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인간을 넘어서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목적은 무한한 번영이다.


작은 틀에서 소수를 억압한다거나 다수를 위한다거나 이런 개념은 우주 레벨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기준이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해.


어떤 생명체가 무한히 번영한다고 할 경우, 그것이 파괴가 아닌 생산적인 방향으로 완결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거다.


존나게 번영해서 다 망해서 다른 생물이 살 수 있는 생태계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고 하면.

그런 생물은 번영해선 안 되겠지.

사람의 의도, 사상 등도 마찬가지로.

당장 보기에는 선이어도 궁극적인 목적에 위반되는 것이 많이 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서.


혼전 순결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아름답지.

이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면 인간은 과연 번영할 수 있을까?


도가식으로 말하면.


도가도비상도라고 해서 도는 형태가 없고,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

쉽게 말해서 세상이라는 것의 형태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고.

어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지.


에너지가 좋다고 해서 태양이 무조건 강해진다고 하면.

지구는 아무도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벨런스, 균형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토대로 절대적인 답을 찾아봐야 하는 거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정말로 성립하는지 검산해봐야 해.


인간들이 선과 악을 아무리 말해도.

그것이 정말로 인간이라는 종족을 번영을 통해 세계 순환에 있어 긍정적인 반응을 가져오는가?

아니면 거기에 한계가 있어서 일정 이상 번영하면 세상을 망치는 괴물이 되는 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큰 틀에서 생각을 하게 되면

인구 조절, 개발 조절 이라는 것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오만인거야. 왜?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야.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1퍼섽트도 되지 않아.

그리고 모든 기술과 지식 체계에는 알려고 하는 도전정신이 필요하고

도전정신은 99퍼센트는 실패하는 처참한 것이지.


인간이란 종족도 인간과 같아.

가지고 있는 것을 멸망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을 파멸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것저것 하면서 

배우고 알아가는 것을 통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야겠지.


여기서 가진 지식을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가 아니면 세상 따윈 x까 하고 사용하는가는 매우 어려운 문제인거다.


소수와 다수의 문제도.

결국은 답이 정해져 있는 형태가아니라.

그때 사회의 인구 밀도, 사회 문제에 따라.

시행해야 하는 정책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지.

정답이 있어서 그것만 하면 된다 라는 무슨 그런 것을 찾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게다가 세상엔 이런 논리구조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면 '세상의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명제는' 절대적이다.


상대성과 절대성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충돌과 모순을 반복하면서 결국엔 더 나은 무언가를 낳는 토대가 되는 거다.


만일 신이 .

자신에게 완벽하게 순종하는 자들을 원했다면 인간은 만들지 말아야 하고, 인간을 사랑할 이유가 없어.

버린 자식이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거야.


다만 자기 안에. 잣대만은 가져야지.

이를 심지라고 하는데.

이 심지가 결국 진정한 자신의 증거가 된다.


세상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기 심지를 찾아서 자신을 이겨서,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히는 것이 중요해.

충동이나 한때의 욕망 같은 것을 완벽하게 조율하여.

진정한 나로서 세상을 접하는 것.

하지만 본능과 감정은 이성 못지 않은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사이코패스는 화이트 사이코패스라도 인간으로서 불완전한 거지.

완벽한 것은 법칙, 규칙이고.

완벽한 것은 결고 생물이 될 수 없어. 왜? 완벽이란 영원 불변해야 하는 거니까.


뭐.


그냥 그렇다고

지나가다 한마디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