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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에 중요한 시험을 보느라 보고 싶던 영화를 다 놓쳐 버렸다, ㅅㅂ. 아쿠아맨은 그닥 안 보고 싶었고 스파이더맨이 보고 싶었지만 이미 스파이더맨은 큰 극장에서도 하루에 1~2번 하는 수준으로 끝물이었고, '그래도 한 번 보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머니가 이미 보셨단다. 그래서 갑자기 '오늘 영화 보지 않을래?'라는 어머니 말씀에 그날 할 일이 딱히 없는 나는 콜을 했다. 부모님이 뭘 하자고 할 때 나는 그냥 다 콜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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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다들 '전형적인 한국 영화'라고 할 때 너희들이 생각할만한 그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영화일거라고 생각한다고 믿는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에게는 너희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옳게 생각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서민 대표선수 유해진과 엘리트 대표 선수 윤계상이 나오는 영화다. 이 말 한마디로 머릿속에 줄거리를 늘어놓는다면? 80퍼센트는 일치한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그 때 당시 나에게 이 영화가 선사해줄 가능성이 있는 요소가 2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내가 처음으로 취업이라는 걸 하게 된 배경이 있다. 말로만 듣던 'ㅈ같은 밥벌이'를 시작하게 된 나는 굉장히 심란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밥벌이는 고사하고 목숨까지 내던져가면서 일제 시대 때 만들지 말라던 사전을 만든 훌륭하신 분들의 이야기다. 수박 겉 핥기 식이라도 서민 대표가 이런 판에 뛰어드는 걸 보고 솔직히 참고하고 싶었다. 내가 삶을 바꾸는 영감, 밥벌이보다도 중요할 수 있는 무언가에 굉장히 목이 마르다, 솔직히. 영화가 유해진을 설득한다면 나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두 번째는 내가 근현대사에 관해서는 일자무식에 가깝다는 점이다. 나는 한국사가 모든 고등학생에게 필수가 아니었던 세대의 일원이고, 국내 역사에 대해 제대로 뭔가를 읽은지 벌써 몇년이 지났다. 그런데 일제 시대 때 역사의 단편을 보여준다면 나는 흔쾌히 배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사 영화 끝나고 나오는 글귀 2~3줄이 유일하게 정확한 역사이고 나머지는 다 각색인 한이 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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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영화에게 바라는 점을 정리하고 보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나의 관람 포인트는 크게 3가지였다.


  1. 과연 속물적인 유해진을 국어사전 편찬이라는 위험한 사업에 뛰어드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는가.


  2. 과연 국내 수십명의 학자들이 본인들도 한 번 살 뿐인 인생에 이런 고생을 하면서까지 친일을 안 하고 사전을 낼 이유를 잘 설명했는가.


  3. 혹시라도 천편일률적인 한국 영화의 공식에서 벗어난 신선한 영화였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1. 중간 정도? 2. 전혀... 3. 뭘 바라셨습니까로 정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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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제치기 쉬운 것부터 빨리 제쳐버리자. 어릴 때부터 빡센 교육 받고 자란 어학자와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소매치기를 하는 아버지 캐릭터. 이 두 캐릭터를 보고 다들 떠오르는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영화 본지 2년만 넘어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안다. 바로 내가 뭔소리를 하는지 알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한국 영화 안 보는 사람이 아주 많을 거라 믿는다. 바로 그런 공식에서 단 1도 벗어나지 않는다.


  내 경험이 아닌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를 바라는 사람들은 지금 바로 뒤로 가기를 눌러도 좋다. 이걸로 모든 게 다 정리가 안 될래야 안 될수가 없다. 이미 다들 수십번 한 이야기고, 다들 여러번 경험한 이야기를 재탕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돈 받으며 후기를 쓰는 프로가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이야기는 내 관점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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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중 유해진은 전형적인 '자기와 가족 밖에 모르는 속물'에서 '사전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까지 업그레이드 된다. 나름 그럴 당위성을 설명하려고 하기는 한다. 까막눈이었던 유해진은 숨어서 사전을 편찬할 준비를 하던 학자들(주로 윤계상)에게 글을 배우고, 한글을 읽으며 즐거워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건 '문맹에서 벗어난 즐거움'이지 우리말을 알게 되는 즐거움이 아니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배워도 똑같이 즐거워할 수 있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조선 토박이라 좀 불편했겠지만...


