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구걸인들에게 다들 어떻게 대처하나?
언젠가 축축한 여름 한밤중 먼 새끼 고양이 울음에 잠이 깨서 찻길 옆 수풀을 뒤졌던 적이 있다.
고양이를 발견했는데 어찌할 수 없어서 그냥 돌아온 건지 귓전에 야옹 소리가 바로 울리는데도 어둠 속에서 눈멀어 난감해 하다 돌아왔는지 기억 안 난다.
연회 씬 이후에도 입(과 손가락)이 살아서 나불거린다는 게 민망하다.
이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탄 게 칸 70주년이었나.
거기 모였던 영화쟁이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느꼈을 아이로니컬한 설렘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70이라는 숫자의 아무것도 아닌 반복성에 맞세우기엔 더 없이 알맞은 영화였을 것이다.
영화를 예술 작품으로 수집해 선별, 전시하고 상을 안겨줘 공인하는 영화제 형식이 얼마나 공허한 포장인지 벗겨내며 결국 그것을 제왕 살해까지 끌어가 정초해버리는 무례, 소년의 도와달라는 목소리만을 남기고 해소를 미뤄버리는 균형, 영화 전반을 택시 드라이버, 러시아 방주처럼 하나의 긴장된 시선으로 이은 것이 아니라 마치 분절된 각 장면들을 기획 전시한 듯 배치한 결정, 진상을 제대로 알 수 없도록 구성된 카메라 워크와 편집... 심지어 영화가 긴 것도 장점으로 느껴진다. 뭔가 계속 반복되는 폴 오스터 소설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가 잘 생각나지 않는 대신 불편한 질문들, 쉽게 지나쳤던 것들을 대하는 예민해진 감각들만 남았다.
올해 최고작으로 뽑힐 만한 영화인 것 같고,
나부터도 그런 생각이 드니까 아마 여러 평자들이 아감벤을 인용해서 설명하려 들 것 같다.
스퀘어라는 말의 중의성은 극장에 가서 봤을 때 더 두터워지는 것 같으니 내리기 전에 극장에서 볼 것을 권한다.
구로사와 기요시를 최고의 일본 공포 거장으로 기억하고 싶은 이들에게 산책하는 침략자는 건너 뛸 것을 또한 권한다.
사전 영화에 나왔던 남편 놈이 길바닥에 쓰러질 때 트윈 픽스랑 비교해서 볼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이거 뭐 제5원소네.
영화 볼때 이야기를 다 따라가지 못하면서두 끝내준다고 생각했었음 ㄹㅇ 최고
이글은 왜 개념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