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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도(金門島)다. 대만의 부속 섬이지만 오히려 중국 본토에 가까이 있다. 본토와의 거리가 불과 2㎞다. 헤엄쳐서 건널 수 있는 거리다. 그래서 우리 영토이긴 하지만 위치상 북측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서해 5도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한의 최북단 섬 백령도에 군 시설을 세우며 전진 기지화할 때 금문도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금문도는 대만 역사의 상징이다. 1949년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가 본토에서 대만으로 쫓겨날 때 최후의 보루로 삼은 게 금문도였다. 4만 명의 국민당 패전병들은 “죽음으로 금문도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말 그대로 죽음으로써 지켜냈다. 당시 중국군은 국민당 군대의 절반에 달하는 2만 명을 투입, 금문도 상륙까지 시도했지만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었다. 승전은 국민당의 사기를 높였다. 전투는 역사적 상징이 됐다.
중국은 이후에도 호시탐탐 금문도를 노렸다. 급기야 58년 8월 23일엔 대규모 군사도발을 감행한다. 10월 5일까지 44일간 계속된 전투에서 중국군은 무려 47만 발의 포탄을 쏘아댔다. 기록에 따르면 교전 첫날인 23일 하루에만 5만7000발의 포탄이 발사됐다고 한다.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대만군은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군 포병진지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미국 정부로부터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지원받아 육·해·공군의 입체적 반격전을 폈다. 대만은 또 섬 전체를 땅속으로 그물망처럼 연결해 요새화했다. 이 지하 요새를 시찰한 적이 있다는 이동복 전 자민련 의원(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은 “땅굴은 지하 3층으로 돼있으며 자동차로 섬 어디든 갈 수 있게 돼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였다”고 기억했다.
목숨을 건 대만군의 처절하고 끈질긴 저항과 반격에 중국은 결국 손을 들고 만다. 인구와 물자·전투력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대륙 중국이 코앞의 왜소한 작은 섬, 금문도(동서 20㎞, 남북 길이 5~10㎞)를 집어삼키지 못한 건 왜일까. 그건 죽어서라도 영토를 지키겠다는 대만군의 의지 때문이다. 화력에선 중국군이 앞설지 모르나 심리전에선 단연 대만군이 우세했던 거다. 전쟁에서 심리전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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