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념글은 그냥 두서없이 글썼는데, 그냥 내가 생각해본 조커를 써봄.


영화는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고, 개인의 주관에 따라 가치 평가가 상대적이기때문에 이 영화의 메세지 자체를 다양하게 받아 들일 수있다고 생각함.


나는 조커 영화에서 느끼는것은 꼭 조커가 아니어도, 던지고자 하는 메세지 자체가 정연하다라고 느끼게되더라.


일반인이 악에 빠져드는 과정을 그린거라고 생각함, 누군가는 조커의 미스테리한 탄생과정을 두루뭉실하게 나타낸 것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테고


개연성 없이 너무 두루뭉술하다라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거고, 꼭 조커가 아니라도 그냥 일반 영화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것이고.


일단 그걸 떠나서 우선적으로 써두자면


나는 모든 매체 자체가 개인에게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함.

당장 책만해도 베르테르 효과라고 해서,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었고, 음악만해도 개인에게 영감을 줄것이고.

영화만해도 사회 현상이 되어버리는 영화들이 많음. 히어로같은 무비만 해도 유행이 되서 사람들 사이에서 문화처럼 받아들여지잖음?

이 모든게 영향이므로, 이 모든걸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매체의 영향력자체를

너무 좁게 보는 판단이 아닐까 싶음.


그런 의미에서 조커의 영향력은 BBC 뉴스에서도 그렇고 4chan, reddit 같은 사이트에서도 평을 보면 꽤 크다고 생각함.


모방범죄의 우려또한 충분히 나올정도의 수법들이고.

영화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라는 건 너무 무책임한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음.

이 영화의 호평의 이유는 기본적으로 사회 안전망 바깥의 인간을 그려냈다는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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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넘어가자면


영화에서 아서플렉은 정신병이 있지만 소시민일뿐인 평범한 시민이고, 사회의 법도를 지킬려고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평가에서는 사이코 패스성이 내재되어있고, 별의 별 것을 트집잡을려고하는데, 가정폭력과 우울증의 상관관계가 영화가 진행되면서 나오는


가정 폭력을 당한 어린아이가 겪는 우울장애등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고, 이런 사람들은 유년기의 기억자체가 트라우마가 되어서 꺼내기 힘들어함.


이 시점에서 아서플렉이 사이코 패스이고, 비정상이라고 하는데, 분명 유년기의 기억의 트라우마로 고생받고 우울증과 틱장애로 고통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사이코패스다라고 하는것이 이해가 힘든 부분은 사이코패스는 대다수 자신의 안위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데

가족 간병같은 고된 일을 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함. 가족간병은 자살에 우선 순위권이 들정도라고 생각함.

요새는 뭐만하면 사이코패스라고하는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인데, 버스안에서 웃음을 줄려고 노력하고 자신의 상황을 남에게 알리는 진료 카드라거나

또한 남의 감정에 공감하는 장면들, 또 벽면에 총을 쏘고, 놀라서 부모한테 거짓말하는 장면들을 보면, 엄마의 걱정과 근심자체에 어느정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줌.


애초에 조커는 영화 내내 위선적이며 유창한 달변도 아니었거니와 타인에 기생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과도한 자존감 같은걸 찾아보기 힘들었음.

사이코패스 테스트 항목이라거나, 사이코패스의 특징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줌. 분명 유년기의 폭력으로 만들어진 과도한 폭력성은 있었을지언정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항목들에 대해서는 거리가 아주 멈.


결정적으로 사이코패스의 특징인 무책임함 자체가 드러나는 항목이 거의 없음. 몇년동안 가족 간병하고 수발했고, 월급 어쩌고해도 결과적으로 자기가 맡은 바에 대해서 어느정도 책임감을 느끼고 일을 했음. 그게 상황에 맞게 좋게 흘러가진 않았을지언정. 그 월급에서 나오는 것이든 어쨌든 광고판 찾으러가면서 폭력당하는것도 책임감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생각함.


유복자라는 트라우마때문에 아버지 기억의 트리거가 당겨지면 이성적으로 생각을 못하는 것도 더욱더 그럼. 이런 장면들만봐도 초반의 아서플렉은 감정적인 공감이 충분히 되고, 유년시절의 트라우마가 있을지언정 어디에나 있을법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음.


