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실제의 '나'와 잘 만들어진 '나' 사이에서 갈등한다.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카톡 프로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셀카를 찍자마자 프로필에 내걸지 않는다. 각종 필터와 이모티콘으로 너무 티나지 않으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나의 모습'을 만들어야 한다. 왜?나 스스로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이런 만들어진 '나'를 내 몸에 두르고 현실을 감추고자 하는 심리가 자꾸만 커진다.


 파이트클럽의 노튼은 무기력한 일상을 가구쇼핑으로 채워나간다. 결핍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에 나가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과 '거짓눈물'을 흘리면서 하루를 연명해간다. 그 순간 '타일러(브래드 피트)'가 등장해 노튼의 일상을 폭파시킴으로써, 노튼은 진정한 카타르시스를 맞이한다. 거대한 기업의 물질적 노예가 되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돈 따위로 낭비하던 노튼을 비웃으며, 타일러는 그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끌어낸다. 해가 진 밤에 되려 넘치는 생명력을 느끼며, 적당한 폭력을 즐기기 시작한다.

 영화속의 브래드 피트와 노튼 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빛과 어둠을 대조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사회의 병리속에서 허덕이며 각종 스트레스를 상징하는 노튼과 밤이 되어 자유와 욕망을 분출하는 활기넘치는 피트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타일러는 음식에 오줌이나 침을 쏘면서 카타르시스를 보여준다. 그는 노튼에게 계속해서 의미없는 삶에 대한 집착을 비판하며, '죽음' 직전에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음을 가르친다. 

놀라운 반전이란, 피트는 노튼이 만들어낸, '잘 만들어진 나'일 뿐이였다는 것이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갖가지 욕망을 맘껏 쏟아내고 싶은 마음을 '이상적인 나'를 통해 해소한다. 이 부분이 '파이트클럽'이 아직까지 많은 사람이 걸작으로 칭찬하는 이유다. 물론 두 배우의 연기나 반전, 핀처의 카메라 연출도 매우 좋지만, 초라한 노튼이 매력적인 피트를 만들어내는 것, 파이트 클럽에서 여태 불가능 했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연출이 시원하면서 왠지 모를 공감을 자아낸다. 


물론, 결말처럼 만들어낸 나는 '내'가 될 수 없다. 거짓일 뿐이고 게다가 잘못된 이상일 뿐이다. 주인공이 마침내 거짓과 지나친 이상인 '타일러'들을 폭파시키는 마지막 장면은 참 깔끔한 마무리다.
* 괜찮게썻냐?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