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한번 어쩌다 우리가 이런 꿈속의 캐릭터가 되어서 하염없이 살고있는걸로 보이는지 이야기를 해보자.

기적수업이 좀 어렵다면, 우주가 사라지다 라는 책에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있으니 참조하길 바래.


생명(혹은 신)의 세계에는 모든게 다 하나다, 근데 그 중에 마음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 상상을 한 순간, 찰나의 순간, 생명이 아닌 그 모든것을 상상하게 되었고, 순간의 충격으로 일시적으로 미쳐버렸다.

신의 평화가 아닌 갈등, 전쟁, 죽음, 고통, 고문, 살인,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우주가 통째로 상상되었는데

그 찰나는 지나갔고, 실수는 교정되었으며, 생명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떨어져나오기를 상상해본 작은 마음조각에게는, 처음 상상해본 '신 아닌 것'이 너무나 생소하고 충격적이었기에

충격적인 일은 생각하기 싫어도 머릿속에서 자꾸 생각이 나잖아? 그것처럼 본의아니게 계속 상상을 반복 플레이하게 되었다.


사람은 그 상상 속에서 반복 재생되는 캐릭터중에 하나다. 

사람이든 세상이든 이 통째 덩어리 뒷편에는 그 세상의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는 정신나간 마음이 있다.


신성을 가진 자가 만들어낸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겠어? 수많은 병행우주가 상상속에서 만들어졌고

그 안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삶의 형태가 다 만들어졌다가 순간에 다 사라졌다.

우리의 삶도 다 시나리오가 정해져 있는데, 다층적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매순간 선택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게임 화면처럼, 그렇지만 게임이 엔딩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이 삶도 다 엔딩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 탈출구가 있는듯 보이지만 실은 없는것이다. 

세상 속에서 무슨 선택을 하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행복하지 않게된다.

다른 걸 하려고 해봤자 소용 없다. 결국에는 지긋지긋한 반복뿐이라는 걸 알게된다.


삶이나 세상 뿐 아니라 우주 전체가 통째로, 신성하거나 신비하게 보이려 애쓰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파동은 출렁출렁 진동운동 하는거지? 행성이 자전과 공전을 하면 그자리에서 가만있는게 아니기땜에

스프링을 늘려놓은 듯 전진하게 되는데 결국 파동형태랑 같다

전자나 원자, 분자등등도 행성의 움직임과 별 다를바 없이 중심을 향해 돌고있다.

사람의 영혼도 무리지어서 환생하는 것처럼 물질의 구성도 몇가지 원소가 붙어서 분자를 이룬다.

태어나면 죽고, 사랑과 미움은 같은것이며, 파동처럼 갈등하다 짧은 인생이 끝나고,

죽었다가 영혼들의 세상에 가고, 다시 태어나고 이 모든 게 다 똑같은 꿈이다.


원래는 하나의 파동에서 온것인데, 이 파동이 중첩되어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가 하나의 파동이기에 다 똑같은거다.

이걸 가지고 요새 과학계에서 세상이 홀로그램이라고 말하기도 하잖아.


몸, 영혼, 에너지체, 아스트랄체, 뭐라고 부르든 개체성은 전부 사라져야 할 꿈속의 캐릭터이다.

몸이 물질이고 영혼이 반물질이라서 몸은 천하고 영혼은 귀하다 이런거 아니다. 똑같은 몸이고 다 버려야 할것이다.

쿤달리니에너지 이런것은 성스러운게 아니다. 다 파동에너지로 다 버려야하는 에너지이다.

영성계에는 잘못 알려진게 너무 많다. 세상 속에 있는 물질이든 반물질이든 모두 다 똑같다. 

뭐가 더 성스럽고 덜 성스럽고 이런 것따위 없다. 다 똑같이 꿈이고 상상이고 다 버려야 할것이다.

이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생각, 감정, 느낌, 삶, 모두 다 파동에너지로 구성된 것이며

신성의 빛은 파동이 아니기에 흔들리는 파동에너지와 구분되며, 에너지를 감지할수 있는 몸이 되면 직접 차이를 느낄수가 있다.


