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여자들은 다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여름을 어떻게 견디며 성장을 어떻게 숨기고 있을까.

 털이 나고 습기가 차고 뼈가 굵고 살이 붙는데

 못생긴 여자들...

 질문이 닿지 못하는 방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을 때

 담요를 뒤집어 쓰고 나오나?

 하지만 이력서를 들고

 나는 아직 미혼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무한한 미래가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서른이고 그러므로 나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그리고...

 따위로 줄줄 이어질 선언을 어디서 중단해야 할지 두근거리며

 담요 안에는 못볼 꼴

 도랑에 떠내려 온 새끼 돼지 가죽 냄새

 그래요 나 여기 있어요

 더 심하게

 다른 이유로 벌 받았으면



 팬텀 스레드 봤다.

 이 영화를 끝으로 연기미친놈은 은퇴한다.

 PTA person triste addicted

 이안이 쓸쓸함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묘사한다면 PTA는 쓸쓸한 기운이 이미 말기암처럼 퍼져 있어서 말릭처럼 데카당으로서 휘청일 필요도 없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증세가 심화되어 시크 러브가 되었는데

 sick love는 단순 수식 관계가 아니라 sick = love

 등가 관계인 것 같다.

 이때 시크는 궁둥이나 맞아야 할 시크와는 정반대에 있다.

 모든 숏이 아름답고 세계를 말하려 들지 않으며 오로지 영화의 빈약한 신호로 존재하기 위해 애쓴다.

 이 영화의 처음 얼마 동안은 렛미인의 재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가 PTA를 건성으로 생각했거나 얕잡아 봤기 때문일 것이다.

 연기미친놈에 못지 않은 훌륭한 배우인 레즐리 맨빌이 우울한 우드콕 가문의 굳건한 역사로 존재하지만 역사가 언제나 그렇듯 알마의 반정에 흡수된다.

 사랑은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온전히 존재하게 하는 것이라고 에즈라 파운드였나 하여튼 유명한 시인이 그럴듯하게 정의 내리기도 했다.

 팬텀 스레드를 보고 나니 이런 말들이 어쩌면 서구 모더니즘 지성이 혼돈 앞의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아는 체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알마가 파괴하려는 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거리감이다.

 PTA는 폰 트리어처럼 거리감을 부수며 거리감 선생들, 다시 말해 평론가들을 조롱하지도 않고 그런 자학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이 세계에는 영화뿐이고 영화는 행복하고 슬프다.

 이 자족적인 불과 나방의 공존 상태에 나는 할말이 없다.

 그저 슬프고, 연기미친놈의 은퇴를 유발한 슬픔에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