나는 이런 소시민이 타락하는 계기 자체는 굉장히 감정적으로 짜임새있게 잘 맞춰져 있다고 생각함.


택시 드라이버 마냥 베트남전 PTSD 묘사 이런걸 제대로 안보면 눈치 못채게 묘사하는게 아니라.


아서플렉에게 불합리한 상황을 계속해서 준다는 점임.


그중 아서 플렉이 사회에 적응을 할려고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크게 3가지라고 생각함


-버스에서 흑인 아이를 웃길려고 하지만 흑인 엄마한테 핀잔 듣는 장면


-상담자의 말이 항상 동일하다는 걸 눈치채면서, 상담자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


-강도 당한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만 들어주지 않는 직장 상사


이렇게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사회에 녹아들려고 해도, 저학력 계층에 장애까지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을 만큼. 사회 자체가 폐쇄적이라는걸 지속적으로 묘사함.


이런 불합리한 상황과 더불어서, 자신이 목표하는 코미디에서 조차 한계를 느끼는 교육받지 못한 남성이라 학력 개그 남발하던 코미디 극장씬에 남들 웃을때 못웃고 웃음 포인트를 못따라가는거 있잖아? 난 이게 저학력 계층의 현실을 알려주는거라고 봄.


즉 영화 내내 묘사되는것은 사회 테두리 밖에서 무시받는 소시민 남성의 모습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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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읽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황에서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가 떠오르더라.

이방인을 안 읽어본 사람에게 말하자면, 뫼르소는 모든 일에 무감각한 사람인데, 사람을 죽이고나서 재판을 받으면서 삶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이야기임.


하지만 이방인의 뫼르소와는 다르게 아서플렉은 반대로 주위에 계속해서 무시 받으면서도 사회에 녹아들려고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자신의 인간적 깨달음을 통해서

광기로 각성하는 변모를 보이지만. 결국 살인으로써 그 실존을 찾아가는 부분을 보여준다고 생각함.


그러다가 우연히 불합리한 폭력을 당하다가 아서플렉은 금융쟁이에게 불합리한 폭력을 당하던 끝에 정당방위로 살인을 하게 되었는데,

이 부분에서 아서플렉은 진정한 자신의 안에 자아를 깨달아서 거울을 보면서 춤을 춤.


춤의 영어인 Dance의 어원은 산스크리스트 어로 '생명의 욕구'라는걸 감안한다면, 자신의 삶에 대한 욕구와 어떤 욕망이 충족 된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


대다수 영화에서 내면에 있는 자아를 깨달았을때, 춤을 추거나, 요가등을 하거나 하는 장면들을 보면 아서플렉안의 조커로 가는 광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임과 동시에

또 반대로 죄책감을 못이겨서 부조리한 춤을 추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해석의 다양성이 영화의 묘미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살인을 하고 나서부터 현실을 도피할려고 하는지 망상을 하는게 나타남. 이 장면부터 망상에 가깝다고 판단 할 수 있는 부분은 기존에 사회의 테두리밖에서 생활 하던 아서가, 사회의 안에서 마치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듯한 장면들이 계속 연출됨. 그 대표적인 부분은


-병신 쪼다 아서 플렉에게 흑인 싱글맘이 먼저 관심 가지며 다가오기 시작하고 결국 관계까지 맺는 일


-코미디가 잘 풀려서, 흑인 싱글맘과 데이트를 한 일등등.


하지만 점점 수사망은 좁혀들어가고 아서플렉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온다.


평소에는 거들떠 보지 않던 엄마의 편지를 보게되는 장면인데, 그곳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토마스 웨인이라는 사실.


이에 아서플렉은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 더불어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하여 굉장히 갈망한다는게 영화 곳곳에 복선으로 묘사됨.

특히 가장 강력하게 묘사되는 부분은 머레이 쇼 부분이라고 생각함.


