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무엇인가요. (영화 ‘문라이트’를 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 분위기 좋은 술집,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우리는 그 곳에서 무엇을 파느냐보다 그 곳이 어떤 분위기를 주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같은 한 잔의 술이더라도 포장마차에서 먹느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구성한 곳에서 먹느냐는 마실 때의 기분이 다르다. 분위기가 사람에게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다. 느낌, 감정, 정서, 기분은 모두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영화에서는 이 분위기를 잘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들 때도 중요하고 인물의 심리 상태를 드러나게 할 때도 적절하게 사용해야한다. 영화 ‘문라이트’는 분위기가 좋은 영화다. 주제가 되는 한 대사, “달빛 속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다.”는 영화의 분위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게 된다.
3부로 구성된 영화는 어린 시절의 좋은 어른을 만나는 이야기, 고등학생 시절의 정체성의 방황을 겪는 이야기, 성인이 된 시점의 인생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친구와 조우하는 이야기를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주인공인 샤이론은 흑인에다가 성소주자이고 성장 시기별로 나누었기 때문에 편견을 극복하는 성장 영화로 비춰지기 쉬운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배리 젠킨슨 감독은 이 인물을 위해 어울리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억지로 성장시키거나 극한 상황에 몰아넣지 않는다. 분위기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니라 샤이론이라는 흑인 소년이 처한 상황을 정서적으로 잘 전달 되도록 느끼게 하는 것이다.
보통의 영화들이 배경이나 표현의 도구로써 분위기를 조성하는 반면, ‘문라이트’는 연출에서부터 분위기를 잘 표현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영화의 제일 첫 장면의 경우, 샤이론의 좋은 어른 역할을 해주는 후안<마허샬라 알리>을 대사나 컷 구분 없이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면서 따라간다. 건장한 한 흑인이 치안이 안 좋은 험악한 거리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분위기를 힘주어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것이다. 관객에게 영화 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감을 주겠다는 것보다 영화 속의 인물의 감정과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함이 더 드러나 있다. 이야기 안에서 시간의 경과함보다는 인물의 정서가 상대적으로 더 돋보이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리 젠킨슨 감독은 왜 분위기를 중요하게 다룬 흑인 성소수자가 주인공인 ‘문라이트’를 만들었을까? 영화의 1부에서 샤이론의 좋은 어른의 역할을 했던 후안은 샤이론에게 “무엇이 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해. 다른 사람이 결정하게 하면 안 돼.”라고 말해준다. 직접적인 메시지인 셈이다. 무엇이 된다는 걸 철학적이거나 사회적으로 해석하고 싶었다면 아마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을 것이다. 흑인과 성소수자를 주제로 표현할 방식은 많았을 것이다. 배리 젠킨슨 감독은 대신에 주인공의 자아와 감정에 더 심층적으로 다가간 것이다. 무엇이 되는 것에는 자아의 정서적인 상태가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즉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1부에서 후안이 샤이론에게 무엇이 될지 결정하라고 말해줄 때까지는 샤이론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것이 어떤 성격을 갖추라는 건지, 어떤 직업을 가지라는 건지, 어떤 사람이 되라는 건지. 그런데 2부에 등장해서 샤이론의 성적인 정체성을 짐작하도록 하는 친구인 케빈<안드레 홀랜드>이 3부에서 샤이론에게 물어봐준다. 너는 무엇이냐고. 영어로 ‘Who are you?’는 ‘당신은 누구입니까?’로 번역이 가능한데, ‘Who is you’는 ‘당신은 무엇입니까?’로 번역하는 게 더 가깝다. 3부에서 성인이 된 샤이론은 1부와 2부에서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마약상이다. 어렸을 때부터 샤이론의 옆에서 친구로서 알고 지낸 케빈에게는 뭔가가 이상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샤이론과 다르고 정체성을 숨기고 살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물어봐준 것이다. 샤이론이 즉각 대답했을 때는 그냥 그렇게 험준한 삶을 사는 것이 본인에게 어울린다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이내 솔직한 진심을 얘기한다. 대화중인 케빈 만이 자신을 위로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1부에서 후안이 무엇이 될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해준 말을 듣고 3부에서 케빈이 넌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샤이론의 대답은 ‘나는 무엇이다’식의 답이 아니었다. 케빈이 자신을 위로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는 것은 두 가지의 대답을 돌려서 말한 것이다. 하나는 성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마약거래상의 삶인 지금은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3부의 이 대화는 영화의 가장 마지막 시간대에 해당한다. 이 대화에 이르기까지 샤이론은 차별받고, 방황하고, 외로워한다. 샤이론의 정서를 표현한 분위기의 장면들을 거쳐서 정체성에 대한 답을 입 밖으로 처음 내뱉은 것이다. 무엇이 될지 스스로 정하는 건 자신이 무슨 정서의 자아인지 스스로 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메시지를 줄 때 앞에 또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달빛 아래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다. 후안이 어렸을 때 지나가는 할머니가 달빛 아래에서 파랗게 보인 후안에게 ‘블루’라고 불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려고 해도 흑인들은 아직까지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흑인들만의 사회도 안정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런데 그런 흑인이 파랗게 보인다는 말은 일종의 희망이다. 영화에서는 계속해서 긍정적인 색으로써 파랑색, 푸른색을 배치해서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3부 마지막에 케빈과 샤이론의 대화가 끝나면 바다 앞에서 달빛을 받아 푸르게 보이는 어린 샤이론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영화가 끝난다. 샤이론이 자신의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정체성을 내뱉었을 때 샤이론도 달빛 아래에서 파랗게 보인 흑인이 된 것이다. 그 대화 전까지 샤이론의 삶은 스스로 결정한 삶이 아니었다. 남의 시선에 맞춘 삶, 남이 부르고 불러준 삶, 남이 불러줄 법한 삶이었다. 남과 상관없는 자신의 자아에 맞춘 삶, 자신의 자아가 부르고 불러준 삶을 알았다고 선언했을 때에 이르러서야 샤이론도 푸르게 빛나는 하나의 개인이 될 수 있었다.
개인은 그 자체로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누리는 능동적인 존재다. 하나의 개인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 어떤 자아인지, 어떤 정서를 가진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어떤 개인이 될지 정할 수 있다. 알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도움은 받을 수 있지만 혼자서 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개인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은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날 수 있다. 복잡한 사정을 겪고 푸른 흑인이 된 샤이론의 이야기를 통해서 질문해 본다. 당신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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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냥 병신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