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목요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60여분 상영에 맞춰 서울시향+국립합창단이 연주해주는 자리가 있어서 갔었음. 1층 C석 중앙에서 약간 뒤쪽 라인을 예매해서 조금 기대가 컸기도 했지. 나처럼 천한 영알못이 누를 끼칠 수 없기 때문에 영화 자체를 지금 논하기는 조금 그렇고.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라 라 랜드>를 비롯하여 [영화 상영 + 라이브 콘서트] 형식이 눈에 띄길래, 나처럼 궁금한 영갤러들이 있을까 싶어 짧은 글을 써보려고 함. 내겐 영화-오케스트라 협연 형식으로 처음 감상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 작품은 예전에 두어 차례 PC 모니터로만 봤던 데다가, 마침 앉게 된 좌석이 나름대로 괜찮아서 상당히 궁금했음.
-- 영화 중반까지 약간의 이야기가 포함 --
1. 시작 시간이 되었고, 콘서트홀 내부가 순간 고요해지면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흘러나오길 모두들 기다렸지. 모든 구역이 소등되는 것부터 신선한 경험이었음. 리게티의 아방가르드풍 <아트모스페어>가 2분 정도 날카롭게 흘러 나오고,
리게티 죄르지의 <아트모스페어>
모두들 들었을 법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음 파트 연주가 뒤를 이었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스크린에서는 지구로 추정되는 행성/밝은 달/붉은 태양이 차례로 서서히 떠올랐음. 본래는 빠밤~ 하는 사운드와 타이틀 로고들의 등장이 순차적으로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데, 미세한 싱크 미스매치가 조금 짜증이 났었음. 물론 사람이 행하는 콘서트라 영화 편집할 때처럼 정확한 일치를 요구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러다 보니 굳이 이러한 형식으로 영상에 맞춰 영화음악을 따로 들려주는 공연의 가치에 대해 조금 의구심이 들긴 했다.
2. 스크린에선 유인원이 모이기 시작하고, 인간처럼 싸우기 시작한다. 그저 깜깜해서 존재조차도 몰랐던 합창석(무대 위쪽 양측)에서 전등이 한둘씩 켜지고 사람들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국립합창단 단원임을 알았지만. 스크린에선 검은 돌기둥 모놀리스가 등장한다. 이 모놀리스는 스크린으로 보니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으로 보였고, 그 시공간에 놓여있는 전부를 무화시키는 절대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평면에서의 곡률은 0, 모서리의 곡률도 0, 어디 하나 흠이 전혀 없다. 저걸 만들어 내라고 여기저기에 소리 질렀을 법한 큐브릭의 광기가 너무나도 무서워졌다. 곧 이어지는 국립합창단의 <키리에> 합창.
리게티 죄르지의 <키리에>
3. 영화를 본 이들은 유인원 무리가 등장하는 초반 시퀀스 기억이 있을 것임. 이 영화의 백미라 생각되는데 하늘 위로 올라간 뼈다귀가 우주를 가로지르는 우주선으로 전환되는 씬. 바로 그 앞부분에서 유인원이 뼈를 쥐고 바닥에 내리쳐 산산조각을 내고 그 파편이 날아가는 모습을 슬로모션 + 빠른 편집으로 보여주는데, 이 부분도 역시 음악과의 싱크가 어긋나게 들려 다시 한 번 화가 났었음. 내가 결국에 영갤로 인해 프로불편러 병에 걸렸나 서러워지기도 했고, 한편으론 큐브릭이 살아서 이 공연을 보고 있다면 몹시 화를 냈을 거라는 망상에 잠겨 잠시 동안 즐거워지기도 했다..
4. 중반쯤 우주 공간 속을 등속도로 유유히 가로지르는 비행선의 모습이나 도킹하는 장면이 나온다. 앞의 유인원들이 모놀리스를 발견하는 씬과 조응하듯이 약 400만년 후, 인간이 달(?)에 착륙하여 모놀리스를 발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씬에서 리게티의 <룩스 에테르나>가 시작된다. 아래 영상에서도 어느 정도로 느낄 수 있지만, 이 합창만큼은 정말 실제로 들어야 한다!! 여러 성부가 섬세하게 쪼개져 울리고, 콘서트홀 벽면을 타고 공명이 되어 일부는 합쳐지는데, 매끈한 모놀리스 이미지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가히 압도적이라 말할 수 있다.
리게티 죄르지의 <룩스 에테르나; 영원한 빛; Lux Aeterna> : 시간이 없다면 이 한 곡만은 추천한다.
5. 중후반에 HAL9000과의 대화를 마치고 형형색색의 우주 공간을 활공하는 일종의 시점숏이 등장함과 동시에 리게티의 <레퀴엠>이 연주된다. 이 부분도 CG 이 작품의 영상-음악에서 황홀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리게티 죄르지의 <레퀴엠> (스톡홀름 공연 실황)
큰 스크린 영상과 더불어 서울시향의 연주도 뛰어났지만, 국립합창단이 리게티 음악을 합창할 때마다 매번 압도 당했다. 완전히 흠결 없는 공연이었다고 하기엔 조금 힘들겠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이렇게 상영해주는 콘서트가 있다면 돈과 시간을 내어 가보라고 꼭 추천하고 싶음. 68년 미국에서 처음 개봉할 당시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졌던 충격에 대해 수차례 생각했었는데, 난 이 콘서트로 조금은 그 궁금증이 해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럼 이만 즐거운 주말 맞이하길..
이른 시간에 올리는 바람에 이 콘서트에 관심있어 했던 영갤러가 볼 수 있나 싶군ㅠ.. 알아서 보겠지
예매해놓고 아쉽게도 못 갔는데 글로 볼 수 있어서 좋네요 감사 개추!
이야 ㅠㅠ
념글로
상세한 후기 잘봤어
뭔 씽크 안 맞는다는 얘기를 이리 길게 써놨노? 시간 아깝구로
내가 개념글보냈다
산책하고 왔더니 이런 다양한 반응들이 있다니! 한두줄로 끄적거렸는데 부끄럽구만.. 별로 관심 없을 줄 알았던 글이었는데. 아무튼 큐브릭의 영화음악 선택은 정말로 탁월했다고 생각해. (본래 큐브릭은 Alex North라는 작곡가에게 리게티의 음악을 들려주며 오프닝 곡을 부탁하였는데, 정작 큐브릭 본인 마음에 들지 않아 막판에 알리지도 않은 채로 슈트라우스 곡으로 교체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전에『스탠리 큐브릭: 장르의 재발견』인터뷰 책에서 읽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큐브릭 감독의 의도는 전통적 언어에서 벗어나 시각적/음악적 요소가 결합된 비언어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지. 아무 온도도 감지되지 않는 모놀리스의 비주얼, 무한히 펼쳐진 우주 공간 속에서 물질들이 얼어붙어 정지된 듯한 리게티의 진공 사운드로부터 이를 완벽히 성취했다고 생각함..
124.63에게는 무척 미안하군. 맨 아래에 요약이 있었다만.. 글쓸 때 사진과 링크를 마구 첨부하다 보니 제목/내용 미스매치를 비롯해서 글의 비루한 구성 탓에 영갤러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았구만ㅠ
정성글은 개추야!!
졸문을 읽어줘서 무척 고맙고, 다음 기회가 온다면 다들 모쪼록 감상할 수 있기를..
초간단 후기....? - dc App
정성글엔 개추
훌륭
얼마짜리 좌석에서 본거임?
솔직히 자는새끼 몇명있냐
초간단 어 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