-머레이 쇼에 청중으로 갔었던 머레이가 아서를 안아주면서, 열심히 살았고, 마치 자신의 아들 같다고 말하는 장면


어쩌면 굉장히 뜬금 없는 장면일 수도 있고, 그냥 아서가 왜 머레이 쇼를 지속적으로 보고 머레이의 개그를 좋아하느냐는 것을 보여주는 일종의 장치라고 볼 수 있으나
나는 이것이 아서가 머레이에 대해서 대체 아버지에게 갖는 일종의 동경심과 사회적 유명인사에 대한 선망이 혼재한 상태라고 생각함. 저 아들이라는 말 자체에 깊게 감명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아서가 머레이 쇼에 나가길 갈망하는 장면들이 더 눈에 밟힌다고 생각함. 자신의 최후의 무대를 머레이쇼에서의 자살로 끝낼려고 한것도 그 이유에서라고 봄.

그리고 이런 아서플렉의 상황에 걸맞게 사회의 배경 자체도 혼란함.

가장 기본적인 시설 중 하나인 쓰레기장도 미화원 파업으로 인해서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이라는게 묘사가 되고,


장면 내에서 잠깐 지나간 슈퍼 쥐떼가 나타난다는 코미디는 결국 기본적인 도시의 위생상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머레이 쇼의 머레이가 하는 말과 복지 예산까지 깍아서 정신 상담마저 받는게 힘들어진 사회.



거기에 그런 파업에 대해서 노동자들의 문제라고하며 부유층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옹호만 하는 샤이 트럼프 토마스 웨인에다가 복지 예산조차 깍아먹는 시.

이렇게 기본적인 사회의 복지조차 망가지고 있는데 막상 자본주의 비판 영화인 모던 타임즈를 문을 걸어잠그고 부자들끼리만 보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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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부조리한 장면이라고 말 할 수 있는것은 이 모던 타임즈 부분인데


조커 내에서 나오는 장면은 모던 타임즈의 장면은 영화 사상 가장 큰 자본주의 비판으로 유명한 명장면이다.


사실 이 장면은 오갈데 없는 찰리 채플린이 백화점에 취직해서 백화점 내에서 숙식을해결하면서 집처럼 사는 이야기임.


이 장면 뒤에 노조 파업을 하다가 일거리를 잃은 부랑자들이 폭발해서 쳐들어오는데, 그들의 상황을 불쌍히 여긴 채플린이 문을 열어주고 개방을 하고 이를 계기로 찰리 채플린은 짤림.


이게 조커 영화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냐? 아서플렉의 살인을 계기로 그동안 쌓인 시위가 폭발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는것은 어쩌면 과대해석이지만,

이 장면이 말하고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난하고 일부 사람들만 호위호식해서 사회가 폭발한 상황과는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사회자체가 이렇게 미쳐버리니까,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이 비정상적이게 되버리고 그 상황에 맞춰서 폭동이 일어남.

문제는 그 폭동조차도 원인을 시스템에 찾는게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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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토마스웨인이 말하긴

"자신 같이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이라고 언급하는데,

결국 이말을 다르게 말하면 저 대다수 부모 못만난 하층민들은 노력조차 안했던 사람이라는것.

그러니 시민들이 뿔이 나지. 하지만 시장 출마한다는 토마스 웨인은 계속해서 사회가 부패했다고하면서 시스템적 개선안을 말하지 않고 자기가 시장이 되면 해결하겠다는 식의 소리만 늘어놓음.


수사망이 좁혀진 상황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하기위해, 찾아간 토마스 웨인은 아서플렉에게 브루스 웨인이라는 아들이 존재하고 그를 괴롭히지 말라며,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한 사람에게 다른 아들 이야기를 들으며, 입양아라는 소리를 듣게된 아서플렉은 그 말에 화가나 반박하지만, 실제 진실을 알기위해 병원기록을 본다.