신성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라고 했는데, 이 생명과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속에서 말하는 생명은 다른것이다.

진짜 생명은 하나가 통째이며 영원한데, 가짜 생명은 개체의 생명이며 언젠가는 죽음이 있다.  

가짜 세상에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신과 대적하기 위해 미쳐버린 마음이 죽음의 대조로서 개별 생명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이 개체성의 꿈이라는 미친 마음은 자신이 신의 자리를 탈환했다고 믿기에,

신은 언제라도 자신을 찾아와 복수를 할테니 늘 방어해야 하며, 한순간도 쉴 수 없고,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자기자신에게 먼저 벌을 주어서, 신이 나중에 나를 잡아죽이러 찾아와도 

내 이런 불행한 모습을 보고 형벌을 좀 감해줄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삶이 때로는 너무 처참하고 가엾은 형태를 띄고 있는거다.

그런 삶을 택한 개별 영혼은, 원래 다 존재하고 있는 시나리오 중에 하나를 택해서

'배우러' 온다고 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 하지만,

영혼 세계도 꿈속이기 때문에 꿈이라는게 원래 좀 이상하고 말이 안되잖아?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자기를 체험 하려고 혹은 성장하려고

고통과 고문과 살인과 죽음을 겪어봐야만 하게 설정한 것이 

얼마나 변태적이고 말이 안되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거다.


이런 뉴에이지의 신은, 사랑하는 자기 아이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마구 때린 다음에

너를 사랑하니까 이렇게 너를 위해 때리는거야, 나도 마음이 아프다

라고 말하는 학대하는 부모와 비슷하다.


아무튼 이제 글 제목에 맞는걸 좀 써보자. 무의식 속에 있는 마음, 까지는 이야기 했고

그것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다음에 쓰겠다고 했지?


당연히 그건 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지.

이렇게 아프니 제발 좀 도와달라고, 아무리 내가 부족하고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추하고 볼품사납고 모든걸 박탈당한 존재라고, 죽을 죄를 지었고 당신을 배신했다 해도,

그래도 감히 살고 싶으니 나좀 살려달라고, 내 손좀 잡아달라고, 너무 아프니 외면하지 말라고 절규하고 있지.

미쳐버렸으니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프다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고 있지.


이 세상 속에 있는 모든 개체로 보이는 마음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에겐 그 마음의 소리가 잘 안들려. 

내 안에, 도움을 청하기는 커녕 신을 원망하는 소리만 들리는 것 같잖아? 

왜 그럴까?


도움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단단히 믿고 있거든. 죄인이라고.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그래서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눈 감고 귀 막았거든.

자기자신이 도움받을 수 없다고 믿고 있으니, 그 믿음을 깨지 않으려면, 

타인의 고통에 찬 외침도 들리지 않아야 하는거지.

자기나 타인이나 원래 한 마음인데,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지. 아무튼,


타인이 도와달라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가, 내게는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걸로 들려.

그걸 도와달라는 몸부림으로 올바르게 받아들여 버리면, 

나 자신도 도와달라고 몸부림치고 있는 걸로 올바르게 보게 될 수밖에 없거든.

그러니 나는 누군가의 도움 요청을 짜증으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방어하려 하는거지.


나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가엾은 존재라는 걸 인식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신 없는 이 세상을 내가 만들어, 진짜 신을 배신하고 가짜 세상을 만들어 신 노릇을 하는 

오만한 나에 대한 인식이 허물어져 버리지 않겠어?

게다가 내가 불쌍한 만큼 타인도 불쌍하다는 걸 언젠가는 인식하게 되겠지?

또한 그 허물어져 버린 인식의 틈으로 진짜 세상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도움을 갈구하지만 받을수는 없는 나' 라는 허상또한 허물어져 버리겠지? 


다음번에 누군가가 나에게 짜증이나 화를 내는 거 같으면,

이 사람은 괴로워하며 도움을 청하고 있구나, 이걸 보여주는 내 마음도 똑같이 괴로워하고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봐. 쉽지 않지만, 나도 늘 잘하진 못하지만,

한번만 그렇게 진실이 보이고 들리면 그다음부턴 조금더 쉬워질거야.