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유만수의 살인은 어쩔수가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실상 아내와 맞벌이를 해도 되고 사치를 좀만 줄이고 집도 싼 곳으로 옮기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만수는 계속해서 어쩔수가없다는 말을 되뇌이며 합리화를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의 살인이 어쩔수가없다라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만수의 살인이 어쩔수가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의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기업의 어쩔수가없다는 합리화를 통해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거의 죽여버리는 행동과 그 시스템을 비판한 것이다. 설명하자면 만수의 살인은 어쩔수가없는 살인이 아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노동자는 나무에 계속 비유된다. 영화 중 유튜브에 제지회사 직원이 나와 종이를 만들 떄 나무를 자르지 않고 자기들이 심고 자른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들이 심었다고 해서 나무는 나무가 아닌가? 노동자도 똑같다. 자기들이 고용했다고 해서 사람이 아닌가? 똑같은 사람이고 해고는 거의 살인에 가깝다. 그리고 마지막에 ai로 다 자동화가 되어서 만수 혼자 일을 하는 장면이 있다. ai로 인한 자동화가 어쩔수가없는 것인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세상이 망하는가? 만수도 이 기업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자기에게 있으면 좋은 것을 위해 사람을 죽인다. 기업도 똑같다. 기업에게 있으면 좋은 것을 위해 사람을 해고하고 죽이고 어쩔수가없다는 합리화를 한다. 우리가 만수의 살인을 욕한다면 기업의 이런 행동도 욕해야할 것이다.
영화보고 해온 생각들 대충 적어봤습니다. 대충 적어서 읽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보고 평가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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