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전임 소장을 죽이고 새로 부임한 야마다 소장이 조선 징용자들을 학살하기 전 날
윤학철(이경영)이 징용자들을 선동하다 박무영(송중기)에게 처단되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마지막 대탈출 시퀀스에서 박무영이 불타고 있는
야마다 소장의 목을 베는 장면이다. 두 장면 모두 행동의 주체가 박무영이며 상대의 목숨을 끊는다는 행위가 동일하지만 내가 그 두 장면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이상하게도 그 두 장면을 전후로 해서 영화의 리얼리티가 소거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퀀스 이후로
전개되는 탈출 준비 과정은 도저히 하룻밤만에 이루어졌다고 보기 힘든 작업이며 두 번째 시퀀스에서 소장이 죽자마자 조선인들이 안전하게
탈출했다는 설정 역시 나는 도저히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여기에는 관객을 설득하겠다는 최소한의 디테일과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관객들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그 위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박무영 - 송중기에게는 무슨 힘이 존재하는 것일까?
영화에서 박무영은 하나의 독립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여러 기호와 개념의 형상화처럼 느껴진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대로 극 중 송중기에게서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의 이미지를 지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로 황정민이 연기한 이강옥은 <국제시장>에서
가족을 위한 바보처럼 헌신한 덕수와 비슷하며 윤학철은 이경영이 출연한 수많은 영화에서의 배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소지섭이 연기한
최칠성 역시 그간 소지섭이 주로 연기해온 껄렁껄렁한 깡패라는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영화 역시 이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작품들을 하나의 플롯에 거의 우겨넣은 결과물처럼 보인다. 돌려말할 것 없이 <군함도>의 서사는 엉망진창으로 서로에게 할당된
서사는 결말까지 하나로 합쳐지지 않은 채 각개전투를 수행하다가 방치된다. 이는 의도되었다기보다는 초기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캐릭터들마다
할당된 역할(예를 들면 최칠성과 오말년의 비극적 로맨스. 딸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강옥)의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심하게 말하자면 저 많은 캐릭터들 중 한 명의 서사만 취사선택해서 영화를 만들었어도 아무 문제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중에서 박무영만큼은 유독 튀어보인다. 이는 캐릭터가 입체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인공미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주체다. 그는 윤학철의 본모습을 대중들에게 폭로하는 고발자이자 탈출을 지휘하는 선지자이며
전투에선 앞장서서 적을 처치하는 군인이다. 굳이 송중기의 빛나는 외모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는 여타 조선인들과는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이 비유적인 표현은 영화의 구성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송중기의 서사가 주체이고 다른 이들의 서사는 (비중이 많이 할애된 이강옥의
서사마저) 잉여처럼 보일 정도이다. 물론 이런 구성은 영화의 플롯과 정서의 수행을 따로 분리한 뒤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캐릭터들의 인간적
정서를 관객들에게 떠먹여주는 식으로 설명하는 (과거의 사연과 애정관계), 근래 한국 상업영화들이 선호하는 착각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리고 박무영은 이 개념의 형상화에 가깝다.
에둘러 말할 것 없다. 박무영의 서사는 리얼리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극중에서 그는 태생부터 신비로운 존재이다. 광산 폭발 시퀀스에서
그가 뜬금없이 인부들 사이에서 자리하고 있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전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그가 군함도에 어떻게
잠입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과정과 디테일을 영화는 설명하지 않고 주변 인물들도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영웅적 행위에 대해서만 주목한다. 구체적인 묘사와 디테일의 실종. 이는 다른 서사, 특히 최칠성이 말년의 방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
말년이 그녀의 과거를 회상할 때 감정과 리얼리티를 전달하기 위해 과격한 플래시백을 남발하는 걸 떠올려 보면 (심지어 누군가가
고문 받는 장면을 플래시백으로 전달하는 폭거에 가까운 선택은) 이는 매우 상반된 태도처럼 보인다. 그럼으로서 박무영은 다른 존재들과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된다. 그에겐 플래시백을 할당할 만한 과거도 없으며 (탄생부터 그러했으므로) 인간적인 면모를 부여할 관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극에서 박무영은 최칠성과 거의 마주하지 않는다. 가장 폭력적이고 인간적인 인물과의 절대적 단절)
박무영에게 리얼리티와 개연성은 허락되지 않는다. 영화가 견디기 힘들어지는 순간은 박무영의 서사에 당위성과 개연성을
부여할 때이다. 약속장소에서 윤학철과 대치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대체 윤학철의 똘마니는 그 장소를 어떻게 알고 쫓아온 것일까.
촛불 시퀀스에서 윤학철의 만행을 폭로하는 박무영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인부들의 증언이 플래시백으로 제시되는 순간의 촌스러움과
억지스러움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최소한 영화를 평가하는 입장이라면 이 장면에서 대중이 거짓된 절대자에게 반항한다는 의미보다는
개연성을 위한 플래시백과 캐릭터의 촌스러운 활용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 놀라운 것은 증언들이 쏟아지자 박무영은 당위성을 정당하게
얻었다는 듯 윤학철을 단칼에 처단한다는 점이다. 대중의 신뢰를 얻자마자 그는 단 번에 상대를 처단하는 심판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 장면이 노골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이미지가 박근혜 탄핵 촛불 시위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나 의아한 선택이었다.
