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예술을 예술의 반열로 올리려면 저렇게 인생이력과, 개인성격, 습관 등이 탁한 사람한테 좌지우지되게 놔두면 안된다고 생각함. 결정적으로 정성일씨는 뭐 맨날 자기가 정치라는 행위 자체에 굉장히 예외적이면서도 참신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식으로 느낀다고 어필하지만, 정치란 것은 무엇보다도 다수지지의 세계라 그런 낭만적 수사로 실행력 빈약을 메꿀 수 있을지가 의문.

그가 사용하는 사고체계, 기호, 언습, 아이덴티티 자체가 모르긴 몰라도 서브컬처의 차원에서 이채를 구가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영화 전반에 관여하는 행위에는 얼토당토 않는 일들인 것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었는데, 지금 영갤이라는 곳을 처음 와보고 씀.
일전에 영화감독이 정평론가를 거꾸로 인터뷰하는 이색적인 사례를 본적이 있는데, 거기서 대개의 외부자들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정평론가의 인상이 있더라. 당시 인터뷰어에게서는 그 많은 책과 정보! 라는 식으로 찬탄의 대상이 되었고, 한국이라는 정치적 권역 안에서 영화라는 문화적 흐름에 동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런 기분이나 인상을 받을 거라 생각. 물론 여기 계신 나도 여러분도 한번쯤은. 그렇지만 뭐든 쓰임새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
몇 일전 시네마테크에서 처음으로 하스미 시게히코의 잡문집을 봤고, 거기 실린 <트리 오브 라이프, 테렌스 멜릭 2012>에 관한 악평을 보자마자 정평론가가 당시 동일 영화에 대해 동일 기조로 썼던 악평이 생각남. 이미지의 죽음 내지 0도 라는 식으로 보드리야르 철학을 인용 전개 했던 거로 기억. 정평론가가 원래 하스미 시게히코라는 사람과 정신적 도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영화에 대해서 한 마디로 고약한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것까지 똑 닮아버리는 모양새는 이 사람, 정신적 독립은 결국 물 건너갔구나 라고 생각이 들게 하더군. (고약한 영화라는 식의 기조는 같고, 맥락은 판이했었음. 요컨대 정성일은 보드리야르나 현대 이미지담론에 기대어 멜릭의 행보는 가짜다!라고 한 것이고 하스미는 문맥 아래에서 '이 자'운 운하며 존 포드의 영광에 무례를 범했다는 식으로..... 별개 이야기지만 하스미의 오즈 분석은 내 익히 알고 있고 존중하나, 애시당초 일본인들이 타 문화에 갖는 감성적 접근이 주관적 오도로 역류하는 사례를 파다하게 겪었기에, 존 포드라는 역사사회적 개인을 마치 자신이 전부 알고 있다 믿으며, 동향의 후대가 재접근하려 드는 시도 자체에 대해서 원천봉쇄를 한다는 느낌을 받음. 여튼 그 잡문집에서 그랬고, 오히려 왜 정성일은 이런 점에 대해 한 가지 반론의지도 가져보지 못한걸까, 라는 생각 또한 들었음.)

각설, 정성일에게 사유의 텃밭이 되어주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약간은 그 자신이 사생활침범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알겠지. 그런데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 양 자체가 대해 거의 질시까지도 아우르는 찬탄의 대상이 되는 상황 자체가 일단은 참 개탄스럽다는게 내 견해고, 좀 더 확장시켜 본다면 정평론가의 사고 자체는 사상에 진실한 자들의 입장에서 굉장히 헛점이 많은 것이라는 생각이 듬. 여기엔 분명 386세대의 독특한 환경작용이 있엏을 것이고.

라캉 보드리야르 데리다 들뢰즈 푸코 68혁명의 알튀세르 사회주의 고다르 (자세하게 부연하는 것은 이들 정도야.)
여하튼 많지 않은 내 정성일-경험의 일람표는 이 쯤인데 누구든지 그 대식가적 기질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겠지. 특히 그의 순정파적, 낭만적 기질, 유사 아웃사이더적 기질 또한 익었을 것.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어. 한 개인에게서 과연 그 정도로 무지막지한 파종이 가능한 것일거며, 또 좋은 영화생산에 도움은 되는 것인지. 나는 두 질문에 모두 회의적이고 정평론가의 행보 자체 또한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듬.