  후반부에는 한국말이 아닌 일본어를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해진 일반인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이건 일본인이 ㅈ같이 굴었다는 걸 대변하는거지 왜 사전씩이나 필요했는지 솔직히 관객들에게 잘 설명해 주지 못한다. 가끔 마주치는 일본인에게만 일본어를 해주면 되는 것이다. 조선인 동료끼리는 한국말 잘 한다. 오히려 사소한 단어에도 '에라이, 일본어 하지 마'라며 면박을 주는 장면에서는 꼰대 냄새도 좀 날 정도다.


  자신이 뒷바라지해주는 아들이 학교에서 조선말 사용을 금지당하고, 딸도 그걸 안 지키면 고생할 걸 알기에 일본어를 쓰기를 종용하는 장면이 있고, 솔직히 그 장면이 가장 와닿았다. 하지만 조선말을 쓰지 말라는 그  말조차 조선말로 한다는 점에서 별로 한국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은 체감하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어린 딸 숙이가 재잘재잘 일본어로 떠들면 충격적일 뻔했다.


  내가 밥벌이를 시작한다는 일로 심란하다는 말을 앞서 한 바 있다. 그 말인 즉슨, 일제 시대가 30년 이상 지속되는 상황에서 나는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해 위험한 강을 건널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순응하고 사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고뇌이다. 후자에서 전자로 변하는게 가능한지 간절했던 나는 그다지 영감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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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서민인 유해진이 아니라 지식인 윤계상의 측면은 어떨까. 그 당시 수많은 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전을 편찬하려고 했던 사상적인 당위성이나 역사적 배경이 궁금했다. '말이 곧 민족의 혼이다.'라는 상투적인 말을 설명하는 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아뿔싸... 윤계상이 사전을 편찬하려고 한 이유는 '일본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왔더니 애들이 민들레를 일본어로 하더라.' 이게 끝이다. 수준 낮은 관객들이 볼 걸 알아서 수준 낮은 설명을 한 것이다. 말을 잃은 후 문화를 잃고 결국 지배 세력에 동화된 사례, 말을 지키면 해방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같은 걸 기대했던 나는 윤계상이 회상을 시작했을 때 탄식을 하기 시작했다.


  같이 사전을 편찬하던 다른 학자들에 대해서는 별다르게 할 말이 없다. 다만 독립 운동을 하던 사람도 천장에 비가 새는 걸 걱정하고 평범하게 책방을 운영하는 아줌마, 아저씨라는 데에서 '위인들의 평범함'이라는 어구를 떠올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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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내가 영화에서 가져가고 싶은 것, 실망스러웠던 것 등에 대해 집중하면서 보고 있을 때 어머니가 목소리를 죽이며 나에게 말한다. 윤계상이 총상을 입고 유해진에게 자신을 두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사전 원고를 지키라고 당부하던 장면이었다. '쟤네 저렇게 길게 이야기할 새에 도망치겠다...' 나는 내가 영화에 댄 잣대에 맞는지 안 맞는지 바쁘게 생각하느라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보는 영화의 질에 대해선 생각하지도 못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바로 그런 한국 영화'라고 하면 생각이 나는 그런 정도일 듯 하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작중 인물들이 목숨을 걸고 내려던 한국어 큰사전에 대해 나무위키를 검색해서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 문화재인지 파악을 할 수 있었고, 영화 속 내용은 거진 다 각색/날조인 걸 알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돌려받을 수 없는 90분이었다. 영화를 본 이유였던 어머니도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재미가 없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항상 주제에 맞지 않게 영화에 점수를 매기고 후기를 끝마친다. 일제 강점기의 잘 팔리는 공식에 묻어가고 그러기 위한 당위성으로 애꿎은 문화재를 들먹인데다가 그마저도 잘 하지 못했다고 느껴서 내 점수는 40점.


  알콜 기운 때문에 제대로 글이 안 나오는 느낌인데 내일 보고 후회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