그리고 병원기록 보니, 엄마가 미친년이었다는 사실과 자신은 입양아였으며, 자신이 이렇게된 원인이 엄마때문이었으며, 그리고 유년시절의 가정폭력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자신의 병의 원인또한 엄마한테서 온거라고 생각하게된다. 특히 이부분에서 자신의 틱장애의 원인이 엄마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뭐냐면 입양아에게 머리의 외상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볼때 아서플렉의 표정이 유례 없이 일그러진다.(하지만 영화내에서 엄마의 발언등을 종합해보면 사실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 모호한 상태라고 생각함. 그래서 여러 가설이 나오는거고)

친부인 줄 알았던 토마스 웨인은 친부가 아닌것이었는데, 자신을 망쳐버린 엄마에 대한 분노때문에 엄마를 죽이게 되는데,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자 애증의 존재로 군림한 엄마에 대해서 살인을 하게 된다. 이러한 친족살해의 대표적인 원인이 가정폭력이라는걸 생각하면, 엄마를 죽이게 된 이유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렸기때문에 그 원인이 되는 존재를 제거할려고 한게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서는 버팀목을 잃었지만, 또 다른 버팀목이 있다는 생각에 또 다른 버팀목이었던 싱글맘을 찾아가나,


알고보니 싱글맘은 자신의 망상속에서나 친해졌다고 생각하게 되고,

이때부터 아서가 완전히 타락하게 되고, 자신의 안에 내재되어있던 폭력성에 대해서 완전히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비웃는 사회에 대해서 복수를 다짐하고, 결국 모든걸 체념한 채로, 머레이쇼에서 자살할 계획을 짠다. 그리고 잃을 게 없어졌으니, 부모의 죽음을 위문하러온 동료인 랜들을 무자비하게 살인하고,

자신에게 잘 대해준 동료는 고마웠다면서 풀어주고, 자신이 머레이쇼에 나간다며 말한다.


그곳에서 자살에 대해서 리허설을 하면서 끝을 내기로 하였고, 마지막에 자신의 죽음이 삶보다 가취 있길 빈다는 글을 보며, 끝내려한 순간, 자신이 존경하던 머레이의 비꼼에 화가나서 자신을 알아주지 않던 사회에 대해서 화를 내며, 자살로 끝맺을 할려고했던 쇼의 내용을 살인으로 끝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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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순간 영화내내 아웃사이더에 사회 테두리 바깥에 존재하던, 아서 플렉이라는 껍데기는 사라지고, 의도치 않게 체게바라처럼 혁명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조커라는 알맹이가 남게된다. 그렇게 경찰에 실려가는 아서플렉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숭배받고 내재되어있는 광기에 휩싸여 춤추며 끝이 난다.


즉 시뮬라크르가 되어서, 그 행동의 원인인 찌질이 아서플렉은 제거되고 배제된 채, 일종의 혁명 투사가 되어버리며, 도시를 광기에 밀어넣는 조커라는 아이콘이 되어버린것이다.


그리고 그 광기로 인해, 사회 도덕적인 제한이 해제되버린 아서플렉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난다.


영화내내 살인은 아웃사이더였던 조커가 인싸가 되는 수단처럼 묘사되는것도 있고, 살인을 하면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사회상으로 말미암아 아서플렉이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부조리극이 되던데. 참 착잡하면서도 어쩌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서 무시무시하더라.


나는 이영화보면서 크로니클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라. 스토리 자체도 거의 엇비슷하고. 단지 여기서 크로니클은 엄마라는 사람이 기둥이었고 사랑의 증표였다면, 조커는 엄마가 기둥이었는것은 맞으나, 조커가 불행했던 원인이 된것이기도 하고.


다만 크로니클은 초능력이라는 매개체가 비현실성을 더해준다면, 여기서 살인에 쓰이는 도구들은 묘한 현실성을 띄고 있어서 모방범죄 우려가 나오는것이겠지.


이 영화에서는 슈퍼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비현실성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있을법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있을법한 이야기이고, 사람이 소모되어가는 사회에서의 조커의 메세지는 꽤 특별하다고 본다.


3줄 요약


1. 조커 영화는 아서플렉이라는 껍데기가 사라진 채, 혁명의 아이콘이 되어버리는 조커의 이야기다.

2. 자본 주의 사회가 복지를 등한시 할때 어떤 일들이 나타날 수 있는가에 대한 부정적인 소고이다.

3. 이 영화가 꼭 조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다른 일반 영화로 나왔어도 상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