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리뷰 보거나 다른 사람 의견 안듣고 그냥 영화 보고 바로 쓴 글이라 다른 사람 의견하고 겹칠 수 있음.
스포일러 있음.
장문은 존댓말로 쓰는게 습관되서 존댓말임
-
‘시뮬라시옹’ 이란 단어가 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된 현대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고안한 철학 개념인데, 쉽게 말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걸 말해요.
여기서 그 철학개념에 대해 지루하게 말하진 않을게요. 이 얘길 꺼낸 이유는 그렇게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게 될 정도로 지금이 가상과 실제에 대한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거죠. 어려운 거 말고 일상적인 예시를 들어볼게요.
라벤더 향 아시죠? 섬유유연제나 방향제 향기로 많이 쓰이는 라벤더향. 그런데 실제 라벤더 꽃을 보고 그 꽃을 들어 향기를 맡아 본 일은 얼마나 많아요? 모르긴 몰라도 직접 기르거나 관련된 직종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화학적으로 만든 가상의 라벤더 향을 맡아 본 일이 더 많을 거예요. 그리고 실제의 라벤더보다 섬유유연제나 방향제에 쓰인 라벤더를 ‘라벤더’라고 인식하죠.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레플리칸트를 만든 회사인 타이렐의 모토에요. 그리고 실제로도 두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면 레플리칸트들이 더 인간적이죠. 살고 싶어하고, 자유롭고 싶어 하며, 사랑을 받길 원해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죠.
이 인간보다 인간적인 모습은 레플리칸트 뿐만 아니라 2049에서 홀로그램 연인인 조이에게도 그대로 이어져요. 레플리칸트들은 그나마 복제인간이고, 실재하는 생명체인데 조이는 심지어 그렇지도 않아요. 거리에서 나체의 홀로그램으로 ‘저를 사세요.’하는 상품이에요. 그런데도 자신이 사라질 위기를 자처하고, 실제로도 사라질 때 주인공인 K에게 감정을 전하죠.
거대한 광고 홀로그램이 K에게 이전의 조이가 그랬듯이 '조'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K는 자신의 존재가 가짜이며 아무것도 아님을 다시금 확인해요.
그리고 결심하죠. 무엇에서부터 왔는가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K가 조이가 처음 비를 느낄 때처럼 손을 내밀어 눈을 느낄 때. 우린 K가 레플리칸트의 자식이 아닌 걸 알아요. 그리고 그가 느끼는 눈이 진짜라는 걸 알죠. 그리고 데커드가 자신의 자식을 만날 때, 그녀는 홀로그램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눈을 보며 ‘아름답죠?’라고 말해요. 가짜가 실제를 경험하고, 실제가 가짜를 경험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은 큰 아이러니를 느끼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요. ‘진짜가 뭐지? 진짜가 그렇게 중요한가?’
즉 1984년 블레이드 러너가 무엇이 인간인가를 물어봤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심지어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전작의 ‘데커드도 레플리칸트일까?’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다시 질문을 던져요. ‘그는 인조인간이야. 그렇다고 그가 느끼는 것들, 그가 경험한 것들도 가짜야?’
당신 곁에 있는 라벤더향이 가짜라고 해서, 당신이 그 향기를 좋아하는 것도 가짜일까요? 그 향기를 느끼는 것도 가짜일까요?
만약 가짜에서 파생 된 즐거움이 ‘가짜’라면. 가짜에서 파생 된 죄책감도 똑같이 느낄 필요 없는 감정이에요. 레이더나 드론을 조종해서 보이는 화상으로 사람을 쏴죽이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나요? 어차피 가상의 화면에서 보이는 ‘정보’들을 ‘처리’하고 있을 뿐이잖아요. 가상의 기쁨이 가짜면 가상의 죄책감도 느낄 필요 없죠. 말하자면, 뭐가 진짜이고 뭐가 가짜인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건 뭘 느끼고 뭘 하느냐 이죠.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느끼고 행동하고 또한 바라고 있는 게 중요한 거죠.
왜냐면 지금은 그런 게 구분되지 않는 시대까지 왔으니까요. 이건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에요.
1984년 블레이드 러너에서 상정한 2019년의 미래처럼. 아주 가까운 현실이에요.
그래서 전 재밌게 봤어요. 블레이드러너 2049를.
좋아용
개추
감사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믿음
ㅈㄲ세여
진짜 좋은리뷰 감사합니다 솔직히 념글에 구작보다 철학이 부족하다는 의미를 잘 모르겠음 - dc App
좋다 이런 해석 보니까 마지막의 씬이 훨씬 의미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
의미있어보일려고 첫절부터 전혀 연관성없는 철학개념 인용부터 스노브의 향기가 퐉 났는데 아니나다를까; 불분명한 주어 설정, 미완성으로 끝나는 술어들의 나열같은게 듀나냄새에 쩌들어있네
전형적인 듀나식 화법 허세충들의 지적허영심 과시용 똥망리뷰
ㄴ듀나식이긴 한대 온화 해서 좋은걸
ㄴ뭐랄까 냉정을 잃지 않는 겸손한 듀냐?
라벤더 비유는 좀 쩔었다
듀나느낌 나는데 솔직히 듀나식 평론이 역겨운게 ~요로 끝나는 문체부터 - 지 딴엔 부드럽고 격식 없이 전달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후술할 스노비즘과 엮여서 - 가르치려는 느낌이 강하고 특히 난 이걸 알고 있지만 넌 알 필요 없으니 그냥 넘어갈께 따위의 스노비즘으로 점철되어 있음 역설적이지만 화자가 냉정할수록 내용은 더 잘 전달되니 건조한 문체를 추천
그리고 본편이나 리뷰의 내용은 시뮬라시옹보다는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음 라벤더 향(레플리칸트)이 라벤더(인간)를 시뮬라르크 한 것이라면 진짜 라벤더를 접했을 때 라벤더는 이렇지 않다며 진짜 라벤더를 부정해야 시뮬라시옹이 성립하는데(모작이 원본을 압도) 영화의 레플리칸트는 모작, 가짜로서 취급되고 있음
즉, 이건 시뮬라시옹이 아니라 리뷰의 후반에 필자도 서술 했듯이 지금 내 앞에 있는 무언가에서 보고 느껴지는 것들이 라벤더와 똑같다면 그것의 본질이 무엇이던간에(조화든 홀로그램이든) 그것은 진짜 라벤더와 다를게 없지 않은가 라는 실존주의적 물음임
시뮬라시옹은 장자의 나비의 꿈처럼 허상과 실제에 관한 물음이고 이게 블레이드 러너 2049에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핵심주제는 실존과 본질에 대한 물음인 것
그렇군... 의견 감사함. 그쪽으로 다시 생각해보겠음
글 잘 읽음
리뷰 정말 잘봤습니다. 저역시도 "나는 누구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하는가"라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235께서 말씀하신대로 시뮬라크르 개념보다는 실존주의적 접근이 점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블레이드 러너 1편이 시뮬라크르적인 사유가 강해서 많은 분들이 2편에도 동일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 같네요...
내용은 나쁘지않은데 듀나식 어법좀 버려라 역겨우니까
이 이야기를 한장면으로 요약하자면 개를보고 질문을던진 장면으로 요약할수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