인문학에 관련한 성토는 말도 길어지고 내 자신이 그것을 논리적으로 완성된 일문으로 내놓을 수 있는지 당장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문학과 예술의 연결고리는 다만 그저 차용하는 식의 엇나간 방법론이 아니고, 자기 변호가 충분한 경지에서 합목적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지. 한 명의 비평가가 그냥 수사를 위해, 일필휘지로 휘갈기기 위해, 따분함을 잊기 위해서 가볍게 이용하는 것은 금물이지 않아?

내가 정평론가를 약간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유 중 하나가 뭐였냐면, 그의 심미안 자체가 그분 표현대로 '후졌'기 때문이야. 뭐 이건 솔직히 영화계 내지 시네필 대부분을 처음 접한 순간부터 느낀거긴 한데, 전반적으로 성격들이 괴팍하고 더욱이 그걸 고집하거나 내세우는 걸 많이 본 것 같이. 특히 우스운 것은 그걸 경쟁하듯 쌓아 올리는 거야. 그러면서도 옷이라든가 일상영역에서의 기호는 과할 정도로 반심미적인데, 내 견해로는 그건..... 그냥 고집이 세서 그래.
물론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겠다. 외양에 대한 취미판단과 진정한 예술에의 정진은 다르다고. 그렇지만 여러분, 내부적 정신과 외부세계의 일치단결이야말로 사상세계에서 영원한 고민거리였고, 거기에 확실히 판단중지를 요구하는 어떤 모순과도 같은 구멍이 있는것 아닌가. 여하튼 정평론가의 심미안에서의 패인은 그렇게 내가 경험해 온 일군의 시네필리아적 인간형의 구상과 연결지점이 없지 않아. 그가 매번 구사하는 문화비평적 인식을 이용하자면, 아마도 팔구십년대를 죽 연속하는 문호개방이라는 정책상의 역사운동이 일련의 사태를 어렵지 않게 분석해줄 듯 함.

정평론가가 늘상 혼합시키려 드는 일상의 편린들도 죄다 그가 심취한 서구적 전통에 절실하게 반영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듯하고. 문화원이니 뭐니 하는 안개속 빛줄기같은 존재가 자꾸 그의 수기 속에서 반복되는 것도 확실히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외부에서 온 선 쯤으로 취급하는 사대적 심리가 있고. 여고생이니 서울이니 게이거리니. 어쨌든 그런 식으로 그가 재편해놓은 정성일표 서울이란 자의식 범벅이고, 옆동네 평론가에게 잘 소개하고싶은 어린아이같은 심리가 엿보임. (김기덕같은 무학자가 무상심으로 휘갈긴 영화를 보면 저런 고민거리는 애초에 무의미한 것 아닌가.... 싶구)

여하튼 두서없이 길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그가 하고 인식의 왠만한 것들은 결국 영화의 존재론적 지위에 죄다 불합치한다는 것. 과잉이거나 미달이거나. 즉 영화를 잘, 새롭게 만드는 데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되고 현실적 파악에서도 괴리가 많음. 본래 여기분들도 알겠지만 서브컬쳐(영화의 본래성은 그렇지 않으나 작금의 환경은 그러하므로)라는 것이 목숨줄이 긴 이유는 그 서브라임한 본질이 언어적 결계를 치기 때문에 자체내의 복잡성으로 현실지향적 인식을 차단시키는 인력을 지니는 까닭. 뭐 이건 다들 알겠지만, 워낙 최근엔 서브컬처에 대한 존중심리가 사회적 언더도그마로 강요되는 바람에 그 이데올로기에서 탈주하기가 어렵다. 더욱 그러한 것은 믿고갈 동지가 없다는거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내가 크게 좋아하지 않는 돌란같은 자가 한국에서 나타나 그런 언설의 공치사를 모두 터뜨리는 것을 기대하는 수밖에. 무엇보다도 영화작가들이 정성일같은 권력자들의 정신적 횡포에 놀아날 필요가 없다.

(아 그리고 문체 말인데... 그것도 문체라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논리전개는 볼만하지. 볼멘소리밖에 매양 하니 문제지만. 그리고 어투나 행동거지는 역시 자의식 과잉임. 답답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이색적인 인격은 또 재미있지만, 그게 한국어와 맞는가? 아무튼 좋아하는게 있으면 제 뿌리는 다 꺾어놓고 보는 386들이 그렇듯 정평론가가 갖고 있는 어투는 결국 부조화밖에 못되는 거. 그걸 우스꽝스럽지 않고 고상하거나 정성일이니까! 하는 사람은 좀 병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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