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셰이프 오브 워터 보고 왔는데

이거 진짜 너무 완벽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작품상 못받으면 델 토로가 감독상이라도 받아야 한다.

각본상 안주면 아카데미가 미친거고.


이 영화의 강점은 60년대 할리우드를 레트로한 것, 아름다운 영상미, 그리고 샐리 호킨스의 연기에만 있는게 아님.

이 영화의 서사는 50년이 지나도 추앙받아야 할만큼 뛰어남.

이 영화는 시민 케인을 넘어서고 문학적 가치는 위대한 개츠비 그 이상임.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관객이나 평론가들이 영화의 진가를 모르는게 너무 안타까움.

물론 그 부분까지도 이 영화의 위대함에 포함되는 거지만.



모두 영화의 골격을 다음과 같이 말하잖아.

벙어리 여주인공이 괴물을 사랑의 힘으로 해방시키고 둘이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

벙어리와 어류 간의 진정한 사랑.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는건 그게 아님.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인생에 관한 영화다.


다른거보다 인물 해석이 진짜 다 개판임.

일라이자는 농아라는 점을 제외하면 어떤 부족한 점도 없는 금수저임.

직장에서 일상에서 믿고 의지할만한 꼬봉 둘을 데리고 있으며 맨날 지각하고 새치기하는 적폐를 일삼아도 아무도 뭐라 안함.

거기다 새로 온 총책임자가 한 눈에 반할만큼 오지는 매력을 가지고 있음.

그리고 남들이 흉측하게 여기는 잘린 손가락이나 어류인간 같은 것에 서슴없이 다가가며 꼬봉이 키우던 고양이가 뒤져도 신경 안쓰는 냉혈한이기도 함.

마지막 장면에 보면 일라이자가 얼마나 오지느지 나오는데 알고보니 신이랑 같은 종족이었음 - 이 년도 신이라는거.


반면에 스트릭랜드는 인생 더럽게 안풀리는 소시민의 표본임.

13년 동안 해외/지방에서 개같이 굴렀지만 겨우 맡은게 임시 프로젝트 책임자 계약직인 놈.

그렇게 겨우 계약직 임원 위치에 올랐으나 실수 한 번하면 목숨이 날아갈, 믿고 의지할 꼬봉도 없고 하나 모시는 상사한테 인정받지 못하는 정치력 제로인 놈.

부인 상대로 의무 방어전도 성실히 치르고 사달라는 캐딜락도 뽑아주는 지고지순한 놈.

직장에서도 일상에서도 믿고 의지할 대상이 없어서 자동차 딜러의 흔한 말에 넘어가고 오너 동호회 사람들이랑 인사하는거에 행복을 느끼는 지독히 외롭고 소박한 놈.

직장에서 손가락 두 개 잘리는 사고 당했지만 아무도 불쌍하게 보지 않는 사내 왕따.

개같이 구렀더니 정리해고의 협박에 시달리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 그 자체다.

특히 자식들한테 쓴소리 한 번 못하고 다 받아주는 것, 그러면서 제대로 표현 한 번 못하는 부분에서 너무 가슴 찡했다.

델 토로가 한국인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그리고 비평가들이 '어류'라고 지칭하는 신.

맨날 아마존에서 꼬박꼬박 상납금 받고 살다가 인생에 처음 위기 겪는 놈.

그런데 내가 볼 때 이 색기는 아마존에서 잡혀온거라기보다 잃어버렸던 동족을 찾기위해 투입된 비밀 요원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딱 일라이자가 두드릴 때만 반응을 보이고 스트릭랜드 손가락은 부러트리지만 일라이자한테는 처음부터 잘해줌.

이색기 지가 한 번 쓰다듬으면 모든 상처가 사라지면서 스트릭랜드가 고문하는거 일라이자가 지켜볼 때 가만히 있던거 보면 존나 철저함이 느껴짐.

고양이 잡아먹고나서 고양이 근처에서 친한척 나대는거나 자일스한테 애완동물처럼 행동할라는거 보면 일라이자 만큼이나 남을 조또 신경안씀.

마지막에 스트릭랜드 일초컷 하는거 보면 고양이 잡아먹을 때랑 똑같음. 신이라서 보통 생명체들을 하찮게 여김.

자일스 딱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고양이 잡아먹고 자일스 팔도 자를라 했으면서 불쌍한척 하고 탈모 존나 대충 치료해주는 디테일이 상당했음.


이렇게 인물들에 대해서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 영화의 진가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단지 사랑에 관한 영화가 아님. 이 영화는 우리네 아버지, 소박한 행복을 바랬던 평범한 소시민의 비참한 인생에 대한 영화다.

인생을 다 바쳐 본부로, 서울로 들어가려고 평생 직장에서 노력했던 아버지가 압도적인 금수저들에 의해 모든 걸 잃은,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긴 새드 엔딩.


영화에서 델 토로는 노골적으로 소시민의 삶을 그리는 단순한 기승전결을 만듬.

소시민 아버지의 모습 - 아버지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려는 금수저 및 사내 적폐 새력 - 어떻게든 해보려고 모든걸 바치는 아버지 - 절대적인 힘 앞에 굴복당함.

그러면서 스트릭랜드 철저하게 소시민으로 있을 수 있게 영화의 포커스를 두 위대한 신들에 맞추고 스트릭랜드는 엑스트라들처럼 흐릿하게 보여줌.



델 토로가 정말 성공적으로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바로 평론가와 대중의 반응이다.

'와 시발 여주랑 남주랑 존나 위대한 사랑을 보여주네 개쩐다'

영화가 끝나고 스트릭랜드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한 사람이 있었나? 그에게 의지하던 가족들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걱정한 글을 보았나?

영화는 철저하게 스트릭랜드를 잘근잘근 밟는 영화였으며 영화의 나레이션 - 아마도 자일스 - 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왜곡한다.

평생을 바쳐 노력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아버지의 삶.

그게 바로 이 영화의 참 뜻이다.


승자를 위해 쓰여진 위대한 영웅담 뒤에 가려진 평범한 소시민의 죽음.

그걸 이렇게 현실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있었나?

나는 델 토로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