한다.

루이스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신적인 암시가 깃든 사건들이 있었던 것인가?

아이가 외계인 점토를 만들고 외계인 그림을 그리고,

제로섬이란 단어를 말하게 하고..




하지만 루이스가 외계인의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과 동시에, 관객들은 이제까지 과거인 줄 알았던 일들이 미래에 벌어지게 될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루이스의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과 동시에, 이야기 안에서의 시간도 탈바꿈하면서 본모습을 드러낸다.

내용과, 구조가 맞닿아 있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야기 안에서의 시간도 바꿔버린 것처럼 만들어냈다.


<루이스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무기는 시간을 연다.>


영화는 클라이막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컨택트의 요체가 있다.



말 그대로 시간을 여는 것을 가능하게한 편집술이 인상적이라는 거다.

시간을 배치하는 기술이 대단하다.

시간을 그렇게 배치하지 않았다면, 영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루이스가 외계인을 만났다가, 거기서 소통에 대한 노력을 했고, 그래서 시간의 동시성을 깨닫게 되었고, 인류를 위기에서 구했고, 남편을 만났고...


사실 면밀하게 따져보면, 정확히 루이스의 꿈으로 등장하는 딸과의 장면은 외계인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면서부터였다. 이 말은, 서두의 딸과의 장면은 단지 편집자가 선택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루이스의 현재와 무관하게. 그런데 편집자의 이러한 선택들이 영화가 하고자하는 이야기와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

마치 정교한 건축을 보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그렇게 편집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창안한 것도 대단하다.

사실 영화에서 외계인과의 소통은 이 독창성을 담는 그릇으로 기능할 뿐,

영화가 소통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거나 하는 부분은 찾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