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늘 인상식(식인습성)이 있어왔다. 인상식은 모든 도덕과 질서의 막장이다.
수많은 침략으로 인하여 한족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타민족에게 의해서 군량미 대신 사람고기를 제공하였다.
인육은 돼지고기나 쌀보다 가격이 쌌다.
알고 있는가? 중국 역사상 인상식은 늘 있어 왔다는것을...
어떤이는 중국의 역사를 보고 '사람을 먹다'란말만 나오는 인상식의 역사라고까지 했다.
갈족의 군대는 군량미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양식을 빼앗지 못하면 한족여자를 약탈하여 밤에는 간음하고 낮이되면 죽여서 삶아먹었다.
요하에서 온 모용선비는 업성을 점령한후 5만의 한족소녀를 빼앗아 모조리 부하들에게 주었다. 사병들은 먼저 간음한후 삶아먹었다. 겨울이 지나자 5만의 소녀는 한명도 남지 않았다
북송말년의 정강지난때 금나라병사가 남침하여, 강회일대에 식량이 모자르자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기 시작했다
당시 군대는 인육을 군량으로 삼았는데 사람을 '두 다리 달린 양' 이라고 불렀다'
늙고 마른 남자는 '요파화' 라고 불렀는데 그살을 구우려면 불이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젊은 여자는 '불선양' 이라고 불렀는데 양고기보다 맛있다는 뜻이었다.
어린아이는 '화골란'이라고 불렀는데 그뜻은 살과 뼈를 함께 먹을수 있다는 뜻이다.
원나라 말기에 관군의 양식이 부족하자. 역시 백성을 잡아서 먹었다.
인육을 먹는 방법은 풍부하여 3권짜리 요리책이 만들어 지기도 했다
수나라말기 제갈앙과 고찬은 살인마였다 어느날 고찬이 제갈앙을 연회에 초청했다. 주요리는 10살된 쌍둥이형제였다. 연회에서 한미첩이 술을 따르다 실수를 했는데 제갈앙은 그 첩을 큰통에 넣고 삶았다 그리곤 통채로 식탁위에 얹어놓고 먹었다
276년후(1644년), 두 한족 이자성과 오삼계는 기녀 진원원을 위하여 수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산해관에서 전투를 벌인다.
청나라군대의 도르곤은 홍승주의 계책하에 그 틈을 뚫고 이자성을 대패시킨후, 북경에 진주한다.
1662년,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영력제가 오삼계에 의하여 운남에서 교살당한다. 1683년, 청나라에 투항한 명나라 장수인 한인 시랑은 청나라군대를 이끌고 대만으로 쳐들어가 정성공의 후손을 물리친다. 명나라의 감국 영정왕 주술계는 자살하고 만다. 이것이 중국의 제2차 망국이다.
청나라 군대는 남하하였고, 오랫동안 명나라의 녹을 먹어왔던 장수들은 모조리 청에 투항한다. 그저 일개문신 사가법이 양주에서 칠일밤낮을 버티면서 사수하다가 결국 성이 함락되었다. 청나라 군대는 십일 밤낮동안 성안에서 도살극을 벌인다. 이것이 역사에서 전하는 "양주십일"이다. 이때 죽은 자가 80만이 넘는다. 1년후, 청나라군대는 10일내에 강남의 인민들에게 체두변발을 할것을 명한다."머리를 남기려면 머리카락은 남길수 없고,머리카락을 남기려면 머리를 남길 수 없다."
가정사람인 황순요와 후동은 가정인민을 이끌고 의거를 일으킨다. 서주를 수성할 때 눈치만 보다가 도망친 명나라때의 총병이자 한인인 이성동은 이때 청나라군대를 이끌고 가정으로 쳐들어가 도살극을 벌여 2만여명을 죽인다. 여자들중에서 용모가 못생긴 경우는 그 자리에서 죽이고, 젊고 예쁜 여자는 모조리 밤낮으로 길거리에서 간음당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못으로 두 손을 나무판에 박아놓고 강제로 간음했다.
강동사람 주영이 다시 가정성으로 들어가서 청나라에 항거하나, 다시 패배한다. 이리하여 청나라병사는 다시 가정성에서 도살극을 벌인다. 성내에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성밖의 수십리안에는 초목이 모조리 사라졌다. 나중에 명나라총병인 오지번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다시 가정을 점거한다. 그도 역시 패하면서 가정은 다시한번 도살에 휘말린다.이것이 바로 놀라운 역사혈안 "가정삼도"이다
명나라군대는 백만이 넘었다. 그런데도 10여만의 청나라군대가 중원을 종횡하면서 무인지경처럼 휘저었다. 양주, 가정만이 아니었다. 도살당한 성은 강음,곤산,상숙,소주,남창,해녕,광주,감주,상담,대동,사천,하문동 등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청나라군대는 관내에서 37년간 살육전을 벌여서 3,257만의 한족을 죽였다. 명나라 천계3년(1623년)의 중국등기인구는 5,165만이었는데, 청나라순치17(1660년)에 이르러 청나라강산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을때 1,908만으로 격감한다. 전국인구중 2/3가 죽은것이다.
(옮긴이 : 공식기록상 동기간 인구감소가 3,257만 일뿐 인구의 자연증가와 당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한 인구 은닉등을 생각할대 최소 1억 이상의 한족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
https://www.nemopan.com/board/1947468
갈족: 갈족은 본래 흉노족의 지배를 받던 피지배 민족의 하나였다. 한족들은 흉노, 말갈, 갈, 선비족을 모두 오랑캐라고 치부하고 그것에 대한 구분을 하지 못한 부분도 측면도 있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혼합되어 후대에 갈수록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서기 1~3세기 경 흉노의 5개의 씨족이 다투다가 분해되고,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갈족과 동호가 대륙에 남하하여 삼국시대 위나라에 귀속되었다. 5호 16국이 개막하면서 유연의 휘하에 있던 갈족 가운데 석륵(石勒)이 독립하여 후조(後趙)를 세운 후 유연의 조카 유요를 죽이고 전조(前趙)를 멸망시켰다.
모용선비(慕容鲜卑): 고대 북아시아의 유목 민족 중 하나인 선비족의 일파이다. 4세기 이후 중국의 오호 십육국 시대 때 전연, 후연, 서연, 남연 등의 여러 나라들을 건국했다.
결론: 적은 가까이 있고 우리가 아는 악명높은 한족은 사실 선비족의 유전자 때문일 가능성
고조선과 고구려의 노예취급 받던 민족이 결국 대륙이 주인이 되어버린 결과가 오늘날의 중공과 그 뿌리와 실체를 알수 없지만 아무리 봐도 미개한 한족이 아닐까 싶음
고구려가 통제하던 말갈족(만주, 여진)과 거란, 몽골이 고구려가 망하고 각자 갈 길을 가면서 힘을 닦아 중원을 침략했으니 짱개 병신들이 대가를 치른셈이지
으웩 - dc App
저렇게 살육하고 도륙하고 식인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 지금 중국인ㄷㄷ
ㄴㄴ 이게 선비족에 대한 진실이다 선비족도 사실 한족 에 속해 http://www.godemn.com/xe/index.php?_filter=search&mid=free_board&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선비족&document_srl=716780
신중국건설의 원동력이 된 만주족(선비족)의 잔학성.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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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과 여진족은 전혀 다르지 선비족 당나라 / 여진족 금나라 청나라 http://www.godemn.com/xe/index.php?_filter=search&mid=free_board&search_target=title_content&search_keyword=만주족&page=1&division=-353469&document_srl=34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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