그럼으로서 박무영은 자연스럽게 지휘자의 자리에 올라선다. 촛불 시퀀스 이후에 전개되는 모든 플롯은 전적으로 박무영의 영역 안에
존재하게 되고 영화 역시 더 이상 절제 따윈 하지 않겠다는 듯 마음껏 날뛴다. 대탈출 시퀀스가 전쟁영화처럼 연출된 것을 보라.
여기에는 최소한의 통제와 리얼리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인이 400명 남짓했다는 설정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엔리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석양의 건맨>의 'The Ecstacy of Gold'을 과감하게 차용하고 (사람들이 마구 죽어가는 시퀀스에서 이런 음악을
썼다는 선택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전투는 전쟁영화를 방불케하고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개전투를 벌이며 어떤 꼬마는
우리가 무얼 잘못했냐는 외침을 스크린 바깥으로 내뱉는다. 탈출 시퀀스의 소란스러움은 역설적으로 영화의 빈곤함을 그대로 노출한다.
이 지점까지 오면 이전까지 전개했던 서사와 캐릭터들은 모두 효용을 잃는다. 영화가 각각의 서사에 리얼리티와 당위성과 감정을 '떠먹여주기'위해
악다구니를 써온 과정을 생각하면 신기하다. 최칠성과 말년은 끝까지 자신들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다가 퇴장한다. 이강옥은 끝내 딸을 구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자신 역시 퇴장한다. 영화 중간에 강옥의 딸이 일본 간부에게 입양될지도 모른다는 플롯은 어느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윤학철은 박무영에게 처단 당했다. 영화 초반에 비중 있게 보여주던 경성대학 엘리트도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다. 남은 건 일본 소장의 목을 벤
칼을 든 박무영 뿐이다. <군함도>는 박무영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영화의 서사적 얼개를 위해 봉사한 정서와 감정의 플롯이
효용을 다하자 가차없이 버려지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영화는 위선적이게도 결말에서 이강옥의 딸의 얼굴을 정면으로 전시한다. 스크린 바깥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우리의 죄책감과 역사적 부채감을
건드린다. 하지만 영화가 거기까지 달려온 과정과 소모값을 생각한다면 박무영의 얼굴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박무영은 <변호인>의
송변과 <광해>의 광해와 <명량>의 이순신과 달리 온전한 픽션의 산물이고 원형이 존재하지 않는 그 역시 마지막에는 사라진다. 만약 영화가
사악한 무리의 폭거와 수탈에 견디다 못 한 민중의 저항과 탈출의 텍스트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걸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질문을 던져보자.
윤학철은 과연 민중의 이름으로 처단된 것일까? 박무영의 초월자적 위치를 두고 감정과 정서적 플롯의 봉사를 받는 서사 플롯의 형상화라고 비유했지만
그는 극중에서도 실제로 초월자로, 심판자로 존재한다. <군함도>는 <변호인>과 <광해>와 <명량>에서 그리 멀지 않다. 초월적 영웅에 의한 구원담.
사악한 무리에게서 고통받는 민중을 구원해 줄 정의의 대변자이자 구원자.
만약 <군함도>가 관객들에 의해 영웅에 의한 구원담의 또 다른 돌림노래 혹은 트랜드가 낳은 또 다른 지루한 정치사극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실제로 관객들이 이러한 구원서사의 포화의 임계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의미일수도 있고 박근혜가 대통령 자리에서 탄핵된 이후의
세태가 반영된 것일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든 박무영은 다른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0개가 넘는 스크린.
서사적 얼개만 그럴듯하게 포장된다면 빈곤한 영화적 구성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 관객들(과 평론가들). 박무영을 초월자로 만든 건
그가 휘두른 두 번의 칼질이 아닌, 저 이면들이다.
미안한데 이렇게쓰면 영갤애들 못알아들음
지적한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엑스터시 오브 골드야.
군함도 안봤지만 장문영화글 개추
구남도는 이렇게 길게 깔만한 가치도 없는고가틈데
121.144.*.* / 지적 감사. 수정함
에둘러 말할 것 없다추ㅋㅋㅋㅋㅋ 재밌네
이거 개념글 안간 게 의아했음
허접한글 써놓고 딴엔 어지간히 아까웟나보네 ㅋㅋ 추하다 훈아
잘읽었당. 공감함~
군함도 캐스팅은 태양의 후예 전에 됬을껄? - dc App
묻히면 묻힌대로 지나가지좀 개념글 올때까지 재업할거임? ㅉ
디씨에 글 싸질러놓고 진짜 어지간히 아까웠나보네
글쓴거랑은 별개로 진짜 존나 추하네. 뭍히면 관심 없어서 뭍힌거 관심 받아보겠다고 그걸 다시 올리네
왜 그렇게 관심이 필요하니 친구없니?
영갤애들이 '영잘알'의 가면을 쓰는 이유는 현실 세계에선 보잘것 없고 찐따이지만 인터넷 세상에서만은 영화를 이용해 보잘것없는 자신이 특별해 질수 있기때문이다. 바로 좆문가라고 불리는것이 그들이다.
영화글 써도 지랄을 하네ㅋㅋㅋㅋㅋ
존니 기네
네 좋은 글이구요 안읽었습니다^^
오 잘읽었다
뒤로갈수록 필력의 힘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수준높게 잘 쓴 글이다.
이딴걸 글이라고 쓰냐 군함도 보다 못한 필력이다 접어라
뭐 이딴 병신글을 재업까지 하냐 어지간히 할짓 없나 보네
그냥 덩게르크나 봐 짜샤
애니프사입니까? - dc App
폭풍공감
재업 운운은 알바냐?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