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자 캐릭터는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에 있어서 밀거나 끌어당기는 역할을 해야한다. 또한 그 캐릭터들이 이야기 구조적으로 존재해야할 이유, 역할, 의미가 있어야 반드시 하는데,  앤트맨의 가족들을 포함한 조력자 캐릭터들은 단순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소비되기만 했다.

주인공을 포함한 네 명의 인물들은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한 명의 인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각 구성원들의 개성들을 후려쳤다. 양자세계로부터의 위험을 해결하는 게 아닌 외면과 방치의 태도를 '취하려 했던' 미셸파이퍼가 맡은 할머니와, 매사에 진보적인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물인 엔트맨의 딸 캐시는 이번 이야기를 열고 닫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인물들은 각자가 갈등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은 단지 이름만 갈등일 뿐 충분히 몰입할 수 없는 부실한 것이여서 나는 차라리 그들이 가진 갈등을 갈등이 아니라 명분이라 부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빡치는 구간은 갑자기 양자세계에서 나타난 개미들인데, 차라리 주머니에 몇 마리 있었다고 해도 될 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마냥 나타나서는 우주선을 뚝딱뚝딱 고쳐주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히 스파이더맨의 경우는 주인공에게 체화된 곤충의 특성 때문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 핵심이지 사실 그 곤충이 물방개든 땅강아지이든 곤충의 종에는 특별한 의미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거미라는 곤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거미가 딱히 언급되거나 어떤 역할을 맡지 않는 이유가, 길을 잃은 피터파커에게 거미가 갑자기 나타나 교훈을 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메인빌런인 캉에게 대적하기 위해서 힘을 합치는 어떤 상징적 의미와, 캉의 군대와 닮았지만 대조적인 의도를 갖는다는 점에서의 개미는 인정하지만 굳이 저딴식으로 까지 개미가 나타나줘야 하는가에 대해서 짜증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엔트맨 시리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정도면 차라리 주인공을 바꾸는 게 정석을 따라가는 것이다. 스파이더맨의 계속되는 평범과 비범의 양자택일과 그 선택 때문에 따라오는 주변인들과의 관계는 몰입하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저거는 그냥 커졌다, 작아졌다, 무력한 아빠임을 반복할 뿐이지 극중에서나 시나리오 단계에서나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런 보잘 것 없는 인물인 것이다.

만화책에서만 허용될 수 있는 인물이지 영화에서는 영화에 맞는 각색이 필요한 것이다. 허멀건 백수 아빠가 딸 잃는 것 말고는 또 어떤 갈등이 또 생기겠냐마는 이렇게 돈 많이 들어가는 영화에서 그 정도도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추가로 캉에 대해서 말하자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이야기 안에서의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캉이 정복하는 어떤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 만으로도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딸을 인질로 잡아두었다는 것 말고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는데에 등장의 절반이상을 허비한다. 주인공과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 특별한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사실상 캉 또한 명분만 있을 뿐 딱히 어떤 기능을 하지 않는 캐릭터에서 멈춘다. 도대체가 악당도 주인공도 뭘 하는 게 없으니 이야기는 텅텅 비어보일 수 밖에. 타노스만큼 강하고 어떻고는 그 다음의 문제다. 악당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관객이 공감하는 인물들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도록 만들지 않는다면 그 악당은 움직이지 않는 바위에 불과하지 않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