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LLCUT



영화 퍼스널 쇼퍼는 내내 긴장감이 가득하다. 한치 앞을 모르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손에 땀을 쥐게 되지만 그 끝에 다다르면 결국 마른 손에는 수 많은 질문들만이 남아있다. 퍼스널 쇼퍼는 서로 대립되는 양극이 내내 다툴 뿐 어느 한쪽이 우세를 점하거나, 정해놓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물음들은 결국 영화 마지막 모린의 시선이 닿는 우리에게로 향한다.


퍼스널 쇼퍼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는 핸드폰과 영매이다. 한쪽은 논리의 세계를 대표하는 디지털 기술의 산물이자 현대 사회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중심축인 반면 한쪽은 비논리의 세계를 대표하는 추상적인 관념의 산물이자 과거에 가장 신뢰 받고 의존되던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그럼에도 핸드폰과 영매라는 개념 둘 모두 특정 대상과 대상을 이어주는 소통의 매개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바로 이 교집합과 여집합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 영화 퍼스널 쇼퍼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주인공 모린은 (아마도 스마트폰의 아이콘이라는 그 자체의 상징성 때문에 선정되었을 아이폰의) 문자 메세지와 유튜브, 스카이프 영상통화 등의 디지털 기술을 통해서 타인과 소통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과거 세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으며, 스스로를 영매라고 칭한다. 영화 내내 그녀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러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만 대답을 받지 못하거나, 정작 그 대상이 누구인지도 확신하지 못하거나, 그녀의 말은 묵살당하고 상대방의 일방향적인 의견만이 제시될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걸고 질문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녀가 결정을 내리는 주체이기 보다는 대답을 기다리는 대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물건을 살펴보고 구입하는 퍼스널 쇼퍼이다. 타인을 위해 타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찾아다니는 그녀는 쉽게 말해 대리인이다. 그녀의 고용자인 키라가 화보 촬영에 늦자, 촬영 스텝은 그녀에게 키라를 대신해 촬영 준비를 도와줄 것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녀는 직업인으로서 키라의 업무를 대행할 뿐 아니라, 키라의 존재를 갈망한다. 키라가 입는 옷들과 키라의 화려함을 욕망한다. 결국 그녀는 금기를 깨고 키라의 옷을 입은채 키라의 사진 밑 키라의 침대에서 자위를 한다. 그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키라를 떠올렸을까. 아니면 키라와 함께 그 침대에서 밤을 보냈을 남자들을 떠올렸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키라의 자리에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것일까.

한편 모린은 영매이기도 하다. 그녀는 죽은 자들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으며, 얼마 전 죽은 자신의 쌍둥이인 루이스로부터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루이스가 생전에 살던 집에서 밤을 지새며 그로부터의 신호를 기다리지만, 나타나는 현상들은 정말로 영혼이 보내오는 것인지, 그 영혼이 루이스가 맞는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어느날 갑자기 그녀에게 도착한 발신자 불명의 문자메세지는 그녀의 질문에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 채 의미 모를 말들만을 이어갈 뿐이다. 그녀는 그 문자메세지를 피하기도 기다리기도 하면서 정체불명의 대상과 연락을 이어간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메세지는 모린에게 그녀를 속박하던 금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라고 부추긴다. 

보이지 않는 영혼과의 교감, 차있는 말들이 아니라 비어있는 기다림과 가벼운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자 메세지라는 영화의 중심 소재는 우리에게 소통이라는 일상적인 행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이끌리고, 때로는 확실한 문장보다 희미한 단어들과 그 단어들을 이루는 공백과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의미를 찾는 모습은 오늘 날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린은 어쩌면 키라의 대체자일 뿐 아니라 우리 현대인들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대립되는 두 세계 속에서 모린은 방황한다. 영화 내내 그녀는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움직여야 한다. 루이스의 집에서 자신의 집으로. 자신의 집에서 키라의 집으로, 다시 루이스의 집으로, 다시 키라의 집으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그녀는 계속 움직이고 두 세계는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힌다. 세상은 그녀에게 계속해서 말을 걸고, 유혹하고,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모린은 그곳에서 벗아나기로 결심한다.

모린은 자신을 괴롭히던 두 세계를 모두 뒤로하고 스카이프 영상통화 속에서 언제든 자신에게 오라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떠난다. 그러나 그 곳에서 모린을 기다리던건 그녀의 남자친구가 아니라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그녀가 묻는다. "너는 루이스야?" 쿵. 쿵 한번이면 "예", 쿵쿵 두번이면 "아니오". 사실 상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우리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들린다. "너는 안식을 찾았어?" 쿵. "너는 안식을 찾지 못했어?" 쿵. 어쩌면 상대가 모린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일 수 있고, 아무 의미 없는 소리에 의미를 부여한 우리의 잘못일지도 모른다. "지금 날 가지고 장난치는거야?" 쿵쿵.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여전히 아무 의미 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혹시 너는 그저 나야?" 그리고 다시 한번 쿵. 어쩌면 이 대답도 이전의 모호한 대답들과 마찬가지로 별 의미 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세계에서는 정답이라고 믿는 것이 정답이 된다. 마지막 질문을 선택했고, 그녀는 그것을 믿기로 결정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정답이 되는 순간이다. 겨우 끝에 이르고 나면 답인지도 알 수 없는 빈약한 짐작들 뿐이지만, 모린은 정답을 정했고, 관객인 우리 각자도 이제 자기 나름의 정답을 정해야한다. 영화는 곧 끝나기에. 적어도 나에게 이 이야기는 수 많은 질문 끝에 결국 정답을 정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는, 대리인에서 주체가 되는 한 인간의 여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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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사회를 잊어가는 공군 상병입니다.

군대에서 영화 리뷰 100편이 목표였는데 군생활 9개월 남은 지금 4번째 리뷰를 겨우 썼네요

이것도 많이 다듬어야겠다 싶기는 한데

그냥 영갤에 올려서 피드백 받은 다음 다듬으려고 바로 올려봅니당


불쌍한 군인에게 많은 피드백을 부탁드립니다...


피드백 줄 때까지 계속 올릴거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