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리뷰 보거나 다른 사람 의견 안듣고 그냥 영화 보고 바로 쓴 글이라 다른 사람 의견하고 겹칠 수 있음.

스포일러 있음.

장문은 존댓말로 쓰는게 습관되서 존댓말임


-




viewimage.php?id=20b2c62fe080&no=29bcc427bd8177a16fb3dab004c86b6f9d6f040c009803c916b33b4d1a63e32005e2967b9a12b969a00a0f87e8383994735dea40d3bae62c


‘시뮬라시옹’ 이란 단어가 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된 현대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고안한 철학 개념인데, 쉽게 말해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걸 말해요.
 
여기서 그 철학개념에 대해 지루하게 말하진 않을게요. 이 얘길 꺼낸 이유는 그렇게 철학적 사고가 필요하게 될 정도로 지금이 가상과 실제에 대한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는 거죠. 어려운 거 말고 일상적인 예시를 들어볼게요.
 



라벤더 향 아시죠? 섬유유연제나 방향제 향기로 많이 쓰이는 라벤더향. 그런데 실제 라벤더 꽃을 보고 그 꽃을 들어 향기를 맡아 본 일은 얼마나 많아요? 모르긴 몰라도 직접 기르거나 관련된 직종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화학적으로 만든 가상의 라벤더 향을 맡아 본 일이 더 많을 거예요. 그리고 실제의 라벤더보다 섬유유연제나 방향제에 쓰인 라벤더를 ‘라벤더’라고 인식하죠.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레플리칸트를 만든 회사인 타이렐의 모토에요. 그리고 실제로도 두 영화 (블레이드 러너,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면 레플리칸트들이 더 인간적이죠. 살고 싶어하고, 자유롭고 싶어 하며, 사랑을 받길 원해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죠.
 


viewimage.php?id=20b2c62fe080&no=29bcc427bd8177a16fb3dab004c86b6f9d6f040c009803c916b33b4d1a63e32005e2967b9a12b969a00a0f87ed306895e91985c023301f90


이 인간보다 인간적인 모습은 레플리칸트 뿐만 아니라 2049에서 홀로그램 연인인 조이에게도 그대로 이어져요. 레플리칸트들은 그나마 복제인간이고, 실재하는 생명체인데 조이는 심지어 그렇지도 않아요. 거리에서 나체의 홀로그램으로 ‘저를 사세요.’하는 상품이에요. 그런데도 자신이 사라질 위기를 자처하고, 실제로도 사라질 때 주인공인 K에게 감정을 전하죠. 


거대한 광고 홀로그램이 K에게 이전의 조이가 그랬듯이 '조'라는 이름을 붙여주자 K는 자신의 존재가 가짜이며 아무것도 아님을 다시금 확인해요.

그리고 결심하죠. 무엇에서부터 왔는가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K가 조이가 처음 비를 느낄 때처럼 손을 내밀어 눈을 느낄 때. 우린 K가 레플리칸트의 자식이 아닌 걸 알아요. 그리고 그가 느끼는 눈이 진짜라는 걸 알죠. 그리고 데커드가 자신의 자식을 만날 때, 그녀는 홀로그램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눈을 보며 ‘아름답죠?’라고 말해요. 가짜가 실제를 경험하고, 실제가 가짜를 경험하는 이 장면에서 관객은 큰 아이러니를 느끼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요. ‘진짜가 뭐지? 진짜가 그렇게 중요한가?’
 
즉 1984년 블레이드 러너가 무엇이 인간인가를 물어봤다면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심지어 거기서 더 나아가서 전작의 ‘데커드도 레플리칸트일까?’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다시 질문을 던져요. ‘그는 인조인간이야. 그렇다고 그가 느끼는 것들, 그가 경험한 것들도 가짜야?’
 
당신 곁에 있는 라벤더향이 가짜라고 해서, 당신이 그 향기를 좋아하는 것도 가짜일까요? 그 향기를 느끼는 것도 가짜일까요?
 



만약 가짜에서 파생 된 즐거움이 ‘가짜’라면. 가짜에서 파생 된 죄책감도 똑같이 느낄 필요 없는 감정이에요. 레이더나 드론을 조종해서 보이는 화상으로 사람을 쏴죽이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 없나요? 어차피 가상의 화면에서 보이는 ‘정보’들을 ‘처리’하고 있을 뿐이잖아요. 가상의 기쁨이 가짜면 가상의 죄책감도 느낄 필요 없죠. 말하자면, 뭐가 진짜이고 뭐가 가짜인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건 뭘 느끼고 뭘 하느냐 이죠.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느끼고 행동하고 또한 바라고 있는 게 중요한 거죠.
 
왜냐면 지금은 그런 게 구분되지 않는 시대까지 왔으니까요. 이건 먼 미래의 일이 아니에요.
1984년 블레이드 러너에서 상정한 2019년의 미래처럼. 아주 가까운 현실이에요.
 


viewimage.php?id=20b2c62fe080&no=29bcc427bd8177a16fb3dab004c86b6f9d6f040c009803c916b33b4d1a63e32005e2967b9a12b969a00a0f87ee3a6dc99529f5093e406a0b


그래서 전 재밌게 봤어요. 블레이드러너 2049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