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숙녀 여러분

 에헴....


 

 톺아볼 것 없고 생각나는 대로 꼽아 본다.



 1. 버닝: 이창동의 모던 시네마. 항간에 얘기되는 호수 씬, 해미 방 줌아웃 이후가 이상하다면 응당 종수가 해미와 술을 마셨던 밤에서 다음날로 넘어가는 편집점도 하나로 묶어 다뤄야 한다. 아니, 환상 논쟁을 하려면 아예 해미의 추첨 마술부터 거론해야 마땅할 것이다. 나는 마침내 이 영화를 다섯 글자로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불쌍한 종수.


 2.플로리다 프로젝트: 남의 차에 침을 뱉고 그 주인에게 상욕을 퍼붓는 어린아이들을 보며 깔깔댄 건 극장에서 나 혼자였다. 갈소원이나 다코다 패닝의 순진하고 선한 어린아이를 기대한 관객들이 당황하는 것도 은근한 재미였다. 어린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직된 이해는 그 어린이가 늙어 죽을 때까지 칼이 되어 옥죄는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솔로 강아지라는 시집을 낸 어느 시인도 시인으로서가 아니라 막돼먹은 어린아이로서 온라인에서 집단 린치를 당했다. 마광수는 평가할 만한 점과 비판할 점이 따로 있는 작가였는데 생전엔 소설 냈다고 구속까지 당하고 사후엔 또 아주 신화화되는 분위기다. 못마땅하다. 현대시에는 문제가 됐던 학원 가기 싫은 날을 훌쩍 뛰어넘는 그로테스크한 시가 많다. 교과서에도 나온다는 최승호 시도 그런 게 제법 있고, 김민정 시는 아주 뜨악하다. 나는 김언희를 좋아한다.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봄은 똥밭이네.

 핼리와 함께 소풍 가서 헬리콥터에 욕할 때는 두어 사람이 더 웃었던 것 같다.


 3. 원더 휠: 아이의 파행은 계속된다. 이창동의 변화보다도 우디 앨런의 변화가 더 놀랍고 신선하다. 거장들이 말년에 만들곤 하는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인 영화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마노엘 드 올리비이라의 실내극이나 선셋대로, 어떻게 보면 찬란함의 무덤도 연상된다. 우디 앨런의 주제는 계속되면서도 불안정한 공간을 유지한 성취로 봐야겠다. 잘 빠졌다 아니다를 논하기보다는 노감독의 도전을 지지한다.


 4. 120BPM: 불안정한 공간 하면 또 이 프랑스 영화를 빼놓을 수 없겠다. 하필 칸 경쟁에 이 영화가 있었던 것이 옥자에겐 민망한 일이었을 것이다. 운동의 급진성과 처절함, 그 운동에 대한 냉정한 묘사 따위가 비슷한 구석이 많은 옥자를 소꿉장난처럼 보이게 만든다.


 5. 팬텀 스레드: 


 멸망 로맨스.

 자동차 앞뒤 유리 숏과 버닝에서 해미가 빠진 우물 이야기 등을 우울증적 장면으로 갈무리해 놔야겠다. 언젠가는 이걸 주제로 말할 기회가 있겠지.


 6. 아름다운 별: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작년 작품이었네. 아름다운 별도 재밌게 봤는데 팬텀 스레드 아래 놓으니까 어째 격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다. 경망스런 전자음악 때문에 그런가. 두 영화 사이에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가 있으면 또 그럴듯해 보인다. 수순의 묘. 요시다 다이하치가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일본의 알트먼이라고 해야 할까. 헛것을 찍는 감각이 기가 막힌데 과소평가된 것 같다.


 7. 굿타임: 소규모로 개봉했나. 다행히 극장에서 볼 수 있었지만 몇몇 큰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영화를 '개봉작'이라고 부르기는 망설여진다. 나는 극장이 정치적 공간이고, 정치적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장은 학교나 예배당처럼 모든 지역에 있어야 하고 그 각각이 시네마테크처럼 무슨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할 필요없이 퀜틴 타란티노, 왕자웨이, 요시다 다이하치의 영화들처럼 재밌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있는 작품을 일주일에 한두 편 꼴로 보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내 극장 모델이다. 현 상황 얘길 하자면, 자본 침식 같은 소리 할 것도 없이 우선 사람들이 더 이상 영화에 뭔가 미지의 것이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이제 사람들이 영화에 바라는 건 '원작 그대로' 재현해 주는 것뿐이다. 재밌는 건, 정작 그 팬이라는 사람들이 열광하는 대상은 '원작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엇갈림이 말해주는 건 다시 또 뻔하게도, 영화 담론의 결핍이다. 팬들이 코믹스 영화에 원하는 바를 수용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팬들을 (원작 그대로가 좋은 게 아니라고) 설득할 골목대장, 다른 말로, 균형감과 교양 있는 덕후가 여럿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디씨 같은 데서는 거품 무는 듀나가 있는데, 나는 듀나가 정성일보다 훌륭한 평론가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마스킹, 정치적 올바름, 클리셰, 과학 영화(Sci-fi의 번역어로 급조) 같은 문제에서 분명한 전선을 이끌거나 일가를 이뤘고 추종자도 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 좀 아쉬운 부분은

 ...

 나는 요새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굿타임에 대해선 조만간 따로 쓸 것 같다.


 8.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훈적이다. 남자가 정말 일을 벌이기 전까지 당사자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제3자인 내가 둔감할 수 있으며 그런 시선이 모여 돌이키지 못할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체험시켜 준다. 앙투안 나름의 사정과 고통을 헤아려 보는 시도를 나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미리암이 과도하게 예민하다고 예단했거나 딸의 행실을 재판했다면 문제인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 이건 아니지' 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게 언제쯤인지 각자 점검해 보면 좋겠다.


 9. 클레어의 카메라: ...


 

 개봉작들 외에 재밌는 영화들을 많이 본다. 요샌 더 많이 본다. 너무 많이 봐서 한 달쯤 지나면 뭐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몇 편은 놀라운 걸작이었다. 떠오르는 말들은 많은데 적당한 집이 없다. 얼마 전에 동생이 직장에서 강아지를 주웠는데 보호소에 갖다 주면 일주일 안에 안락사당한다며 내게 도움을 구했다. 나도 손쓸 수 없어서 유기견 보호 사이트만 뒤졌다. 동생이 집에 갈 때 따라오려는 걸 회사 뒤에 매놓고 갔는데 다음날 와보니 없었단다. 복날 준비용으로 개장수가 데려갔을 경우와 좋은 주인 만나 재롱 부리고 있을 경우를 모두 상상했다. 월요일엔 태풍이 온다고 한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곳에서 비를 맞을 개들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