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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더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이 영화의 모티프이다. 한국 영화는 지금까지 무수한 장벽을 넘어왔고 수많은 장애물을 극복해 왔지만 그럼에도 넘지 못했던 이야기가 세 개가 있다. 하나는 문세광 저격 사건이고, 하나는 KAL기 폭파 사건의 진상과 실체이며, 또 하나는 버마 아웅산 테러 사건이다. 이 세 가지에 대해 한국 영화계는 그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기 때문이다. 많은 점들이 비밀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사회를 휘감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와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트’가 그 지점을 통과했다. ‘헌트’의 이야기는 아웅산 테러 사건에서 가져왔다. 그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실로 놀랍게 느껴지게 만든다. ‘헌트’는 물론 가상의 역사이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국립묘역에서 테러가 일어나기 직전과 직후까지의 영화 속 얘기는 모두 허구이기 때문이다. 장소도 미얀마가 아니라 태국으로 바꿨다. 모든 얘기는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보는 내내 ‘저런 일들이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개연성이 매우 높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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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초기 권력기반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순방 외교를 강화했으며 아웅산 행도 그 일환이었다. 그러나 북한이미리 심어 놓은 특작대가 폭탄 테러를 감행해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 장관, 김재익 경제담당 수석비서관 등 각료 17명이 사망했다. 전두환은 4분 늦게 도착해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이 사건 이후 국내에서는 안기부 국내 팀의 첩보로 전두환 일당은 북한의 테러 작전을 미리 감지하고 있었고, 이를 국내 정치의 정국 전환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묵인했다는 설이 파다했었다. 전두환은 자신의 각료를 대거 죽이거나 숙청하려던 참이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 진실은 베일에 가려졌다. 북한의 특작대 일부도 잡지 못한 채 북한으로 다시 도주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그 이유 역시 밝혀진 게 없다. 전두환 철권통치는 이 일로 정당성을 얻었다. 한국사회에서는 고문과 폭력이 정당해졌다. 1983년의 한국은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때이다.
여윽시 믿거하는 한국정치영화 ㄹㅇ ㅋㅋ
아웅산 묘지 테러,칼기 추락사건,천안함 침몰 북괴 테러 아니랑께
저건 안보는것이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